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 고 이한빛 피디 동생│

야속하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국회의원들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내고 행동했다. 그들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서 ‘기업’을 빼버리며 ‘중대재해처벌법’으로 바꾸었다. 법안의 내용은 전면적으로 후퇴되었다. 오랜 시간 멈춰있던 논의는 1주일 만에 물 흐르듯이 진행되었다. 단식 농성을 벌이는 유가족이라고 해서 일반 시민의 삶과 동떨어져 있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일상에서 누구나 경험했을 비극이자 좌절의 이야기를 꺼냈다. 그렇게 유가족의 단식은 시민들의 큰 공감대를 얻으며 국회를 압박했다. 하지만 국회의사당 울타리 안쪽 세계의 벽은 지나치게 공고했다.

5인 미만의 사업장에서 일한다고 대기업에 다니는 노동자보다 생명의 가치가 더 낮을 리가 없다. 공무원이 본인에게 주어진 감독의 역할을 온전히만 수행했어도 수많은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 한국과 같은 피라미드형 조직 시스템에서 최고 결정권자에게 안전의 책임을 물었을 때 구성원 전체가 무엇보다도 안전을 최우선으로 챙길 것이라는 사실을, 학교에서든 군대에서든 회사에서든 생애주기 내내 익숙하게 경험했다. 문제를 두 번, 세 번 반복해서 일으키는 기업을 방치하면 열 번이라도 사건이 재발할 것이 자명하다. 기업이 사건 조사를 방해하고 은폐한다면, 진실은 영원히 밝혀지지 못한다.

10만 명의 서명을 받았던 최초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에는 상식을 가진 시민이라면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안전한 일터의 기본 조건이 담겨 있었다. 떠나보낸 자식이 돌아오지 않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유가족이 단식을 하면서까지 설득해야 하는 특별한 권리가 아니었다. 그런데도 정부와 국회는 지난 몇 달간 꿈쩍도 하지 않다가 유가족이 극단적인 상황에 부닥치자 겨우 움직이기 시작했고, 그마저도 후퇴하고 후퇴했다.

연합뉴스
왼쪽에서 두 번째 고 김용균 씨의 어머니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 이용관 씨.

퇴근길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따뜻한 집이 기다리고 있는 퇴근길은 지친 몸을 녹일 수도 있고, 소중한 사람을 다시 만날 수도 있는 설레는 길이다. 하지만 하루에 일곱 명이 퇴근을 못 한 채 우리 곁을 떠나고 있었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해 그 일곱 명의 생명을 지키고자 했다. 하지만 보통의 작은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따뜻한 겨울을 보내기란 너무나 어려웠다. 정치는 안전과 기업의 이윤 사이에서 기업의 손을 들었다. 법사위의 논의 과정에서는 내용조차 제대로 숙지하지 않고 온 국회의원이 기업의 이해관계만 늘어놓는 일도 허다했다.

똑똑히 기억해야 한다. 안전을 위해 당연히 해야 할 조치를 누가 결정하지 않았고 어떻게 무산되었는지. 후퇴한 법안이 언젠가는 다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긴 호흡으로 끈질기게 가야 한다. 항상 절박하게만 살아갈 수는 없으니 이제 시작했다 생각하고 조급하지 않게 나아갈 방향을 준비해야 한다.

다만 다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가족 투쟁'이라는 방식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들에게는 투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 사회는 죽음의 의미를 무겁게 부여하기에, 유가족의 투쟁은 시대마다 운동을 확산시키는 기폭제 역할을 해왔다. 언론이든 정치든 누구도 약자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지만, 유가족이라도 나서면 조금이라도 변화를 만들어 내다보니 불가피한 선택이 되는 것이다. 유가족 스스로도 자신의 가족에게 벌어진 비극의 상처가 사무치게 남아있기에, 아픔이 반복되지 않도록 자발적으로 앞장서는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무거운 사회적 사명감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감당해야 하는 오늘의 방식은 개인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죽음을 짊어지고 앞으로만 나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죽음의 의미가 무엇일지 긴 호흡으로 집중하기 어렵다. 때로는 투쟁 과정에서 죽음이 자극적으로 전시되며 새로운 상처가 생기기도 한다. 긴 시간 동안 서로 간의 상처와 갈등으로 인해 흩어지고 멀어지는 투쟁을 우리는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투쟁의 승리와 법안의 제정도 매우 중요하지만, 추모의 시간을 천천히 가질 수 있도록 역할을 나누는 것이 필요하다.

당장 시민사회가 두터워져서 ‘죽음’ 없이도 사회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는 어렵다 보니, 당분간은 유가족들이 여러 공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을 것이다. 투쟁의 현장에서 활동가든 유가족이든 상처를 덜 받고, 떠난 가족에게도 떳떳할 수 있고, 떠난 가족을 다시 만나는 순간까지 힘을 잃지 않으면 좋겠다. 제대로 된 법안 제정과 조속한 단식 마무리 사이 어딘가에 내 마음이 있었기에, 아버지와 김미숙 어머님이, 아직은 농담도 잘하실 때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통과라도 되는 성과를 보시고 병원에 가실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1월 8일 단식농성이 끝난 이후에도 지금의 안도한 마음이 계속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