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4월 10일 수원 건설 현장에서 추락으로 사망한 건설용역 노동자 김태규의 누나 김도현입니다.
산재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이 인권상 수상자가 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기뻤습니다. 당연하고 마땅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다시는’은 동생을 잃고 싸우고 있는 저에게 힘을 준 곳입니다. 또한 동생을 잃은 저희 가족의 속내를 나눌 수 있는, ‘또 하나의 가족’입니다. 동생을 잃고 끙끙 앓는 저를 위로해주셨습니다. 요즘 저는 유가족이 유가족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려주는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ㆍ
저는 하루에도 몇 번씩 분노와 슬픔을 오가고 있습니다. 낮에는 분노로 발에 걸리는 것들을 다 차고 싶어지다가도, 밤에 집에 가면 눈물로 범벅이 됩니다. 동생을 생각하면 울지 말아야한다고 생각하는데도 눈물이 자꾸 나옵니다. 저와 태규는 서로 의지하며 지낸 남매입니다. 제가 태규의 군대 뒷바라지도 했고, 태규가 군대에 갔다 온 후로 오빠처럼 의지가 됐습니다. 그러나 지금 동생은 없습니다. 저는 과거의 일상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쉽게 세상은 태규를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제 고작 두 달이 넘었는데 말입니다.
태규를 보낸 지 이제 77일이 넘었습니다. 두 달을 이렇게 보내는 게 너무 힘든데 10년 넘게 싸운 가족들은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얼마 전 산재 인정을 받은 한혜경님도 그렇고 10년 넘게 싸워 사과를 받아낸 황상기님도 정말 대단하고 모두 존경받을 만한 분입니다. 자식을 잃고 하루하루 버티어낸 부모님들이 동생을 잃은 저에게 힘을 주셨습니다. 특히 용균 어머니 김미숙님이 연락을 주시고 도움을 주셨습니다.
유가족들은 가난하고 힘없는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제도적 살인에 대해 고발하고 책임자를 처벌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서로를 위로하고 산재로 죽는 사람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고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인권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숨을 가벼이 생각하지 않는 사회가 인권이 있는 사회니까요. 누구나 소중한 목숨을 지키고 안전하게 일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도 태규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고용노동부도 가고 검찰도 쫓아다니며 재수사를 하라고 싸우고 있습니다. 경찰과 노동부는 현장 보존 원칙조차 지키지 않았고 사실상 사측의 증거인멸을 용인하였습니다. 태규가 죽은 현장은 표시조차 없이 핏자국은 지워져 있었고,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엘리베이터 작동 여부조차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단순 실족사로 결론은 내려진 듯한 말들을 했습니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들의 진실은 아예 듣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얼마 전에는 현장 작업 중지가 해제되었고 이제 7월이면 공사가 완공됩니다. 태규의 흔적은 모두 사라지게 됩니다. 이렇게 제 동생을 보낼 수 없습니다. 달라진 것 없는 현실이 억울하고 분해서 가슴이 무너집니다.
고 김용균님의 죽음 이후, 28년 만에 유가족들과 시민들의 요구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 건설 일용노동자들의 안전은 대상이 안 됩니다. 반쪽짜리입니다. 얼마 전 정부가 발표한 산안법 시행령 개정안을 보면, 원청 책임이 적용되는 건설기계는 단 4종뿐입니다. 원청의 사고 책임 의무가 적용되는 건설기계는 27종 모두로 확대되어야 건설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안전하게 일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산재사망사건이 발생하여 유죄 판결을 받더라도 기업과 책임자 처벌은 '벌금이나 집행 유예'로 끝나는 게 현실입니다. 벌금 몇 푼이면 노동자들을 죽게 만드는 살인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입니다. 지금이라도 촛불로 탄생한 정부답게 문재인 정부는 제 동생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합니다.
저는 이런 나라를 바꾸어야 태규의 죽음이 헛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태규의 죽음을 그냥 넘어가면 앞으로도 또 다른 누군가의 가족은 또 이렇게 억울하게 죽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는, 정말 다시는 이런 죽음은 없어야 하기에 유가족들은 오늘도 동분서주합니다. 진실의 힘이 저희에게 인권상을 주신 것은 다시는 일하는 노동자가 죽지 않는 세상에 대한 염원과 응원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함께 해주시겠다는 뜻이라고도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