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재단법인 진실의힘 이사장 박동운 입니다.
오늘 고문생존자를 기억하고 지원하는 날에 함께 해 주신 여러분 반갑습니다. 제9회 인권상 수상자 다시는 선생님들 반갑습니다.
오늘은 유엔이 정한 고문생존자지원의 날입니다. 1998년 이 날을 지정한 코피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말했던 것처럼 “오늘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통을 인내해온 이들에게 우리의 존경을 표하는 날”입니다.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통, 그렇습니다. 우리 고문생존자 뿐 아니라 오늘 이 자리에는 일터로 나갔다가 다시 돌아오지 못한 아들, 딸들에 대한 깊은 그리움과 비탄의 고통,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통을 겪고 계시는 분들께, 우리의 존경을 드리기 위해 모인 날입니다.
진실의 힘을 만든 우리 고문생존자들은 70년대와 80년대 군사독재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와 보안사, 대공분실에 끌려가 두어 달씩 고문을 당한 끝에 간첩으로 조작된 피해자들이었습니다. 재판이라는 절차를 거쳐 10년 20년의 기나긴 징역살이를 했습니다. 끝내 사형장으로 사라져간 동지들도 있었습니다. 기나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그 끝이 있을 것이라고 차마 상상도 못했습니다. 우리의 고통을 알아줄 이가 있을 것이라고 차마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외롭고도 고독한 어둠의 시간을 걸어왔습니다.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들 덕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실의 힘은 고통이 또다른 고통에 귀 기울이고, 또다른 슬픔을 위로하며, 진실이 또다른 진실을 찾도록 힘을 보태기 위해서 만들어졌습니다. 고통이 모이고, 슬픔이 모이고, 진실이 모이면 더 이상 외롭지 않다는 것, 그 시절을 견디며 우리가 깨달은 것입니다.
진실의 힘 인권상은 그런 우리들이 만든 상입니다. 다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인간의 삶은 폭력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희망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겪은 고통이 이 사회의 유산이 되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아홉 번째 수상자가 되신 ‘다시는’ 선생님들은 우리 삶의 긍지가 담겨있는 이 인권상을 받을 자격이 넘치는 분들입니다. 수상자를 선정해주신 인권상 심사위원회 위원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정연순 심사위원장과 심사위원들이 수상자 선정의 경위에 대해서 소상히 말씀해주시리라 믿고 저는 간단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다시는, 선생님들이 겪은 고통이 우리 고문생존자들이 겪은 고통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을 저는 마음 깊이 느낍니다. 고문을 당해서 간첩으로 조작된 것이 명백했지만, 검사도 판사도 우리 말을 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재판은 요식절차에 불과했습니다. 조작된 사건이 분명하지만,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는 우리의 전 생애를 걸어야 했고, 촛불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권에서도 아직 끝나지 않은 채입니다.
황상기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너무나도 명백한 산업재해, 직업병이건만 산재를 산재로 인정받기까지 10년 넘는 세월을 거리에서 싸워야 했습니다. 국가는 무조건 기업 편만 들었습니다. 오늘의 죽음에 잠시 슬퍼하지만 내일 또 그 자리에 또다른 노동자의 죽음이 쌓여갔습니다.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개인의 부주의 탓으로 몰아 부치고 기껏해야 사용자에게 안전설비와 교육 미비로 책임 지우는 노동환경도 계속됐습니다.
바로 그런 토양 위에서 고문과 간첩조작은 지속되었습니다. 그런 제도적 관행 속에서 하루 평균 6.4명이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일하러 나간 일터에서, 이 국가를 뒷받침해온 노동의 현장에서 죽었습니다. 도대체 세계 어느 곳에서, 어떤 사고현장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동일한 유형의 사고로 죽는 일이 있을까요.
