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진실의 힘 설립자들" 작은 다큐 상영회
임설희(감자 껍집 파이 북 클럽 회원)
<진실의 힘>을 알게 된 것은 조용환 변호사님을 통해서였다. 내가 속한 독서 모임인 <감자 껍질 파이 북 클럽>에서 지난봄에 조용환 변호사님을 모시고 조 변호사님의 저서인 『안데스를 걷다』를 함께 읽으며 뵀다. 그 때 조 변호사님이 조작 간첩 사건 등 국가 폭력 피해자들의 재심을 맡아 무죄를 이끌어 내고 피해자 분들이 만든 단체인 <진실의 힘>의 이사로 활동하신다는 것을 알았다. (<감자 껍질 파이 북 클럽>은 정치역사 사회학을 전공하고 민간인 학살에 대해 연구하며 진실화해위원회 활동도 하신 연세대 한성훈 교수님과 함께 책을 통해 국가 폭력과 민간인 폭력에 대해 공부하는 모임이다.)
7~80년대, 군사 독재 정권에 불리한 일이 생기면 갑자기 간첩단 사건이 터져 정권의 일들이 묻히곤 했던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일을 피상적으로 안다는 것과 피해자들을 직접 보고 듣는 것은 달랐다. ‘진실의 힘 설립자들’ 다큐 상영회에서 본 조작간첩단 피해자들의 육성을 통한 증언은 그동안 잊고 살았던 혹은 외면하고 살았던, 그러나 우리와 동시대에 사는 분들이 분명히 겪은 진실의 이야기 들이었다.
행사는 이번 12.3 비상계엄에 혹 예비검속으로 또 붙들려 가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떨며 밤잠을 설치셨다는 박동운 이사장님의 이야기에 이어 다큐 상영이 시작되었다.
- 1981년 신문 1면에 대서특필 됐던 진도 간첩단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한국전쟁 당시 5살 때 헤어져 30년간 보지도 못했던 아버지가 간첩으로 내려와 접선을 했다며 맏아들인 자신과 동생, 어머니와 고모 고모부까지 일가족을 모두 간첩 혐의로 잡아들여 모진 고문을 받고 만나지도 않은 아버지와 함께 간첩 활동을 했다는 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은 후 무기로 감면 받아 결국에는 광복절 특사로 풀려나기 까지 18년의 징역 생활을 했던 박동운님의 이야기.
- 단짝 친구가 북에서 받아온 책을 내놓으라며 다짜고짜 잡아들여 구타와 고문을 하더니 친구가 북에 다녀온 이야기를 들었다고 털어놓으라는 강요에 거짓 증언을 하고 8개월 간의 형무소 생활을 한, 그 친구들과 화해와 용서를 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개야도 어민 임봉택님의 이야기.
-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않았던 시절, 일본으로 연수를 갔다가 고모와 사촌을 만났던 일을 빌미로 남산의 중앙정보부로 끌려가 고문을 받고는 모르는 사람들과 조총련 간첩단으로 엮여 7년의 징역을 살고 나오신 오주석님의 이야기.
- 남한에서 훈련을 받고 북파공작원으로 북한에 들어갔으나 체포되어 다시 남파간첩으로 내려오게 되었고 자식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바로 자수를 했으나 간첩으로 몰려 사형 당한 아버지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다 드디어 아버지의 무죄를 선고 받은 심한운님의 이야기.
- 연평도 조기잡이배의 선원으로 38척, 270여명의 선원들과 함께 북에 피랍됐다 풀려 난 후 한국에서 조사 받고 1년의 실형을 산 뒤 17년 후에 또 다시 영문도 모른 채 보안대로 끌려가 고문 받고 조작간첩으로 몰려 6년을 복역하고 나온 정삼근님의 이야기.
(교도소에 있는 동안 늘 번호로만 불렸다는 임봉택님의 이야기가 마음에 걸려 이분들의 이름은 하나 하나 꼭 불러 드리고 싶었다.)
이런 이야기들이 비단 이 분들께 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슴속에 응어리 진 채 그 한을 다 풀지도 못 한 분들도 아직도 많이 계실 것이다. 이 분들이 받았던 고문은 사람이 도저히 사람에게 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참혹함의 극치로 당시의 고통은 물론 지금까지도 그 후유증에 힘든 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당신들이 그 안에서 받았던 고문보다도 밖에서 가족들이 이웃과 사회에서 받은 냉대, 그리고 연좌제로 인한 좌절은 간첩의 딸로 살아 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다큐에서 이야기한 박미옥님의 이야기에서도 알 수 있었고, 오주석님의 둘째 아들의 대학 동기였던 나도 그 형제들과 어머님이 겪은 당시의 고초를 직접 들었기에 그 어려움을 어렴풋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출소하고 나서도 이웃과 사회의 냉대와 손가락질에 다시 감옥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다는 임봉택님의 증언을 보면 우리 사회가 정부의 발표만 믿고, 조작해서 죄를 뒤집어 씌운 국가 이상으로 얼마나 이분들을 힘들게 했는지 새삼 죄송한 마음과 반성을 하게 된다.
“정의를 믿은 거예요. 진실을 믿었고 그래서 무죄를 받았고 진실의 힘은 내 삶과 같습니다”라는 그 믿음으로 힘든 시간들을 견뎌 내신 피해자분들이 드디어 무죄를 선고 받고 국가의 손해배상금으로 자신들 같이 국가에 의해 피해를 받은 사람들을 돕기 위해 <진실의 힘>을 만드셨다. 이 후 <진실의 힘>을 통해 인권침해 피해자와 용산참사 피해자, 세월호 피해자 등 이 시대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치유와 연대의 모습을 보여주심에 큰 감동을 받았다. 고통을 겪어 본 자 만이 그 고통을 이해하고 위로해 줄 수 있기 때문일까.. 정말 ‘ 인간의 삶은 폭력보다 강하다’ 라는 것을 몸소 보여주신 분들이었다. 다큐를 보며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그 힘든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진실의 힘>을 통해 만난 조작 간첩 피해자분들이, 이런 좋은 날이 올 줄 어찌 알았겠느냐 며 “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라며 함박 웃음을 지으시던 장면이었다. 평생의 응어리로 남아 있던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또 그것을 들어주며 그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 이해하면서 함께 해 주는 사람들의 모임. <진실의 힘>이 있어서 참 든든하고 고마웠다. 이런 만남과 대화의 자리가 사소해 보이는 듯 해도, 한강 작가가 이야기 한 '폭력의 반대편에 서는 일'의 시작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더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