‘다시는’은 백혈병으로 사망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 황유미 님 아버지 황상기 님, 어머니 박상옥 님, 뇌종양이 발병한 삼성전자 LCD 공장 노동자 한혜경 님과 어머니 김시녀 님. 태안화력발전소 비정규직노동자 김용균 님의 어머니 김미숙 님, 제주 고교 현장실습생 이민호 군의 아버지 이상영 님, 어머니 박정숙 님, 분당 토다이 현장실습생 김동균 군의 아버지 김용만 님, CJ 진천 현장실습생 김동준 군의 어머니 강석경 님, LG유플러스 하청업체 현장실습생 홍수연 양의 아버지 홍순성 님, LG유플러스 하청업체 노동자 이문수 님 아버지 이종민 님, tvN 드라마 PD 이한빛 님의 아버지 이용관 님(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과 동생 이한솔 님(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수원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 님의 누나 김도현 님 등 산업재해피해자와 가족들, 그리고 함께 투쟁해 온 활동가들이 함께 만들었습니다.
김용균 투쟁을 통해 가족들이 모이게 되면서 만들어진 ‘다시는’은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책임있는 고위직이 처벌받을 수 있도록 하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현장실습생 제도 개선 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첫째, 산업재해는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제도적 폭력입니다.
진실의 힘 인권상 심사위원회는 산업재해가 이미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구조적으로 깊이 뿌리내린 제도적 폭력에 가깝다는 사실에 주목합니다. 2001~2017년 전체 산재 사망자는 40,217명, 매년 평균 2,365명이 죽었습니다. 하루 평균 6.4명이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러 나간 일터에서, 삶을 지탱하고 이 국가를 뒷받침해온 노동 현장에서 떨어져 죽고, 더워서 죽고, 끼어서 죽고, 눌려서 죽은 것입니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죽음까지 포함하지 않더라도, 도대체 세계 어느 곳에서, 어떤 분쟁지역에서, 어떤 사고현장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동일한 유형의 사고로 죽는 일이 있을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세계 경제 12위, 국민소득 3만 달러의 성장이라는 한국사회의 화려한 수치 이면에는 OECD 국가 중 산재사망 만인율(만 명당 산재사망 비율) 1위라는 죽음의 그림자가 선명합니다. 이 죽음은 하청 노동자가 원청 노동자에 견줘 훨씬 높은 비율을 보이고 있습니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일하다 다친 간접고용 노동자(용역 파견 민간위탁 사내하청 등)의 비율이 원청 정규직보다 2배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산재 경험은 38%로, 원청 정규직(21%)에 비해 2배 가까이 높게 나타난 것입니다. 한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1~2015년) 30대 기업 중대재해로 사망한 근로자는 총 245명이고, 그중 영세 하청 근로자가 212명(86.5%)이었다고 합니다. 위험한 일은 외주, 하청으로 넘겨지고 외주화되는 순간부터 위험은 증폭됩니다. 위험은 가장 ‘없는’ 사람에게 떠넘겨지고 있지만, 이 현상이 바로 잡힐 것이라고 우리는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죽음이나 재해에 대한 책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현상은 너무나 익숙해졌고, 이미 이 사회의 구조 깊숙이 뿌리를 내린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는 산재를 피해자 개인의 부주의나 실수로 책임을 떠넘기거나, 기껏해야 일부 사업장과 사용자의 잘못으로 발생하는 ‘사고’로 생각합니다. “낙엽처럼 우수수” 죽어간 자들에 대해 잠시 슬퍼할 뿐, 또다른 죽음을 막기 위한 구조적 문제 앞에서는 모두가 눈을 감고, 입을 다뭅니다. 비용절감 등을 이유로 간접고용 노동의 비율이 훨씬 높아지고 있는 지금, 법 제도는 위험에 처한 노동자들의 편에 서 있지 않습니다.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는 답보상태이거나 기업의 이윤을 위해 규제완화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무력화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촛불정부를 자인한 문재인 정부에서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28년만에 개정된 산업보전안전법 하위법령의 개정 과정에서 다시 한번 확인하는 사실입니다.
