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인생을 들여다보는 일
인생의 어느 막다른 골목에 선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건 어떤 일일까요? 우연한 계기에 행정사가 돼 파산 위기에 놓인 사람들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박미현 회원님을 만나 행정사와 파산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세계, 그리고 그 세계에서 마주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회원분들께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저는 행정사로 일하는 박미현입니다. 주로 비영리법인 설립 관련한 업무를 하고, 경기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자문위원을 맡고 있어요. 행정사 본연의 업무는 아니지만, 파산 관련 업무도 비슷한 비중으로 하고 있어요.
행정사란 말이 낯선데, 어떤 일을 하시나요?
약간 제한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행정기관 관련한 모든 일을 한다고 보시면 돼요. 예를 들어 비영리법인을 설립하려면 행정기관과 일해야 하잖아요. 그때 필요한 서류를 대신 작성한다든가, 당사자를 대신해 법인을 신청한다든가 하는 일을 하죠. 법원 업무도 소송은 못 하지만, 행정기관 행정처분을 대상으로 하는 행정심판을 할 수 있고요. 업무 영역이 굉장히 넓어요.
행정사가 된 건 우연한 계기였어요. 초등학생 경계성아동[1]을 지도하는 ‘올키즈 스터디’ 사업에 참여해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코로나19 때문에 대면 수업을 못 하게 됐죠. 새로운 일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참인데, 한국에 귀국한 조카가 비자 문제로 미국에 돌아가지 못하게 됐어요. 비자 문제를 해결해주는 과정에서 행정사가 뭔지 알게 됐고, ‘이걸 내가 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행정사로 일하고 있어요.
경기도 공익활동지원센터 자문위원 중 유일한 행정사시라고요.
네, 행정사가 어떤 일을 하는지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행정사가 진출해 있는 영역이 많지도 않고요. 그래서 공익활동지원센터에 자문위원 중 행정사는 아쉽게도 저 혼자입니다. 아직 행정사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활동하지 않다 보니 생기는 문제들이 있어요. 예전에는 각종 인증 관련 업무, 단체 설립 업무, 인허가 업무 등 행정사들이 해야 하는 업무를 모두 브로커 같은 사람들이 많은 비용을 받고 해주었어요. 행정사는 어쨌든 법적으로 자격을 부여받은 사람이고, 공정한 규칙에 따라 일을 하는 사람이니까 합리적인 비용을 받죠. 비전문가가 잘못된 정보를 주는 것도 문제예요. 저랑 상담하시는 분들이 비전문가로 행정사 업무를 하는 곳에서 미리 상담받고 와서 부정확한 정보를 이야기할 때가 많거든요. 그런 걸 보면 행정사가 다양한 영역에서 더 많이 활동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행정사로 일하면서 만난 분 중 기억에 남는 분이 있으신가요?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상담사례인데요. 우물가라는 임의단체가 비영리민간단체를 설립하고 싶다고 해서 상담을 하게 되었어요. 원래 온라인 상담을 많이 하는데, 이분들은 제가 직접 뵙고 싶어서 경기도 광주까지 가서 만났어요. 다둥이 엄마들의 모임인데, 소외계층의 집을 청소하고, 도시락을 싸서 독거노인을 지원하는 등 지역에서 굉장히 다양한 활동을 하세요.
특히 지역 내 평생교육기관이 할법한 일을 다 하고 계신 게 눈에 띄었어요. 문예 교육도 직접 하고, 취미나 자격증 관련한 교육도 하고. 동주민센터 같은 행정기관 내 평생교육시설에서 하는 사업을 위탁받아서 하면 이분들도 경제적 지원을 받을 수 있고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게 조언을 드렸죠. ‘자기 자식 키우기도 힘들 텐데 어떻게 이 엄마들이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을까’,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거의 4년을 이어오면서 규모를 키울 수 있었을까’ 싶어서 기억에 남아요.
