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2017년 11월 9일, 제주 특성화고 재학 중 제이크리에이션이라는 생수 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생수 포장하는 적재기라는 기계에 눌려 생을 마감한 이민호의 아빠 이상영입니다.
오늘 이렇게 기쁜 날이 왔지만, 마음은 참 그렇습니다.
저희 ‘다시는’ 가족모임이 제 9회 진실의 힘 인권상을 수상하게 되어서 뭐라 표현을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기뻐해야할 지 참 애매합니다. 가슴 속에 자식을 묻은 가족들의 모임이니 말입니다. 기쁘고 좋은 일도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민호가 사고를 당하고 10일 동안 중환자실에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간절히 기적을 바라며 병실을 지키던 저와 아내의 모습이 자꾸 떠오릅니다. 결국 그렇게 민호를 먼저 떠나보내고, 장례식장에서 20일 동안 있었던 회사와의 싸움이 참 힘들었습니다.
회사는 ‘민호의 사고는 민호의 잘못으로 일어난 사고이고, 회사는 잘못이 없다’며 단 한 번도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그 30일 동안, 회사 대표라는 사람은 한 번도 분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 저희는 온갖 힘든 말을 들으며 생을 마감하고 싶은 충동에 계속 휩싸였습니다. 그러다 자식의 장례를 치르기로 마음 먹고, 그렇게 민호를 먼저 떠나보냈습니다.
힘들게 민호를 보내고 주위를 둘러보니, 이전에 먼저 생을 마감한 특성화고 현장실습생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동준이, 동균이, 수연이, 현장실습 나갔던 곳에 취업했다 사고로 죽은 구의역 김군까지... 이 현장실습생들이 민호의 죽음 이전에 먼저 부모들 곁을 떠난 것을 알고 가슴 많이 아팠습니다.
이렇게 어린 학생들이 왜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하는 걸까요? 이들에게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을 때, 위험하다 생각했을 때 그만둬도 된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을 바꾸기 위해 교육부와 노동부에 수 없이 항의를 해도 아무런 반응도 없고, 저 자신만 지쳐갈 뿐이었습니다. 그 때 용균이가 죽었습니다. 용균이 사고를 보면서 저는 더 이상 이대로 놔둬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 현장실습, 산업재해 피해 가족들이 모여 한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피해 가족들에게 직접 연락도 하고, 시민사회 활동하는 분들과 얘기도 나누고, 그렇게 해서 ‘다시는’ 가족모임이 만들어졌습니다.
저희 ‘다시는’ 가족들은 만나면 서로 위로가 됩니다. 그렇게 서로 위로하고 서로 도우면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다시는’ 우리 아이처럼 죽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등학생들이 현장실습이라는 명목으로 교육이 아닌 노동력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고, 안전하지 않은 일터에서 일하다 죽는 일이 없길 바랍니다. 다시는 동준이, 동균이, 수연이, 우리 민호 같은 불행한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랍니다. 구의역 김 군, 건설노동자 김태규, 비정규직 발전노동자 김용균, 방송노동자 이한빛 같은 이가 없길 바랍니다. 삼성반도체 황유미, 한혜경 같은 피해자들이 없길 바랍니다. 안산 단원고 학생, 선생님과 같은 피해 가족이 나오지 않길 바랍니다. 다시는 그 어떤 피해 가족이 나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과 행동으로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단호하게 맞서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최근 크게 우려되는 일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로 교육부와 노동부가 ‘일학습병행지원법’을 통과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도제학교는 특성화고 현장실습보다 더 일찍 일을 시작하게 됩니다. 만약 이 법이 통과되면 학생들은 ‘학습근로자’라는 모호한 위치에 놓이게 되고, 저임금 노동자로 전락하게 될 것입니다. 왜 정부는 학생들에게 교육다운 교육을 받을 기회를 제공하지 않고, 자꾸 노동시장으로 나가게 하는 걸까요. 반드시 이 법안은 통과되지 말아야 합니다.
국가는 국민에게 의무만 강요할 뿐 노동자,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윤추구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기업가들은 노동자 목숨을 한 낱 기계 부속품 정도로만 생각합니다.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잘못을 저질렀을 때 강력한 처벌을 내릴 수 있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할 것입니다.
두 번 다시 우리와 같은 부모들이 나오지 않고 안전한 노동 현장이 되는 그날까지, 우리 ‘다시는’ 가족들은 계속 나아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사진: 장성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