산업재해피해가족들이 만든 네트워크, ‘다시는’은 해마다 2천명이 넘는 이들이 일터에서 죽어 나가는 지금, 또다른 죽음을 막기 위해 모였습니다. ‘다시는’에 모인 가족들은 우리에게 마음의 눈을 열어 사람을 보라고 일깨웁니다. ‘산재 사건’으로 묻히고 만 죽음을 되살려 그 희생을 마중물로 다른 노동자를 살리겠다고 말합니다. 노동자의 안전과 목숨을 대체 가능한 소모품처럼 취급하며 이뤄져왔고, 또 그런 방식으로 지탱해가고 있는 이 체제가 이대로 가도 되는지를 묻고 있습니다. 법과 제도를 사람에게 눈맞춰서 바꾸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눈 감고 귀 막은 우리 사회를 향해, 노동이 인간의 존엄의 바탕 위에 올려지도록 혼신의 힘으로 외치고 있습니다. 노동자들의 이어지는 죽음을 막아보자는 이 간결하고도 강력한 외침에 우리는 화답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둘째, ‘다시는’은 참척의 고통과 비탄 위에 세워 올린 희망의 나침반입니다.
‘다시는’은 올해 새로 만들어진 단체이지만, 각 구성원들이 힘겹게 쌓아 올린 투쟁의 궤적은 우리 모두를 숙연하게 합니다.
2007년 3월 삼성전자에 다니던 딸 황유미 님을 잃은 황상기 님은 전문 활동가들과 함께 반올림을 만들어 반도체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직업병 문제를 알리고, 기업과 정부의 책임을 촉구해왔습니다. 노동자 입증책임을 완화하고, 회사와 정부의 조사미비, 정보은폐를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해석하도록 하는 대법원 판결을 이끌어냈습니다. 11년의 투쟁 끝에 삼성전자의 예방대책과 안전보건기금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냈습니다. 황상기 님은 “점점 작아지는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함께 내다보면 큰 목소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삼성전자 LCD 전자 공장에서 일하다가 뇌종양에 걸린 한혜경 님은 어머니 김시녀 님과 함께 앞장서 반도체 직업병을 알렸습니다. 10년 넘는 투쟁 동안 산재 판정은 7번 불승인 되었으나, 8번째 산재 재신청 끝에 결국 인정을 받아냈습니다. 삼성의 회유에도 두 사람이 싸운 것은 “다시는 우리 같은 사람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다짐 덕분이었습니다. ‘다시는’에 모여 “끝까지, 힘이 닿는 데까지 싸울” 생각입니다.
고교 현장실습생으로 일하러 갔다가 죽음을 맞은 고 김동준(CJ 진천고교 현장실습생), 고 김동균(군포 토다이 현장실습생), 고 이민호(제주 고교 현장실습생), 고 홍수연(LGU+ 하청업체 전주 고교 현장실습생)님의 부모도 ‘다시는’에 모였습니다. 아들 딸의 비극적 죽음을 통해 고교 현장실습실의 현실을 알게 된 부모들은 죽음을 부르는 현장실습생 제도의 개선을 위해 나서고 있습니다. 학교와 교육부 앞에서 제도 개선을 위한 1인 시위를 하고, 개인 탓으로 돌리는 죽음의 진상규명을 위해 싸웠습니다. 내 아이들은 다시 안아볼 수 없지만, 그 고통의 극한을 알기에 피해자가 다시는 생기지 않기를 바라며 ‘다시는’으로 손을 잡았습니다. “우리 유가족이 함께 싸울 때만이 뭔가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LGU+하청 고객센터(LB휴넷)의 비인간적 노동환경을 고발한 고 이문수 님의 아버지 이종민 님은 아들이 죽은 지 4년 2개월이 지나서야 ‘산재’ 인정을 받았습니다. 한 마디 사과도 없는 회사를 비판하며 아들과 같은 상담원들의 산재 인정 폭이 더 넓어져야 한다는 마음으로 ‘다시는’에 함께 했습니다.
