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1: 2025.03.15.15차 범시민대행진

허란(사진가)

진실의 힘 뉴스레터에 실을 원고를 써달라는 제안을 받았을 때,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결국 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제일 좋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저는 그동안 밀양 765kv 송전탑 반대,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반대, 쌍용차 해고노동자 투쟁, 세월호 참사, 제주 4.3사건, 고공 농성과 같은 사회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사진을 찍어왔습니다. 내외신에서 5~6년간 사진기자 생활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2024년 11월부터 비상행동의 집회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12.3 비상계엄 이후인 12월 11일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이 발족했고, 4월 4일 윤석열 파면 직후인 4월 8일에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로 명칭을 변경했습니다.) 2024년 11월~2025년 5월의 약 6개월 동안 비상행동이 주최한 집회를 기록했고, 진실의 힘 123내란기록팀의 인터뷰를 2025년 2월부터 2025년 7월까지 5 개월간 촬영했습니다. 어쩌면 2025년의 상반기는 저에게서 사라진 듯 까마득한 기억입니다.

사진2: 2025.03.22. 16차 범시민대행

그해 겨울은 춥기도 무지하게 추웠습니다. 매주 토요일마다 나가는 집회 촬영을 언제나 철저하게 준비해야 했습니다. 날씨를 확인한 뒤, 비가 오는지 눈이 오는지 기온이 영하 몇 도인지에 따라서 준비물들이 달라졌습니다. 3~4시간을 밖에서 돌아다니며 촬영하다 보면 손, 발이 꽁꽁 얼었습니다. 발바닥에 핫팩을 붙이고 양손에 핫팩을 꼭 쥐었습니다. 종아리와 볼이 얼얼할 만큼 추운 날, 영하의 온도에 칼바람을 견뎌야 했습니다. 수많은 깃발들과 응원봉 그리고 시민들이 거리를 채웠습니다. 본 집회가 끝나고, 행진을 시작할 때, 기억에 남는 두 번의 감동적인 순간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세종호텔 해고노동자 고진수 지부장이 20m 높이의 철제 구조물에 올라 고공농성을 하는 곳에서 행진을 마무리하는 날이었습니다. 전 차선이 행진하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그나마 조금 높은 트럭 위에서 바라보는 나도 감동스러웠는데, 그보다 더 높은 저 위에서 고진수 지부장이 바라보는 사람들의 물결은 더욱더 감동스러웠을 것 같았습니다. 윤석열 파면을 외치며 행진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담긴 '고진수 힘내라'라는 외침으로 행진이 마무리됐습니다. 그가 외로운 고공농성 싸움에서 조금이나마 힘을 받았기를 바랍니다. 세종호텔 고진수의 고공농성은 (현재 10월 21일 기준) 252일을 지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감동스러운 순간은 한남동으로 향하는 행진 대열이 한남동에 들어서면서 기존에 집회 중 인 인원과 합쳐지면서 서로를 응원하는 장면이었습니다. 서로에게 잘 왔다고 응원하고, 수고했다고 다독여주는, 응원봉을 흔들며 서로를 챙기는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들을 깃발에 적고, 자신들이 지닌 반 짝이는 무언가들을 가져옴으로써, 우리는 어둠을 빛으로 밝힐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가 아닌, 수백 수천 수만의 불빛들이 되어 어두운 밤을 밝게 밝히며 아름다운 것들이 되는 광경을 저는 두 눈으로 보았습니다.

진실의 힘 123내란 기록팀에서 인터뷰 사진을 2025년 2월부터 찍었는데, 장장 5개월 동안이란 긴 시간을 함께하였습니다. 300명을 기록하자고 계획했는데, 그중 제가 촬영한 사람이 97명이었습니다. 나중에 사진을 정리하기 위해 그동안의 촬영분을 살펴보며 그때 마다의 이야기들이 떠올랐습니다.

12월 3일 국회로 향했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곁에 함께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인터뷰이들 각자의 성격이 드러나는 순간도 보였습니다. 어떤 분은 엑셀로 정리한 목록들을 종이에 인쇄해서 직접 가져오셨고, 어떤 분은 블로그에 그날의 기억을 정리했습니다. 어떤 분은 3-4장의 사진을 찍었고, 어떤 분은 영상과 사진이 핸드폰 앨범 속에 가득했습니다. 어떤 분은 집이 가까워 마실 물을 준비했고, 어떤 분은 국회 안의 상황을 전 했습니다. 그렇게 추운 12월의 어느 날 시민들이 국회를 지켜냈습니다. 함께했던 시간을 몇 장의 사진으로 대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