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승 (리츠메이칸대학 특임교수)
제가 인권상을 수상한다고 말했더니, 어떤 사람이 "다 늙어서 왜 상을 받아요? 젊은 사람에게 양보하지"라는 핀잔을 주더군요. 지난 5월말 한국에 왔을 때 ‘진실의힘’ 사무국으로부터 느닷없는 수상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때 미처 사퇴의 미학을 생각도 못하고 앞 뒤 분간 못한 채 받겠다고 해버렸습니다. 평소에는 노벨상을 준다 해도 거절한다고 떠벌리던 제가 말입니다.
이 재단은 고문을 받아, 사건이 날조되어 억울하게 옥살이를 한 분들이 재심으로 무죄를 받아, 그 국가배상금 일부를 기금으로 출연하여 만들었다고 들었습니다. 인생을 망가뜨린 무서운 고통의 대가의 일부인 피눈물 나는 돈입니다. 더구나 많은 경우, 일단 돈을 받으면 선뜻 내 놓기가 어려운데….
그렇게 모은 돈으로 만든 인권상을 옥중에서 다소의 인연이 있는 동지들이 나를 수상자로 결정했다고 들었습니다. 그 이유가 "고문생존자로서, 한국의 정치범, 감옥의 실태를 널리 세상에 알림과 동시에 저의 활동이 옥중, 옥외의 많은 동지들에게 용기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처음에는 나를 밀어주신 동지의 마음을 생각하니 고마웠습니다. 상금도 받을 수 있으니 좋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생각하니, 저는 이 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옥에 있을 때 나이도 어리고 내 어머니와 가족들의 피나는 뒷바라지도 있어서, 옥중 동지를 위해 다소의 심부름을 한 일은 있습니다. 또한 내 가족, 친구, 그리고 우리나라의 분단과 독재에 반대하는 분들, 인간다운 삶을 위해 매진하는 분들, 평화와 인권을 옹호하는 세계의 많은 분들의 덕분으로 저는 세계적인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석방된 후 많은 분들과 만날 기회를 얻었습니다. 출옥 후, 세계 각국에서 초청을 받아 한국의 정치범과 감옥의 실태를 고발하여, 미국에서 고문반대를 위한 비영리 단체를 조직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대학에 자리를 얻게 되어, 글을 쓰거나 강의를 통하여 우리나라 정치범 문제나 국가폭력 희생자의 구제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의 통일과 동아시아의 평화를 위해서 일도 해왔습니다. 그러나 제가 해온 일에 다소의 의미가 있었다면, 여러 동지를 포함한 저를 도와준 많은 분들의 덕이지 결코 제가 한 일은 아닙니다.
옥중에서 면회도 영치금도 없이 ‘개털’ 징역을 사는 분들에 비하면, 저는 모든 조건이 좋은 ‘범털’이었지요. 감옥에서야말로 배운 것도 없고 힘도 없는 백성들은 가장 홀대 받고 서러운 것입니다. 이 재단을 만든 분들은 바로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뜻을 가지게 된 분들입니다.
식민지와 분단 그리고 독재로 점철된 우리 역사 속에서 많은 분들이 억울하게 고문당하고 빨갱이로, 간첩으로 조작되어 왔습니다. 입도 뻥긋 못했던 시절을 생각하니, 재심을 통해서 천인공노할 조작의 일부나마 밝혀지고 누명을 벗고, 잃어버린 세월의 일부나마 배상을 받은 것은 아주 잘된 일입니다. 본인이나 가족 모두 얼마나 기쁘시겠습니까?
돌아가신 분이야 말할 나위도 없고, 살아 계시는 분들도 잃어버린 세월을 돈으로 배상 받을 수 있습니까? 사람의 마음에 깊은 자국으로 남아 있는 공포와 굴욕의 기억을 지울 수 있습니까? 게다가 문제는 살인 고문의 만행을 저지른 범죄자들이 제대로 반성을 하거나 고문을 가능하게 하는 세상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할 수 있습니까?
오늘도 국가보안법이 멀쩡하게 살아 있으며, 마음에 안들면 ‘빨갱이’라고 몰아붙이는 풍조도 변하지 않았고, 우리 겨레 사이에 자꾸 군사적 긴장을 조성하고 전쟁으로 몰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중요한 것은 국가폭력의 희생자 한 분 한 분이 정보원의 잘못이나 착오에 의해 우연히, 혹은 재수 없이 당하신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저 억울하게 누명을 쓴 순진한 사람이라는 식으로 각자의 희생을 왜소화시켜서는 안 될 겁니다. 감옥 속에서 이른바 막걸리 반공법으로 들어 온 분들이 "나야 말로 진짜 반공주의자인데, 왜 가두어 두나? 나보고 전향하라면 되려 빨갱이가 되라는 말인가?" 라고 큰 소리 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진짜 빨갱이는 죽어야 한다는 말입니까. ‘빨갱이’는 고문 받아도, 적법절차에 의하지 않고 붙잡아 학살해도 된다는 사고가 있는 한, 항상 억울한 희생자는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런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억압의 제도화 자체가 항상 억울한 희생자를 만드는 것입니다.