방송 제작현장의 비인간적인 현실을 고발한 tvN PD 고 이한빛 님의 가족들은 방송노동자들의 노동인권 개선을 위해 노동인권센터를 만들었습니다. 한빛이 죽음으로 말한 것을 지켜 내기 위해 가족들은 ‘다시는’에 힘을 모았습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죽어간 고 김용균 님의 어머니 김미숙 님의 발걸음도 ‘다시는’으로 이어졌습니다. 김미숙 님은 가슴에 품은 아들에게 “너처럼 죽지 않게, 엄마가 꼭 해낼게” 굳은 약속을 했습니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오늘도 길을 나섭니다. 아들의 죽음의 원인을 밝힐 진상규명위원회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며 정부와 회사의 책임을 분명히 했습니다. 특히 산안법 개정의 필요성을 알려내고 28년만에 산안법 전부 개정을 이끌어냈습니다. ‘위험의 외주화’ 문제를 우리사회의 주요한 의제로 만들어냈습니다.
지난 4월 경기 수원의 건설현장에서 추락해 숨진 노동자 고 김태규 님의 누나 김도현 님은 동생의 허망하고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뛰어다닙니다.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아들과 딸, 누군가의 동생이 또 이렇게 죽고 진실이 감춰질 것을 생각하면, 진상규명은 우리 가족만의 일이 아니라고 확신”합니다. “계속되는 청년 노동자들의 죽음”을 막기 위해 ‘다시는’을 두드렸습니다.
가족들은 죽은 이들을 가슴에 품고, 죽은 이들의 이름으로 다시 살기로 했습니다. 산재 사고가 발생한 곳에 가족들은 늘 있었지만, 자본과 국가의 협공에 고립된 채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했습니다. 외로움의 끝에 서 봤던 가족들은 ‘다시는’을 만들어 서로 연결되어 더욱 강한 힘을 내기로 했습니다. 돈과 권력이 하나로 뭉칠 때, 유가족들은 더욱 굳세게 서로 손을 맞잡기로 했습니다. 산업재해 피해 가족들이 다시는 홀로 외롭지 않도록 하나의 깃발을 세운 것입니다. 가족들의 바람은 하나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어도, 다시는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는 피해 가족들이 생기지 않기를!”
‘다시는’을 만든 분들은 가족을 잃은 참척의 고통, 온 삶이 통째로 흔들리는 비탄에 잠겨 있지만 그 비탄과 증오에 삶을 내어주지 않았습니다. 그 고통의 무게가 너무나 컸고 힘겨웠기에, 가족들은 자신들이 직접 겪어야만 했던 고통과 슬픔, 희생을 다시는 겪는 사람이 없도록 자신의 삶을 내줘야 한다고 다짐했습니다. 아들의 처참한 죽음 앞에서, 딸의 고된 투병 앞에서 했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어머니와 아버지는 자식의 이름을 걸고 ‘다시는’을 만들어냈습니다. ‘다시는’은 사랑을 잃어버린 어머니의 눈물이 흘러 들어온 자리입니다. ‘다시는’은 사랑하는 자식들은 돌아올 수 없지만, 또 다른 죽음을 막기 위한 투쟁입니다. ‘다시는’은 말 못하는, 죽은 이들을 대신한 목소리입니다. 그 목소리는 저 아래 어둠 속에서 가늘게 들려오는 듯하지만, 우리 사회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반석 위에 올려놓는 나침반이 될 것입니다.