파산 관련 업무는 어떻게 시작하시게 됐나요?
제가 아는 변호사가 파산관재인 업무를 시작했는데, 그분과 같은 사무실을 쓰다가 파산 관련 사실조사 업무를 하게 됐어요. 행정사가 하는 일 중 하나가 사실조사니까, 파산관재인은 아니지만 자료를 보고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일을 맡게 된 거죠.
법원에서 파산선고(부채가 재산보다 많고, 더 이상 채무를 지급할 수 없는 경제적 파탄상태임을 선고하는 일)를 하면 파산관재인이 면책 절차를 진행하게 되지요. 파산관재인은 면책불허가 사유가 있는지를 주로 봐요. 저는 관재인이 종합적으로 검토할 수 있도록 사실관계를 조사하고 정리하며 도와줍니다. 면책 불허가사유는 가령 돈을 자식에게 빼돌린다든가, 특정 채권자 빚만 갚는다든가 하는 것들인데 그러면 면책을 받을 수 없어요. 사실조사를 위해 채무자마다 최소 10년 치 자료를 봐요. 채무자의 10년 인생과 함께 파산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이 겪은 수많은 사연을 보는 거죠. 그래서 이 일을 하다 보면 참 생각이 많아져요.
그 과정에서 만난 분 중 기억에 남는 분이 있으신가요?
재량면책이라는 제도가 있어요. 쉽게 말하면 면책불허가 사유가 있더라도 특별한 사정이 있으니 면책해야 한다고 법원이 판단하는 거죠. 예를 들어 젊은 사람은 일해서 돈을 벌 수 있으니 장애나 질병이 없는 한 면책받기 어려워요. 그런데 젊고 장애나 질병도 없지만 재량면책 사유가 충분한 것 같다고 변호사님께 말씀드린, 아주 특이한 사건이 있어요.
이제 25살 된 보육원에서 자란 친구인데, 보육원에서 이 아이가 정신 이상이라며 정신병원에 감금해서 중학생 시절을 다 병원에서 보내요. 고등학교에 가서 처음으로 친구가 생기고 행복해했는데, 두 달 만에 지적장애라며 아이를 특수반으로 옮겼고 친구들이 없어졌죠. 그리고 시설 내 아동학대의 책임도 이 아이에게 씌워서 소년보호시설에서 고등학생 시절을 보내게 됐어요. 고등학교 졸업 후에는 시설에 있던 친구 때문에 유흥업소에서 일하게 됐는데, 업주 등이 이 아이 명의로 대출받은 뒤 도망쳐서 결국 아이가 파산신청을 했어요.
제가 물어봤어요. ‘왜 카페나 편의점 같은 데서 일을 안 하고 유흥업소에서 일했어?’라고. 그러니까 ‘편의점을 제가 어떻게 가요?’ 그러는 거예요. ‘그럼 주로 어디서 일했니?’하고 물으니 ‘김밥집, 빵집이요’라고 대답해요. ‘그런데 왜 그만두고 유흥업소에서 일했어?’라고 하니까 그때야 조용히 얘기하더라고요. ‘제가 계산을 못 해요.’
고등학교까지 졸업했지만 한 번도 공부를 제대로 해본 적이 없으니 한글만 간신히 어깨너머로 배우고 계산을 할 줄 모르는 거예요. 그래서 편의점이나 카페에서 일할 생각 자체를 못했고, 김밥집, 빵집에서도 계산을 해야 할 때가 있으니까 그것도 하다가 결국 못 하고 유흥업소까지 간 거예요.
이 친구가 편의점 아르바이트라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싶어서 직접 산수를 가르치고 있어요. 경계선지능아동을 가르쳐봤으니 분명히 말할 수 있는데, 빠르진 않아도 기본 개념과 원리를 차근차근 가르치면 충분히 따라올 수 있는 친구예요. 이 친구가 언젠가 저한테 물었어요. ‘왜 선생님들은 저에게 이렇게 한 번도 안 가르쳐줬을까요? 왜 저한테 이걸 아냐고 물어보는 사람이 지금까지 한 명도 없었을까요?’라고. 다행히 지금은 더하기랑 빼기를 너무 잘하는데 편의점에서 일하려면 또 영어를 알아야 한다고 해서(웃음) 영어도 가르치고 있어요.
