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의서

10년간 진실의 힘을 후원해온 임인자 회원님은 광주극장 옆에서 서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광주 충장로의 역사와 기록을 공유하는 책 ‘충장디스커버리’를 썼고, 이 책을 계기로 광주시 동구청과 함께 ‘동구의 인물’을, 충장상인회와 함께 ‘충장로 오래된 가게’를 책으로 펴냈습니다. 동네서점 <소년의서>를 기지삼아 지역의 문화자원을 만드는 일을 왕성하게 하고 있습니다.

진실의 힘을 후원한지 10년이 지났습니다. 10년 전에는 연극을 하고 계셨나요?

10년 전에 저는 서울변방연극제의 예술감독으로 변방연극제를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변방연극제의 ‘변방’은 중심부가 아닌 최전방의 경계, 실험에 자유롭고 외부의 변화를 예민하게 포착하며 변화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 곳을 의미합니다. 새로운 형식의 연극, 연극이 아닌 것들의 연극, 사회적 목소리로서의 연극을 표방하며 활동을 하고 있었습니다. 2013년에는 평택 기지촌 할머니들이 직접 출연한 연극 <숙자이야기>를 초청하여 개막작으로 공연했고, 형제복지원 사건을 다룬 <우리는 난파선을 타고 떠돌았다>도 초청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에는 세월호 참사가 있었습니다. <25시-나으 시대에 고함>을 개막작으로 초청했고, ‘콜트콜텍 해고노동자’들과 ‘까페 그’의 이야기 <법앞에서>를 초청했고,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의 <프릭쇼>를 공연하기도 했습니다.

젊은 시절에는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이었나요?

광주에서 자랐는데, 어린 시절에는 봄, 여름이면 어김없이 거리에 매운 가스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그 냄새를 따라 세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중학교1학년 때 학교 담벼락에 눈을 부릅뜬 보라색 얼굴과 함께 “이게 왜 익사란 말인가”라고 쓰인 포스터가 붙어있었어요. 너무 무서웠지만 의문이 들었죠. ‘어째서 학교에서는 이런 질문에 답을 알려주지 않는가’, ‘매운 가스 냄새는 이런 일 때문이구나.’ 막연히 학교 밖에 많은 답들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고3때 까지는 공부만 하면서 지냈습니다. 같은 반에 무용을 하는 친구가 있었는데 수업에 거의 들어오지 않았어요. 점심 시간에만 교실에 왔는데 스텐레스 보온도시락을 보며 잘 사는 집 친구인 것 같아 질투도 했었습니다. 어느 날 남도예술회관에서 열린 학교 축제에 그 친구가 하는 무용을 2층 객석에서 보았는데, 그때 눈물을 흘렸어요. 너무 아름다웠거든요. 그때부터 예술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다가 결국 연극을 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 질문을 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늘 생각해 왔습니다. 아마 보라색 얼굴 포스터 위에 붙은 세상에 대한 질문을 저도 예술을 통해 하고 싶었고 그렇게 살아가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 같습니다.

지금은 책방<소년의서>의 주인으로 살고 계십니다. <소년의서>를 소개해주세요.

처음 <소년의서>는 형제복지원 사건을 알린 『살아남은 아이』라는 책을 팔고 싶어서 시작을 했습니다. 서점 이름을 지을 때, 해결해야 하는 사건을 드러내는 이름으로 짓고 싶었어요. 『살아남은 아이』는 형제복지원 피해자 한종선이 서른 여덟 살에 쓴 책인데 사건이 해결되지 못해 사건 당시 나이인 ‘아이’로 여전히 살아가고 있다는 점을 생각했어요. 다음으로 광주에 여는 서점이니까 한강 작가님의 책 『소년이 온다』를 생각했고, 그래서 이 두가지를 생각하며 <소년의서>라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소년의서>는 아직 해결되지 못한 일,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책들을 소개하려고 노력하면서 인문·사회과학·예술서점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 임인자님은 2024년 11월 11일 ‘제8회 서점의 날 기념식’에서 서점문화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문체부 장관상을 받았습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 이후 바빠졌다고 했습니다.

