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말(크리스마스) 출간된, 봄처럼 따뜻한 책 <오늘도 당신이 궁금합니다>의 저자 장은교님을 만났습니다. 장은교님은 10년간 진실의 힘을 후원하고 있고, 2022년 12월까지 경향신문에서 기자로 17년간 일했습니다.
새로운 문을 열다
진실의 힘은 우선 그냥 반갑고, 저 조직을 위해 뭔가를 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다는 마음의 빚도 좀 있습니다. 연락이 왔을 때 인터뷰 제안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는데 무척 반가웠습니다.
신문사는 2022년 12월에 그만뒀으니 1년이 좀 넘었습니다. 그해 초에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할머니’라 부르는 노인 세대 여성들의 삶을 일의 관점에서 기록한 작업이었어요.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라 정말 신나게 했는데 마칠 때쯤 되니 몸이 아프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은 두통이 오고, 어느 날은 걸을 수 없이 발목이 아프고, 어느 날은 책상에 앉아 숙였던 고개를 들지 못하게 됐습니다. 휴직을 하면서 막연히 6개월 쉬고 나서 다시 복직을 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어릴 때부터 기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고 세 번 도전 끝에 기자가 됐거든요. 하지만 쉬면서 몸과 마음이 모두 소진된 상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자가 되려고 노력한 시간을 포함해서 기자로 산 시간이 20년인데 문을 닫을 때가 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지나 온 문을 닫아야 다른 새로운 문이 보이겠다 싶었습니다.
배우는 시간
퇴사하고 일단 쉬자고 생각했는데 우연히 책을 내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번씩 원고를 써서 퇴사한 지 1년만에 책이 나왔습니다. 책 두 권을 더 쓰기로 계약한 상태고요. 제가 재밌다고 생각해서 기획한 프로젝트도 있고,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해서 만들고 있는 책도 있어요.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강의도 하게 되었어요. 저는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는 과정을 좋아하고 인터뷰를 하면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질문’에 대한 고민을 특화해서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른 사람에게 뭘 가르쳐 줄 입장이라고 생각해보지 않았기때문에 강의를 하면서 살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강의를 들으러 오는 분들이 이미 훌륭한 분들이어서 오히려 제가 배우는 게 많습니다.
의미와 재미가 있는 일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는 처음 기획할 때는 크게 주목받는 프로젝트는 아니었어요. 신문에는 보통 유명하거나 큰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이 나오잖아요. 누군지도 모르는 할머니들이 고생했다는 얘기 아니냐는 반응도 있었어요. 그런데 막상 기획이 연재되고는 반응이 정말 좋았어요. 기사를 보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다 다시 살 마음을 먹었다는 분도 계셨고요. 주위의 여성들을 다시 보게 됐다거나 명함 없이 일해 온 스스로에게 자부심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 정말 행복했어요. 프로젝트를 할 때는 잠도 줄여야했고 힘든 과정들도 있었지만 그 과정도 감사했고, 의미와 재미 모두를 잡을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걸을 알게 됐어요. 더 잘 하고 싶은데 저의 부족함을 깨닫는 것도 발전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진실의 힘
박경리 선생의 <토지>에 “여자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죽었다.”는 문장이 있습니다. 그 문장이 저에겐 오래 남아 있습니다. 한국처럼 국가가 개인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나라에서 가슴이 활활 불타오를 것 같은 인생을 산 사람이 어떻게 세상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어요. 박동운 선생님을 만나고는 “당신들이 틀렸고, 나는 잘못하지 않았다”고 의연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서, 어떤 폭력에도 자신의 세계를 무너뜨리지 않으며 사는 모습이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도 당신이 궁금합니다>에 진도가족간첩단조작사건을 ‘진실의 힘’이라는 제목으로 썼습니다. ‘진실의 힘’을 대체할만한 제목이 없었어요. 사람들이 글을 읽고 ‘진실의 힘’을 찾아보면 좋겠다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목차에 꼭 넣고 싶었어요.
퇴사 이후도 재미있습니다
요즘 저는 ‘몸값’이라는 말을 자주 생각해요. 기자로 일할 때는 월급을 정확히 얼마를 받는지도 신경쓰지 않았고, 돈을 생각한다는 것 자체를 나쁜 일인 것처럼 여기고 살았어요. 요즘은 ‘나는 돈은 몰라’라고 하는 것 자체가 무책임하고 오만하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능력이나 열정,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좋은 곳에 쓰려면 무엇보다 제가 가진 가치를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좌충우돌하고 있지만, 그만큼 배우고 있고요. 퇴사했는데 매일 성장한다는 느낌이에요. 그래서 퇴사(이후)도 재밌습니다.
앞으로 여전히
사람들의 이야기를 수집하거나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을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터뷰는 한 사람의 빛과 그림자를 함께 발견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빛나고 어두운 부분이 있잖아요. 어떤 분을 만나든 그분만이 가진 이야기를 함께 발견하고 싶어요. 책이든 강연이든 형태는 달라져도 기본적으로 그런 일을 계속 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