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상의 의미를 가슴 깊이 받아들인다

우쪼아웅
우윈틴재단 사무총장

제4회 진실의힘 인권상을 받기 위해 멀리 버마 양곤에서 날아온 우쪼아웅 선생.

그는 2012년 한타와디 우윈틴재단 창립 멤버이고 현재 사무총장 겸 이사를 맡고 있다.

한국에 도착한 선생 일행과 대화를 나누는 동안, 선생은 무척 조용하고 온화했으며 겸손했다. 자신의 삶을 이야기하기 보다는 우윈틴 선생의 삶과 버마 민중의 삶을 더 많이 이야기 했다. 선생한테는 우리 시선을 사로잡는 것이 있었으니 손가락이었다. 오른 손가락 2개, 왼 손가락 2개는 첫마디가 없었고 나머지 손가락들도 죄다 구부러져 있었다. 처음 악수할 때부터 손가락이 마음에 걸렸지만, 3일 일정이 너무도 벅찼으므로 사적인 이야기는 나눌 새도 없었다. 김대중 평화센터, 인재근 의원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방문, 국제연대 NGO 미팅 등 참으로 바삐 돌아다녔다.

한국의 민주주의와 시민단체 활동을 하나라도 더 직접 보고 배우겠다는 선생의 의지 때문이었다.

한국 체류시간은 금세 흘렀고, 마지막 밤이 다가왔다.

인사동 작은 술집에 앉아서야 우리는 서로 삶의 이력들을 나눌 수 있었다.

1954년 태어난 선생은 1970년 학생축제를 조직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몇 개월 갇혀 있다 풀려났는데, 1974년 또다시 학생시위 주도혐의로 체포되어 9년의 징역살이를 했다. 시위 계기는 1974년 11월 우탄트(1962~1971까지 유엔 사무총장 지낸 버마인) 사망 때였다. 당시 민주세력은 우탄트 시신을 박물관에 모실 계획이었다. 그러나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네윈 군사독재세력이 우탄트의 시신을 가로채갔다. 반대시위는 격해졌고, 수많은 학생, 노동자들이 끌려갔다. 우쪼아웅 선생도 끌려갔다.

악명 높았던 인세인 형무소에서 수도 없이 고문을 당했다. 앞장서서 싸우던 선생의 손은 철사 줄로 꽁꽁 묶이고 말았다. 철사로 묶인 상태에서 쉴 새 없이 구타를 당했고, 그 때 손을 맞아 왼손가락 검지와 중지 첫마디가 끊어지고 말았다. 끊어지지 않은 손가락은 뼈가 부러졌다. 그 와중에 머리를 심하게 맞고 기절했다. 그대로 독방에 갇혔는데, 그 기간이 12일 가량 되었단다. 치료는커녕 먹을 수 있는 아무 것도 주지 않았다. 정신이 들었다가 다시 기절하기를 수차례였다. 죽으라고 그렇게 내던져 놓았던 건데, 살아났다!

선생은 활짝 웃으면서 “그들은 나를 죽이려고 했는데, 나는 죽지 않았다”고 말했다. 우쪼아웅 선생의 머리는 지금도 오른쪽 뼈가 함몰된 채다. 선생의 손을 잡으며 가슴 아파하자, “그 때 죽어버린 친구들, 선배들, 후배들이 많습니다. 나보다 더 많이 다친 사람들도 많고요. 다행히 살아남아 오늘 한국에서 여러분들과 술을 마시네요. 당신들을 만나기 위해 그런 일도 있었나 봐요. 나는 참 운이 좋았습니다.”

고통 속에서 길어 올린, 저 낙관에 찬 말씀이 둘러앉은 모두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음은 물론이다.

9년을 살고 출소한 선생은 다른 정치범들과 마찬가지로 여전히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대열에 서 있었다.

2007년 샤프란 시위 때도 체포되어 65년형을 선고받고 10개월 만에 풀려나기도 했다.

출소 후 글을 쓰기도 하고, 변호사로 활동도 했다. 늘 마음에 걸리는 일이 있었다. 바로 정치범 재활 문제였다. 여전히 갇혀있는 동지들도 문제였지만, 풀려난 정치범들은 마땅히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지 않았다.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심각한 어려움에 처한 동지들이 많았다. 10대 후반~20대 초반에 붙잡혀가서 5년~10년 정도 갇혀 있다가 풀려나왔으니 배움의 기회도, 취업의 기회도 없었다. 그나마 선생은 작가, 변호사 등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었으므로, 그렇지 못한 동료, 후배들을 심리적 물질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마침 우윈틴 선생이 15년 만에 감옥에서 풀려났다. 우윈틴 선생은 재단의 필요성에 깊이 공감했고, 그렇게 우윈틴 재단이 만들어졌다. 우쪼아웅 선생은 우윈틴 선생에 대해 “매우 단순하고 소박했으며, 성자처럼 지극히 자비로우셨다”고 회고한다. 정신적 지주였던 우윈틴 선생의 죽음은 정치범 공동체에겐 너무나도 깊은 슬픔이었고, 상실이었다.

그럴 때 진실의힘이 손을 내밀어 준 것을 선생은 “고귀한 희생을 담은 값지고 가치있는 일”이라며 진심으로 감사히 여겼다. “진실의힘 선생님들의 위대한 희생과 용기, 쉼없는 노력이 새겨져 있는 이 상의 의미를 가슴 깊이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또 한 생애를 알고 나니, 그만큼 세상이 넓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시간은 무척 빨리 흘러가고 있었다. 어느새 우쪼아웅 선생이 그리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