5월 5일 오사마 빈 라딘의 사살이 보도되었습니다. 비무장, 비저항의 라딘을 어린 딸이 보는 앞에서 무참히 암살한 것입니다. 서부극에서 나오는 정정당당한 결투는 얼마나 허구에 찬 거짓인가를 보여주는 미국 총잡이의 비열한 테러였습니다. 참으로 미국다운 이 행동은 유엔 헌장과 국제법에 명시되어 있는 국가와 개인의 최소한의 권리도 짓밟은 불법 무도한 짓입니다. 첫째, 근대 이후 400~500년간 유지되어 온 국제정치의 기본 틀인 국가주권의 존중, 내정 불간섭의 원칙에 대한 침범입니다. 둘째, 세계인권선언에 명시된 적법적인 인권보호의 절차가 한낱 허구에 지나지 않음이 드러났습니다.
물론 이러한 원칙에 대한 침해는 일찍이 파시스트나 독재국가에 의해 수 없이 저질러져 왔습니다. 냉전 붕괴 이후 미국의 일국패권주의로 국제정치의 '견제와 균형'이라는 기제가 망가져서, 미국이 아브그라이브에서 관타나모에서 중앙아시아의 비밀 수용소에서 거듭 저질러온 테러 행위입니다. 그러니 오늘의 세계질서의 중심에 있는 미국이 스스로 주창하는 자유와 인권이라는 가치를 정면으로 저버리는 횡포는 미국의 존재가치 자체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100명의 도둑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억울한 한 사람을 만들지 말아라’든지, ‘의심스러움은 처벌하지 않는다’라든지, 좋은 말이 많이 있습니다만, ‘빨갱이’가 국법을 어기는 것이 아니라 국법을 만든 자가 제 하고 싶은 대로 국법을 어겨 왔습니다. 이것이 국가폭력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빈 라딘에 대한 무참한 테러가 지속되는 한, 정치범이나 테러범 또는 간첩의 조작도, 고문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어제는 고문금지협약(고문 및 그 밖의 잔혹한, 비인도적인 또는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의 방지에 관한 협약) 기념일이었습니다. 고문금지협약 제1조에서는 다음과 같이 고문을 정의하고 있습니다. '신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사람에게 큰 고통을 고의로 주는 행위이며, ...... 공무원 기타 공적인 자격으로 행동하는 자......에 의해 이루어지는 행위를 지칭한다.’ 즉, 고문은 우연도, 실수도, 나쁜 수사관의 변덕도 아니고, 분명 국가 의지의 나타남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나가야 함은 물론이지만, 저는 분단체제 하에서의 모든 수난자가 구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재자 장개석 아래서 37년간이나 계엄 통치를 받은 대만에서는 계엄시기의 부당한 심판을 받은 사람을 모두 구제했습니다. 대만도 분단국가이지만, 개별적인 사법적 구제가 아니라, 국가보안법(감란시기 비첩징치조례)을 폐지하고 그 법에 의한 피해자는 모두 구제하는 입법적인 구제의 방향으로 갔습니다. 그에 비해 우리는 전체적인 구제는 커녕, 국가보안법도 벌겋게 눈을 뜨고 있는 실정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도 정치형법이 폐지되어 모든 정치범이 그가 받은 고통의 크기에 따라 배상과 권리회복을 받고 참된 인권이 실현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518명예회복 보상법이나 민주화관련 명예회복 보상법이나 모든 과거사 청산법에는 ‘자유민주주의적인 질서’를 위해라는 단서가 붙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자유’는 시장경제를 말하는 것이겠지만, 경제제도는 지금 세계의 대부분이 사회민주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며, 자유라는 것은 사회주의든 공산주의든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제도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인데, 그것을 탄압하기 위해 자유민주주의라는 말을 집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법률적인 구제조치인 재심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국가보안법 폐지와 모든 정치사건의 피해자의 구제를 위해 근본적인 해결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더 있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 한 마디 하면 자유와 민주는 권리이지 ‘질서’ 는 아닙니다.
‘진실의 힘’은 많은 인권과제 특히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거의 다루지 않았던 고문, 또는 국가폭력 피해자의 치료, 치유를 중요 과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2005년 5월 광주에서 있었던 한국임상심리학회에서 제가 발제를 했습니다만, 한국에서는 정치범을 ‘영웅’ 취급하고 감히 정신적인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것은 불경스럽다는 잘못된 전통이 있습니다. 식민지하 항일 독립운동에 매진한 분들을 위시하여, 분단과 외세, 독재에 반대하고 투쟁해 오신 선각자의 위업은 항상 존경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사람이라는 당연한 일을 잊어서는 안 될 겁니다. 아니, 사람이기 때문에 해방과 혁명을 위해 몸을 던진 것이 아닙니까? 그들도 몸이 아플 수 있고, 마음도 병들 수 있습니다. 이 당연한 일을 떠맡아서 일을 하려는 여러분에게 큰 기대를 합니다.
그리고 끝으로 ‘진실의 힘’이, 같은 고통을 경험한 분들이 서로 돕고 기쁨을 함께 나누는 공동체로서 성장하고 있는 점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모든 것이 돈으로 평가 받고 돈으로 환산되는 신자유주의의 이 각박한 세상에서 ‘진실의 힘’ 여러분의 마음과 행동이야 말로 우리가 살아가야 할 길이 무엇인가를 제시하는 길잡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