셋째, ‘다시는’의 진실의 힘 인권상 수상이 우리 사회에 근원적 질문을 던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진실의 힘 인권상 심사위원회는 한국 사회가 노동을 하는 이들을 폐기물처럼 소모하면서 경제발전을 이룩해온 시스템에 주목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땅을 살만 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땀 흘려 일하며 경제를 구축해왔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피 흘려가며 맞아가며 이만큼의 민주주의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이 경제발전과 민주주의에 ‘노동’은 없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뼈아프게 새깁니다.
1970년 11월 전태일 열사는 “근로기준법을 지키라”고 외치며 몸을 불살랐습니다. 그가 죽음으로 우리에게 남긴 말이 49년 지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며, 이 사회가 노동자를 대하는 방식이 전과 다를 바 없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절망합니다. 우리 헌법(제32조)에서는 근로조건의 기준을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말은 법전에만 머물고, 현실은 말과 역행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고사하고, 노동자를 산재가 발생하면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는 수많은 부속품 중의 하나로 인식합니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성장을 통해 OECD 12위의 경제대국이라는 이름을 얻었지만, 그 성장을 떠받쳐온 노동자들의 생명은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습니다. 노동자가 산재를 입은 곳은 일터이지만, 산재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정부였습니다.
상황이 이러하다면, 사고는 이미 사고가 아닐 것입니다. 노동자의 생명을 이윤보다 가볍게 여기는 태도가 이미 구조 속에 뿌리를 내렸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람을 우선하겠다는 현 정부조차 기업의 눈치를 살피느라 노동의 존엄, 노동자의 안전은 뒷전입니다. 국민소득이 3만달러에 육박하는 나라에서, 눈 뜨면 ‘신기술’이 도처에 차고 넘치는 나라에서, 산재를 줄여 나갈 수 있는 기술이 없어서, 돈이 없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피해자 개인에게 오히려 ‘부주의했다, 안전장치를 소홀히 했다’는 식으로 책임을 떠넘기고 기껏해야 개별 사업장 사용자에게 안전설비와 교육이 부족했다고 책임지우는 환경에서 산업재해를 줄여 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국가가 산재 인정에 인색하고 노동자의 건강한 권리를 제대로 책임지지 않는 한 죽음은 줄어들 수 없습니다. 안전보다 이익, 사람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사회 시스템, 산업재해는 경제발전 과정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여기는 관행적, 제도적 토양에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죽음은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12월 말, 28년만에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이 이뤄졌습니다. 수많은 노동자들의 죽음, 그리고 고 김용균의 죽음과 맞바꾼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산안법의 하위법령 개정안은 ‘위험의 외주화’를 실질적으로 멈추게 하겠다는 다짐을 원점으로 되돌린 것이었습니다. 법과 제도를 고친다 해도, 느슨하기만 했던 강제와 공권력이 끈질기고 촘촘한 돈과 이윤의 욕망을 이기기란 쉽지 않습니다. 법으로 재판으로 노동자들이 이긴다 해도, 자본은 법을 따르지 않았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습니다. 산안법 하위법령 개정은 최소한 공통으로 지켜야 할 원칙일 뿐입니다. 매년 2,300명이 죽어 나가는 현실을 바꾸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입니다.
‘다시는’은 우리 사회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하루에도 6명 이상이 일터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산업현장을 언제까지 그대로 둘 것인지, 매일매일 이어지는 참혹한 죽음을 대통령과 국회는 왜 방치하고 있는지, 그 죽음에 기대어 이뤄지는 경제발전과 이윤 창출이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이 사회에 선택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나간 일터에서 누군가 또 떨어지고 끼이고 눌려서 죽어도 되는 것인지, 죽음의 자리에 또다른 죽음이 쌓이도록 그냥 놔둘 것인지, 우리가 쉬지않고 일하며 이룩해온 경제발전과 죽고 끌려가고 외치며 쟁취해온 민주주의의 모습이 과연 이러한 것이었는지를, 오늘 ‘다시는’의 진실의 힘 인권상 수상을 계기로 책임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질문들에 대답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