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민욱(미술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교수)
근대화 과정에서 사라진 장소와 사람들, 공동체에 질문을 던져왔으며, 특히 한국의 뒤틀린 역사에서 고통을 당하고 망각된 존재들에 관심을 가지고 ‘매개자’로서 이들의 삶을 보여줘왔다. 예술이란 역사의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임을 매 번의 작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제8회 진실의힘 인권상 심사위원이자, 제3회, 제4회, 제8회 진실의 힘 인권상 상패를 제작했다.
진실의 힘 인권상 상패를 어떻게 만들면 좋을까. 어느덧 세 번째 상패 제작을 맡게 되었습니다. 알지 못한 한 사람을 생각하는 시간을 통과합니다. 상상의 날개로 다가서 봅니다. 왜 두 눈은 한 사람의 눈만 마주칠 수 있는 걸까요. 그 사람의 말과 발걸음의 거리를 헤아려봅니다. 이 고통은 왜 과거형이 될 수 없을까. 그 슬픔을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은 포기를 포기하게 만듭니다. 이 순간은 마음 속 깊은 곳을 뒤져가며 제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시간이 됩니다. 나는 그 때 어디에 있었나, 무엇을 하고 있었나. 타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체험의 불가능성을 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성은 균열을 당합니다. 그것은 뛰어드는 자의 자유와 진실을 향한 힘이 만들어냅니다. 그래서 문득 불사조의 빛 날개가 떠올랐습니다. 재료는 연약하면서도 강인한 유리여야만 했습니다. 존귀함을 위해 보호를 필요로 하는 재료. 유리는 소멸과 승화를 명령하는 불의 이중적 삶을 통해 늘 다르게 부활합니다.
제 8회 진실의 힘 인권상 수상자는 한종선입니다. 그는 불과 9살에 강제수용 당했습니다. 범죄예방, 부랑인 선도 등의 명목 가운데 도시미관이 눈에 띱니다. 독재자를 위한 미관과 도시의 침묵 가운데 짓밟혀야 했던 그의 날개를 주워 들고 뒤늦게나마 가슴에 품습니다. 아직까지도 고통받고 있는 한종선 씨를 비롯해서 그의 가족과 그리고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분들을 위해 진실의 힘이 날개가 되어주길 소망합니다. 이 모진 도시미관 저 비겁한 야경 아래 갇혀 있던 그들이 자유롭게 날아갈 수 있는 힘을 실어 줄 수 있기를 기도하며 불사조의 빛, 날개를 바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