우리 헌법 12조에서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실은 헌법과 역행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인간으로서 존엄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행복할 권리를 박탈당했습니다. 이 사실은 무엇을 말합니까? 우리는 ‘비 국민’이라는 말입니다. 민주주의를 이뤄 나가는 과정에서, 경제발전을 축적해 나가는 과정에서, 우리 모두는 가장 낮은 곳에서 소외되고 차별적인 대우로 고통을 겪어야 했던 피해자였던 것입니다. 노동자의 생명을 이윤보다 가볍게 여기는 태도가 이미 깊이 뿌리를 내려버린 그런 구조 속에서 희생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고통이 있어도 계속되어야 했습니다. 때로는 고통 때문에 계속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그랬고, 다시는 선생님들이 그러하셨을 것입니다.
“엄마 아빠, 다녀올게!” 그렇게 일터로 나간 아들 딸을 다시 만날 수 없게 된 고통, 얼굴 한번 만져보고 싶은 그 간절한 그리움, 잠 못 이루셨을 그 깊은 분노의 시간이 흘렀을 것입니다. 너무나도 외로우셨을 고통의 시간이 지나갔을 것입니다.
다시는 선생님들은 그 고통, 그 외로움에 삶을 내던지기 보다는, 힘을 내서, 손을 잡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정말 잘하셨습니다! 이 국가는 우리 같은 피해자들을 위해 먼저 해주는 것이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권력과 자본은 힘을 합치기 때문에 우리는 고립된 채 외로운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다시는’이 하나의 깃발을 세우고, 함께 걸음을 시작한 것은 돈과 이윤과 폭력에 굴하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사랑하는 내 자식은 돌아올 수 없지만, 또다른 죽음은 막겠다는 단호한 의지입니다! 자식들이 못다 이룬 꿈을 나의 꿈으로 되살려 살기로 한 굳건한 목소리입니다! 이렇게 힘겨운 고통을 다른 사람은 겪어서는 안된다는 간절한 깃발입니다!
지금 다시는 목소리는 가늘게 들려오는 것 같지만, 오래지 않아, 우리 사회를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반석 위에 올려놓을 것입니다. ‘다시는’이 만들어 놓은 길을 따라 우리 후대는 노동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각자 다를지라도 우리가 품은 희망은 같다는 것을 저는 믿습니다.
“다시는!”, 여러 분들이 가장 많이 하셨다는 이 말, 우리들이 진실의 힘을 만들면서 했던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혼자 있을 때는 피해자였을 뿐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더욱 큰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진실의 힘 인권상’이 다시는 선생님들의 걸음에 작지만 깊은 격려와 응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우리 사회가, ‘다시는’의 존재를 통해, 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기회로 받아들일 것을 촉구합니다.
황상기에서 시작된 걸음이 박상옥, 김시녀, 한혜경, 김미숙, 이상영, 박정숙, 김용만, 강석경, 홍순성, 이종민, 이용관, 이한솔 그리고 지금 김도현에게 이어지기까지, 그 걸음의 의미를 우리가 깊이 되새겨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노동자를 소모품으로 취급하는 과거의 방식이 현재까지 이어진다면 하루에 6명이 죽는 비극을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노동을 하찮은 일로 치부하고 노동자를 이윤창출보다 아래에 두는 관행과 의식 구조로 변화는 일어날 수 없습니다. 경제 발전 과정에서 산재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고 여기는 관행적, 제도적 토양에서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죽음은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는’이 겪은, 또 겪고 있는 고통의 깊이를 우리가 제대로 헤아려야 한다고 믿습니다. 감추어서도 안되고 애매하게 얼버무리며 외면해서도 안됩니다. 집단적인 우리 사회의 의식으로 축적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고통이 있었고, 무엇이 그런 고통을 불렀는지, 낱낱이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 사회의 변화는 시작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는’이 겪은 고통과 분노 그리고 자책과 회한이 오늘 이 자리에 앉아 계시는 여러분들의 마음에 오롯이 전달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 물결이 마음을 스치고 일으킨 파문이 여러분의 거처에, 일상에, 일터에 자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는, 사람이, 노동이 돈이라는 이름아래 놓이지 않기를, 노동이 인간의 존엄의 바탕 위에 올려지도록 함께 힘모아 나갑시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