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희 가족들은 자식을 잃은 순간부터 삶이 멈추어버린 채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는 진공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다 나와 똑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가족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만나서 말없이 손만 잡아도 서로의 아픔을 알기에 함께 했습니다. 저는 이 모임에 와서 어머니, 아버지 그리고 누나를 만나며 2년 반 만에 처음으로 얼굴에 웃음기를 띠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만나서 슬퍼하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다시는 우리 아이들 같은 죽음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늘 되새기고 있습니다.
‘진실의 힘’에서 저희에게 귀하고 소중한 상을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큰 용기와 힘을 주셨으니 다시는 이 땅의 청년들이 일터에서 죽는 일이 없도록 더욱 힘내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못다 이룬 꿈을 저희에게 남기고 하늘나라에 먼저 간 우리 아이들에게 이 상을 바치고 싶습니다.
tvN <혼술남녀> 조연출이었던 이한빛 PD는 잔혹한 방송 제작 환경을 고발한 글을 남기고 2016년 10월 2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한빛 PD는 정규직으로 입사한 관리직이었지만, 비정규직 스태프의 처참한 노동환경과 불법 해고 등 노동인권 문제에 온몸으로 항거하다가 갔습니다. 이한빛 PD가 남긴 유서에 담긴 말입니다.
“촬영장에서 스태프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제 아들 이한빛 PD는 사회적 약자와 비정규직 등 인권 문제 해결을 위해 치열하게 살다간 27살의 아름다운 청년이었습니다. 용산 참사, 기륭전자와 KTX승무원,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세월호참사대책위 농성장에 함께했습니다. 이 땅의 소외받는 사람들을 위해 CJ E&M에 입사한 뒤 첫 월급을 세월호대책위와 KTX 해고승무원 후원금으로 썼습니다. 죽는 순간까지도 “통장 정리하고 남는 돈이 있으면 빈곤사회연대등 몇 개 단체에 후원금을 내 달라.”는 뜻을 남기고 갔습니다.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청년으로 살다간 한빛에게 제가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시는 한빛과 같은 죽음이 일어나지 않고 청년들이 행복한 일터를 만들어, 그가 못다 이룬 꿈을 채워주는 길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많은 단체와 개인들을 만나 제안하고, 설득한 끝에 2018년 1월 24일 언론노조와 서울시의 도움을 받아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를 창립하였습니다. 한빛센터는 방송노동자를 위한 노동환경 개선활동, 노무상담, 노조결성 지원, 캠페인․교육․연구․쉼터 제공 등 많은 활동을 해왔습니다.
방송 카메라 뒤에 노동자는 다단계 도급계약에 의해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산업안전보건법’과 ‘근로기준법’이 적용되지 않는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권리인 4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고, 근로계약서 한 장 없이 살인적인 초장시간 노동으로 죽음의 외주화로 내몰리고 있습니다. 한빛센터는 앞으로도 방송노동자의 인권 지킴이로서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다시는’에 주신 이 상의 의미를 되새기며, 남은 생애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이 땅의 젊은이가 다시는 죽지 않고 노동인권이 살아 숨 쉬는 일터에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다시는’ 가족들과 함께 가겠습니다.
사진: 장성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