40년 묵은 빚을 가지고 오신 분도 기억에 남아요. 명문대 경영학과를 나와서 모 그룹 부사장까지 지낸 아주 잘나가시던 분인데, 30대 중반에 회사가 망한 뒤 건강이 나빠져서 몇 년간 투병 생활하고 지금은 야간 경비 같은 일용직을 전전하고 계세요. 제가 너무 안타까워서 ‘왜 이렇게 늦게 오셨어요?’라고 여쭤보니 ‘주변에서 다 파산하라고 이야기했지만, 내 빚이니 어떻게든 제가 감당하려고 했습니다’라고 대답하셨어요. ‘그런데 왜 이번에는 하셨어요?’라고 물어보니까 ‘제가 이제까지 가족에게 고통을 줬는데 부인과 자녀에게 빚까지 안겨줄 수는 없어서 그랬습니다. 그런데 참으로 부끄럽고 죄송합니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법원에서 면책 결정이 나온 날, 전화를 드렸어요. ‘선생님, 오늘 면책 결정이 났습니다’라고 했는데 아무 소리가 안 들려요. 한참 있다가 펑펑 우시는 거예요, 70 넘은 노인이. 당신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한순간에 다 스쳐 지나갔대요. 그리곤 ‘정말 고맙습니다’라고 하셨는데, 이게 저한테 하는 말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하는 말 같았어요. ‘최소한 자식과 부인에게 빚을 남기지 않을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 빚에서 해방될 수 있게 해줘서 고맙다’라고 진심으로 말씀하시는 것 같았어요. 그 긴 시간 동안 그렇게 고통받으셨는데도 ‘진작 할걸’이라는 말씀을 마지막까지 한 번도 안 하셨어요. 이분도 정말 기억에 남아요.
초창기부터 오랫동안 진실의 힘을 후원하셨는데, 지켜보신 진실의 힘은 어떤 곳인가요?
적재적소에 필요한 일을 잘하는 단체라고 생각해요. 국가폭력 피해자, 특히 조작간첩 사건으로 고통받은 분들의 인생을 보듬을 수 있는 곳이 여기 말고 또 어디 있을까요. 그것 말고도 세월호 참사의 전모를 기록했고, 또 지금은 내란사태 이후의 촛불을 기록하고 있고요. 심도 있는 인문학 서적이 사라져가는 세태에 깊이 있는 책을 꾸준히 내는 것도 멋지다고 생각해요. 진실의 힘이 하는 활동을 보면, 내면이 점점 깊어진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면서 폭도 조금씩 넓히고 있고요.
회원분들께 마지막으로 한마디 해주세요.
주변에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그냥 넘기지 말고 ‘그 빚을 네가 감당하지 않아도 다시 경제적으로 갱생할 기회가 있다’라고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진실의 힘은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제도적 폭력의 피해자가 된 분들을 위해 일하는 단체잖아요. 마찬가지로 성실하게 살아왔지만 불운한 채무자들께도 관심을 가져주셨으면 해요. ‘우리가 관심을 가지면 이분들이 다시 이 사회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라는 마음으로요.
[1] 학교 현장에서는 기초학습이 부족한 아동을 경계성아동이라 일컫는다. 의료계에서는 경계선지능이란 용어를 주로 사용하지만 기초학습이 부족한 이유가 단순히 지능지수 문제가 아니라 적절한 학습 기회를 제공받지 못한 문제일 수 있다는 점, ‘지능’이라는 말을 쓰면 해당 아동에게 낙인을 찍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교육계에서는 경계성아동이라는 말을 주로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