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힘이 2017년 6월 유엔인권이사회에 제출한 성명]
한국정부는 강용주 이사에 대한 검찰의 보안관찰 위반 기소를 즉시 철회하라.
현재 한국 법원에서는 강용주 재단법인 진실의힘 이사에 대한 보안관찰법 위반 재판이 열리고 있다. ‘재범의 위험’이 있는 피보안관찰자로서 법이 정한 ‘신고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 이유다. 재단법인 진실의힘은 검찰 기소의 전제사실이 된 법무부의 ‘보안관찰처분’ 결정이 잘못된 것이고, 따라서 피보안관찰자라는 전제 하에 신고의 의무를 부과한 것도 잘못이며, 결국 검찰의 기소는 경•검찰과 법무부의 잘못에 터 잡은 것이라고 판단한다.
경찰이 보안관찰처분 기간갱신을 위해 작성한 강용주씨에 대한 동태조사서에는 강씨가 “고문피해자 치유를 빙자하여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들이 주축이 된 (재)진실의힘 이사로 활동”하고 있는 점을 기간 갱신 사유로 들었다. 재단법인 진실의힘을 “고문피해자 치유를 빙자하여 국가보안법 위반 전력자들이 주축이 된” 곳이라는 것이다. 국가보안법 전력자들이 만난다 해서 재범 위험이 있다고 본 것부터 실소를 금할 수 없다.
하지만 이는 기초적인 사실관계부터가 틀렸다. 진실의힘은 재심을 통해 무죄판결을 받고, 국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에서 승소한 고문생존자들이 배상금의 일부를 출연하여 만든 재단법인이다. 재심을 통해 죄가 없다는 판결을 받은 이들이 다시는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마음에서 만든 곳이다. 다른 피해자들의 재활을 돕고 진실규명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재심을 통해 무죄를 끌어낸 이들과 만난 것이 왜 죄가 되어야 하는가.
그 다음으로 ‘고문피해자 치유를 빙자’했다는 주장을 보자. 강용주씨는 재단법인 진실의힘 창립에 주도적으로 활동했다. 당시 고문 피해에 대한 기본적인 문제의식도 없던 우리 사회에 치유가 왜 필요한지를 역설, 정신과전문의들과 고문피해자 집단상담을 주도했다. 그 활동의 결과 고문과 치유 문제가 우리 사회의 주요한 인권 이슈가 되었다. 그와 같은 노력 끝에 진실의힘이 설립되었고, 광주트라우마센터 같은 치유센터가 만들어진 것이다. ‘치유를 빙자한 모임’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고문치유를 해왔고, 자신의 전문적인 능력을 더해서 고문 및 국가폭력 피해자들을 무료 진료해왔다.
사실이 이와 같은데도 법무부는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왜곡시킨 경찰의 보고서에 기초하여 ‘재범 위험성’이 있다며 보안관찰을 갱신했다. 그리고 검찰은 보안관찰상 신고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며 기소했고, 지금 재판이 진행 중이다. 검찰의 기소는 허위사실에 터 잡아 이뤄진 것이다. 따라서 검찰은 지금이라도 기소를 철회함이 마땅하다.
더구나 강용주씨의 보안관찰 사유가 된 이른바 ‘구미유학생 간첩단 사건’은 전두환 정권 시절 안기부가 조작한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건이 아닌가. 강씨는 60일간의 죽음 같은 안기부 남산 고문실에 갇혀 허위자백을 강요당했으며, ‘간첩죄’로 기소된 법정에서 고문에 의한 조작사건임을 주장했다. 그러나 독재정권의 법정은 그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무려 14년을 갇혀있어야 했다. 그 시절, 국제앰네스티를 비롯한 세계적인 인권단체들은 구미유학생 구속자들의 즉각 석방을 촉구했다. 유엔은 이들에 대한 구금이 ‘자의적 구금’이라는 결정을 내리며 군사독재정권에 석방을 촉구해왔다.
이와 같은 사실에 비춰볼 때, 법무부가 말하는 ‘재범 위험성’의 실체는 과연 무엇인가. 재범의 가능성은 고문피해자인 강씨가 아니라 독재정권 시절의 안기부와 같은 음습한 수사기관, 그걸 가능하게 용인한 국가시스템에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곧 ‘적폐’였다. 새정부가 들어선 한국사회는 이와 같은 '적폐'를 바로 잡아서 과거의 불행했던 일이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다양한 방면을 정비하고 있다. 강용주에 대한 기소부터 철회하는 것이 적폐를 바로잡는 첫걸음이다.
강씨가 남산 안기부로 끌려가 구미유학생 사건 관련자로 휘말린 때는 1985년이었다. 그로부터 32년이 흘렀다. 우리 사회는 그 사이 진전과 후퇴를 거듭하며 성장해왔다. 한 아이가 태어나 32세에 접어든 세월이 지났지만 법무부는 강씨에 대한 보안관찰을 고집하며 그에게 85년 사건의 재범 위험성을 판단하고 또 판단하고 있다.
그 사이 강씨는 가정의학과 전문의가 되었고, 진실의힘 이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고문과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희망이 되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의 노력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고문생존자의 치유문제가 인권의 의제가 되었다. 그의 실천으로 수많은 고문생존자와 5•18피해생존자가 희망을 얻었다. 그의 끈질긴 싸움은 이 사회의 양심과 표현의 자유를 지키는 불씨였다. 과거 그가 홀로 져야 했던 무거운 짐을 들어주지는 못할망정, 그 짐에 돌덩이와 쇠사슬을 더해서 발걸음을 옭아매려 하는 이 국가는 도대체 무엇인가. 죽음 같은 고문의 고통을 지나온 생존자가 시간과 금전을 들여 다른 고문피해자의 심리적 • 육체적 건강회복을 북돋운 사실을 두고 마땅히 옷깃을 여미며 존중하지는 못할지언정, 죄를 물어서야 되는가.
보안관찰은 강씨의 삶을 과거로 묶어놓으려 한다. 이미 32년 전에 발생했던 사건을 ‘재범’할 것이라는 억측, 국가가 조작한 사건의 피해자에게 오히려 반성하라고 강요하는 적반하장, 지금 만나는 사람이 누구고 어디로 놀러 갔는지를 신고하라는 야만의 3종 세트로 자유로운 일상을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강씨에 대한 더 이상의 억측과 적반하장, 야만을 멈춰라. 그것이 ‘나라다운 나라’의 품격이다.
우리는 다시 주장한다.
검찰은 강용주에 대한 보안관찰 기소를 당장 철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