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조력 시민모임의 <난민 네트워크 형성 및 액티비즘을 위한 참여실행연구>는 시민권이 없어 사회적 목소리를 내기 어려웠던 난민이 스스로 프로젝트 활동의 기획자가 되어 사회참여활동을 추진해보고, 난민간 네트워크를 형성해 보자는 생각으로 시작되었다. 난민은 어느 사회에서나 도움을 받는 존재로서 인식되기 마련이고, 비호국에서 체류와 보호를 ‘요청’하는 을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순응적인’ 존재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직간접적 압력에 놓여 있다. 언어장벽, 정보부족 등의 이유가 더해져 난민은 스스로 목소리를 내거나 자신의 권리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하거나, 그나마 한국인 활동가/전문가들에 의해서만 그 목소리가 대변되어 왔다. 이 프로젝트는 이러한 현실을 짚어보며, 난민은 과연 정치적 주체로서 사회에 목소리를 내는 존재가 될 수 없는 것일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수년 전부터 난민들의 단식농성, 돗자리 시위 등의 생겨나기 시작했고, 코로나 시기에는 어떤 지역에서는 난민들이 재난을 극복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우리 프로젝트는 난민이 한 사회의 성원으로서 사회에 참여하고, 시민사회와 연결되어, 생존 뿐만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 보다 의미 있게 살아갈 가능성을 말해보고 싶었다. 박탈된 권리를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요구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로서의 가능성과 함께.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라 각오하며,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을 했든 이 여정 끝에 작은 실마리를 찾아 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하며…
우리 팀은 좀더 많은 난민들이 누구나 프로젝트에 관심 갖고 참여할 수 있도록 난민 활동가 공개모집으로 참여자를 모았고, 한국인 활동가 3명과 더불어 콩고, 이집트, 에티오피아에서 온 4명의 난민 활동가들이 함께 하게 되었다. 난민활동가들이 활동을 주도하고, 주요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며 직접 기획과 실행에 참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난민학습활동그룹의 형성과 액티비즘 시도, 난민 간 네트워킹 형성이라는 기본적인 계획과 목적은 있었지만, 무엇을 채우고 담을지는 난민 멤버들이 토의과정을 거쳐서 설계하고 추진해볼 것이었다.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대로, 초기에는 생각과 배경이 서로 다른 멤버들이 처음 만나, 공동의 방향과 의제를 논의하고 실행계획을 도출해 내는데 상당한 양의 시간을 보냈고 지치기도 했다. 긴 논의 끝에 3월에 시작한 첫번째 활동은 여러 지역에 흩어져 있는 난민 커뮤니티 리더나 난민활동가들을 만나는 작업이었다. 막상 하나의 활동으로 움직이다 보니 현실적 요소와 판단들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떤 활동을 하자고 제안할 것인지 우리 스스로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이 다들 막막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늦어지더라도 우리가 누구인지 확립하고, 우리 먼저 역량을 강화하는 작업이 순서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대외활동보다는 팀 멤버들의 자력화(Empowerment) 활동에 보다 집중하여 4월을 보내기로 결심했다. 언제나 한국인 활동가/전문가들에 의해 다뤄져 온 난민 관련 제도의 흐름과 주요 현안들을 난민인권네트워크 의장으로부터 강의를 듣고 치열하게 질문하였다. 또한 보다 적극적인 팀워크와 논의구조를 만들어 내기 위해 ‘전쟁 없는 세상’의 비폭력 트레이닝 프로그램 중 “적극적 동의에 기반한 의사결정”이라는 워크숍을 마련하여 멤버들이 자발적으로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방법들에 대해 배웠다. 그러던 중 우리만의 그룹 이름을 만들고 대외적으로 알려내는 작업을 시작하자는 의견이 모아졌다. 2월부터 몇몇 난민멤버들에 의해 제안되었던 아이디어였다. 개인적으로는 이르다 느껴졌지만 멤버들은 우리만의 그룹명과, 프로필을 만들고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하는 작업들을 하면서 어느 때보다 소속감과 기쁨을 느끼는 것 같았다. 돌이켜 보면 누군가에겐 늘상 어디든지 발들여 놓을 수 있는 조직이나 동호회 같은 것들이 있지만, 난민들에게는 어쩌면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내 뜻과 마음을 담을 수 있는 어떤 공간이 생겼다는 기쁨을 느끼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지 그룹은 이후 커다란 두 가지 행사를 치러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었다. Active Refugee Korea(ARK, 행동하는 난민)은 그렇게 소소하지만 소중하게 만들어졌다.
회의를 하던 어느 날, 한 난민 멤버가 새 정부가 들어서니, 우리도 청와대 앞에 가서 당선을 축하하는 외교적 메시지를 던져 보자고 하였다. 이어 난민/이주민 권리에 관심 없는 새정부를 왜 축하하느냐, 가서 시위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 등등 서로 다른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다. 몇차례에 걸친 논의를 거치고, 여러 의견을 종합해 축하와 우리의 희망사항을 동시에 담은 편지를 함께 작성하기로 하였다. 난민연대를 상징하는 난민국기 아이디어가 덧붙여져 우리는 대통령직인수위 앞에서 난민국기를 흔드는 독특한 캠페인을 펼치게 되었다. 답장을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형식적이나마 인수위로부터 답장도 받았고, 언론의 주목도 받아서 우리 팀의 첫 액션은 ‘누가 뭐래도’ 대성공이었다. 프로젝트를 함께 하며 처음으로 뭉쳐서 만들어 냈던, 오랜지색 깃발 가득한 그날을 잊지 못할 것이다.
쉴 틈도 잠시, 세계난민의 날이 다가왔고, 한번 팀워크를 맞춰본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번에도 각자 그리는 그림은 달랐지만 좀더 재빠르게 여러가지 아이디어와 관점을 다듬고 조합하여, ‘난민 권리선언 축제’라는 컨셉을 그려보았다. 성명서를 낭독하는 전형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즐겁고 신나게 ‘권리’를 선언해보자는 것이었는데, 우리의 기획안에 공감하며 난민인권네트워크가 주최단체로 함께 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문화제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나게 큰 스케일의 행사가 되었다. 10개 정도의 난민지원단체 및 난민커뮤니티가 참여하는 부스행사까지 기획되었고, 난민인권네트워크 및 인권재단사람의 재정적 지원을 받아서 코로나 이후 몇 년만에 열리는 야외 문화제를 많은 시민들의 참여와 함께 뜻깊게 치러낼 수 있었다. 난민 활동가가 행사를 진행을 맡고 난민 참여자/커뮤니티들이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 되어 함께 하기 위해 노력했던 자리이기도 했다.
이렇게 어느새 상반기 활동이 마무리 되었다. 시행착오와 한계점 그래서 많은 과제들이 여전히 남아 있지만, 또한 많은 것들이 처음이어서 뒤돌아보지 않고 뜨겁게, 치열하게 고민하며 함께 했던 것 같다. 시행착오를 돌아보며 하반기에는 난민활동가들이 좀더 독립적인 활동가로서 거듭나기 위해 어떤 지원과 역량강화활동을 해야 하는지 체계적으로 고민하고 시도해 보려 한다. 진실의 힘의 지원이 없었다면 우리 7명이 애초에 모이지도, 행동하는 난민이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조직적, 재정적 기반이 거의 없었던 우리 팀에 버팀목이 되어 주신 진실의 힘 관계자분들에 깊고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강은숙(행동하는 난민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