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제 9회 진실의 힘 인권상 심사위원장을 맡은 정연순입니다. 

오늘은 유엔이 정한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입니다. 재단법인 “진실의 힘”은 해마다 오늘을 기념하여 고문과 국가폭력에 의한 피해를 당하고도 생존자로서 피해자의 구조와 치유, 재발방지에 크게 기여한 인사 또는 단체를 선정하여 왔고, 올해로 9번째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제9회 진실의 힘 인권상 심사위원회는 진실의 힘 이사회를 통해 구성되었습니다. 심사위원으로는 저를 비롯하여 곽은경 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GSEF) 사무국장, 김선주 언론인, 이근행 MBC PD, 이삼성 한림대 교수, 박명림 연세대 교수, 임민욱 한예종 교수, 조용환 변호사, 제8회 인권상 수상자인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한종선 님이 전회 수상자 자격으로 참여했습니다.

심사위원회는 4월 26일 진실의 힘 사무실에서 첫 번째 회의를 가졌습니다. 이후 후보 추천공고를 시작하였고, 추천서가 들어온 분들의 자료를 검토한 후 6월 4일에 모여 수상자 선정을 위한 심사를 진행했습니다. 열띤 토론 끝에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산업재해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을 제9회 진실의 힘 인권상 수상자로 정했습니다. 

진실의 힘 인권상은 지난 여덟 번의 시상에 이르기까지 끔찍한 고문과 국가폭력, 인권침해의 피해자이면서도 그 고통에 굴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애쓰는 피해 생존자들과 지원자들을 기려 왔습니다. 수상을 통해 우리에게 공동체란 무엇인가, 국가란 무엇인가, 진실은 어떻게 드러나 사람의 마음을 울려 이 사회를 바꾸어 왔는가를 새기고자 하였습니다.

산업재해피해가족 네트워크 '다시는'을 제 9회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하면서 심사위원들은 우리에게 국가공동체란 어떤 존재인가를 되묻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류역사 이래 국가는 개인의 안전과 존엄을 위한다는 명분 아래 가장 끔찍하게 개인의 존엄을 억압하고 침해하였습니다. 그 대표적인 행위가 고문이며, 불법체포와 감금, 학살이었습니다. 인류의 역사는 그와 같은 국가폭력에 대항하며 인간의 존엄을 지켜 온 사람들에 의해 이만큼 전진해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나마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 같아 보이는 한국사회에서 우리는 해마다 2천명이 일터에서 사망하는 비극을 목도합니다. 그리고 그 비극에 대해서 지극히 무감한 한국사회를 보게 됩니다.

산업재해는 막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수천명이 해마다 죽어간다는 것은 우리 사회에서 반복되고 있는 산업재해가 개인이나 기업의 잘못을 떠나 구조적으로 깊이 뿌리 내린 폭력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게 합니다

생명과 안전을 중시하는 제도나 장치를 만들 수 있음에도 만들지 않고, 이윤추구의 목표 아래 제대로 된 규제나 감시를 하지 않는 국가권력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명을 위협하고 죽음의 현장으로 몰아붙인다는 점에서, 이전의 국가폭력과 그 형식과 내용을 달리할 뿐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다시는’을 만든 분들은 가장 사랑했던 가족을 그 현장에서 잃었습니다. 구조적 폭력의 희생자들입니다. 그러나 그 슬픔에 매몰되지 않고 일어서서 산업재해가 이 땅에서 사라질 때까지 함께 싸우겠다고 결의하셨습니다.

조직으로서의 ‘다시는’은 비록 활동경력이 짧으나, 그 안에 함께 한 분들은 적지 않은 시간동안 헌신적으로, 자본과 이윤에 민감하고 인권과 생명에 둔감한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을 깨뜨리고자 싸워 오셨습니다. 자본과 국가권력이 결탁하여 가하는 폭력 앞에서 그 피해자 가족들이 보여준 활동은 진실의 힘 인권상을 수상하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상을 개인이 아닌 이제 막 걸음마를 떼고 있는 조직인‘다시는’에 드리는 것은, 산업재해라는 구조적 폭력에 저항하고 우리 곁에 있는 한 생명의 존엄을 일깨우는 일이 개인이나 일개 명망가에 의해서 이루어질 것이 아니라 이에 공감하는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모여 해야 할 '의무'라는 사실에 심사위원들이 주목했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진실의 힘 인권상 수상을 통해 산업재해방지를 위해서 싸우는 모든 분들이 힘과 용기를 얻기를 바랍니다. 수상을 통해서 우리 사회 이웃들이 좀 더 그 싸움에 관심을 갖게 되기를 바라며, 오늘의 수상자에게 축하와 뜨거운 존경과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