동네 책방을 운영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습니다. 한강 작가님 수상 전날 단 한 권의 책을 팔았어요. 그렇게 팔아서는 사실 월세를 내기도 쉽지 않습니다. 베스트셀러를 비치하는 것은 서점의 지향과 맞지 않고요. 그래서 어찌 보면 고집을 부리며 하고 싶은 대로 취향대로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셈이예요. 그러다가 한강 작가님의 노벨상 수상 이후에 저희 서점도 처음으로 오픈런이 있었어요. 감사한 일이에요. 그리고 그 이후에 동네 책방인 <소년의서>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더 많아졌습니다. 그래서 매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지역 독립서점 주인으로서 의견이 있으신지요.

동네서점을 운영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다양한 목소리를 이어주는 역할을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독자님들과 작가님들을 이어가면서 출판생태계에 기여하고 있다고 생각해서 쉽지 않지만 지속하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님의 책 수급과정에서 대형서점과 동네서점 사이의 유통체계의 불균형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동네서점을 유지하는 데에는 도서정가제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좀더 싼값에 책을 구할 수 있다는 이유로 도서정가제를 없애자고 하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습니다. 이미 2000년대 초반부터 인터넷 서점의 할인 때문에 지역 서점이 사라져간 것을 봤는데요. 도서정가제가 없어진다면 동네서점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유통의 불균형이 해소되고, 도서정가제의 안정된 이행이 되기를 정부에 바라고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팔기 위해 동네서점을 지키고 있는 많은 동네서점 책방지기님들을 생각해주면 좋겠습니다.

‘연극’에서 ‘서점’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사회적 목소리를 내고 계십니다. 왜 일까요?

<소년의서>는 대형출판사 위주의 유통과는 다르게 다양한 목소리를 가진 책들을 책방지기의 지향에 따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서점이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목소리가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일종의 플랫폼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제가 해왔던 연극들과 축제 기획의 지향과 비슷한 점이 있는 것 같아요. 변방연극제를 할 때에도 그러한 생태계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는데 동네책방을 운영하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같아요.

서점 외에 하는 일이 많은데,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세요.

저는 지역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과의 만남도 이어가고 있습니다. 지역 예술 활동은 서울과 다르게 지역의 위계에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보장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일에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2017년에는 광주시립극단 예술감독의 횡령사건 대응 활동을 시작해서 2020년에는 광주시립극단에서 일어난 부조리문제에 대한 대응활동에 참여했습니다. 그리고 2022년에는 광주연극계에서 생긴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연대활동을 했습니다. <소년의서>는 저녁에는 대책회의를 여는 장소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서점이 단순히 책을 파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가 함께 연대해 나갈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많을 때에 연대의 장으로 함께할 수 있다는 것은 힘들기도 하지만 감사한 일이기도 합니다.

10년 간 지켜 본 진실의 힘은 어떻습니까?

2014년에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모임 총무로 활동을 했는데 그 때 <진실의 힘>의 공간을 빌려 형제복지원 피해생존자 모임의 첫번째 정기총회를 했습니다. 그때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그 날 이후로 <진실의 힘> 활동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연극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많은 금액을 후원하지는 못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고요. 후원금액은 작지만 저의 지지와 연대의 표현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진실의 힘>이 책을 출판하고 있습니다. 서점 대표로서 당부나 기대가 있으면 얘기해 주세요.

<진실의 힘>이 출판한 『세월호, 그날의 기록』은 2~3번 봤는데, 꼼꼼한 기록이 인상적이었어요. 주장이 아닌 기록의 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었고요. 진실의 힘에서 책이 나올 때마다 관심있게 지켜보고 <소년의서>에도 입고해서 판매를 합니다. 하지만 책을 정말 많이 팔 자신은 없어서 <진실의 힘>에 따로 책을 구하고 싶다고 연락은 하지 못했습니다. 이 인터뷰를 기점으로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