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현주( 단원고 장준형군 어머니)
추석 연휴를 이틀 앞두고 사회적 참사 특별위원회(이하 참사위) 종합보고서가 도착했다. 상자에 담긴 8권의 책자들 옆에서 우리는 차례 음식을 만들었다. 차례상의 주인은 이제 26살이 된 큰 아들이고 나의 남편과 아이들은 세월호 유가족이다.
3년 6개월에 걸친 조사 후에 사참위는 종료되었고 종합보고서가 발간되었지만 유가족의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어쨌든 아이는 다시 돌아올 수 없으니까.
차례상을 물리고 나는 남편에게 물었다. ‘우리에게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어떤 의미였을까?’ 지난 8년간 수없이 던졌던 질문이었고 가장 많이 들었던 답변은 ‘아이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세월호 이전과 이후는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는 말이었다. 과연 세상은 세월호 참사 전후로 얼마나 달라진 걸까?
박상은 작가가 이 책에서 지적한 416세월호 참사 특별위원회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문제점들은 그대로 사참위에서 반복되었다. 대다수 조사관들은 사참위 내 소통의 단절을 호소했고 안전소위와 진상소위의 갈등은 여전했으며 종합보고서 기조를 둘러싼 반발도 변함없었다. 괄목할 만한 조사 성과들은 침몰 원인을 둘러싼 대립 속에서 무시되었고 보수 언론은 또다시 세금 낭비를 들먹였다. 조사기구는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분명히 세상은 조금 달라졌다. 재난의 국가 책임을 당연히 묻기 시작했고, 재난 피해자를 향한 모욕은 비난받기 시작했다. 위험을 생산하는 자들을 처벌하고 안전할 권리를 주장하기 위한 법은 미약하나마 제정되었다. 그리고 이미 발생한 재난을 통해 미래의 재난을 예방할 수 있으려면 조사기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바로 이 책에서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책들은 적지 않지만 솔직히 대부분 너무 어렵거나 너무 슬프다. 그에 반해 이 책은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읽기 쉽다. 지나온 과거를 성찰함으로써 이후의 대안을 고민하게 만든다. 이해는 되지만 동의는 어려워 생겨난 많은 질문들이 저자와 직접 토론해보고 싶게 만든다. (내가 아는 저자는 그 토론들에 흔쾌히 응할 인품을 갖고 있다.) 한 마디로 직접 구매해서 읽어보고 함께 이야기 나눌 가치가 충분하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세월호 참사 이후 달라진 세상을 만들 수 있는 그리 어렵지 않은 하나의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