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유현 (12ㆍ3시민, 대학원생)

‘운이 좋았다.’ 이 책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은 그날 밤 계엄이 해제됐기 때문이고, 313명의 시민이 인터뷰에 응할 수 있던 것은 그날 죽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날 밤 국회에 있던 시민 중 한 명이다. 그러나 현장에 있었다고 해서 실시간 생중계나 SNS 등의 매체를 통해 상황을 지켜보는 이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알았던 것은 아니다. 솔직히 밝히면, 그날 밤은 내게 거칠고 강렬한 한 덩어리로만 남아 있었다. 이 책을 읽는 것은 동료 시민의 얼굴을 마주하고, 그 덩어리를 풀어내는 치유의 시간이었다.

동료 시민의 얼굴을 마주하는 일

『내란의 밤, 시민의 기록』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1부에서 3부까지는 12월 3일 밤 10시 27분부터 이튿날 해가 뜰 때까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전개된다. 시민들이 어떻게 결단을 내렸는지, 국회로 가는 길에서 무엇을 경험했는지, 그곳에서 어떻게 내란을 막아냈는지를 구체적 장면과 육성으로 기록했다. 국회 안팎의 증언, 계엄사령부의 지시, 서울시 생활 인구 데이터까지 교차 분석하여 그날 밤을 입체적으로 그려냈다는 점에 특히 감탄했다.

1~3부가 멀리서 숲의 전체 지형을 아우르는 새의 시점이라면 4~5부는 숲의 나무들을 세세히 훑고자 한다. '12ㆍ3시민'이 누구인지, 그들이 바라는 민주주의는 무엇인지를 해석한다. 따라서 불평등, 혐오, 양극화, 차별금지법, '작은 계엄' 등 한국 사회가 당면한 문제 전반을 아울렀다. 솔직히 말하면 1~3부에 비해 4~5부의 서술은 추상적이고 논의가 하나로 통합되지 않았다는 인상도 받았다. 그런데 좀 더 곱씹어보니, 각자 다른 의제를 가진 다양한 사람의 의견이 통합되지 않는 것은 당연했다. 12월 4일 새벽, 계엄 해제 의결 직후 국회 1문 앞에 마련된 단상이 떠올랐다. 어쩌다보니 그곳에 가장 가까이 있던 사람 중 한 명으로서, 그 절박한 목소리들이 종이 위에 기록되어 기뻤다.

'시민사'란 본래 이런 것일까? 이 책을 읽으며 끊임없이 ‘다 사람이 하는 일이었구나’ 생각했다. 경찰, 군대, 국회 등 시스템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며 사람에 의해 작동한다. 이 간단한 사실을 잊고 있었다. 그날 밤 국회를 지킨 것도, 침입하려 한 것도 모두 육체를 가진 살아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 책은 바로 그 사람들의 생생한 이야기다.

경찰은 망설이지 않았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눈길이 갔던 대목은, 뜻밖일 수도 있지만, 경찰의 행동이었다. 정상참작의 여지가 있는 군대와 달리 경찰 인력은 계엄 해제 의결 전후가 한결같이 "그악스럽게 끝까지 국회를 봉쇄하고 시민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243쪽). 완전무장한 군인이 국회의 유리창을 깨는 장면은 충격적이며 상징적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그들 중 일부는 망설였다. 경찰 중에는 아무도 망설이지 않았다.

나는 이것을 습관의 문제라고 분석했다. 군인은 복무 중 민간인과 대치할 일이 없다. 반면 경찰은 민간인을 상대하는 일이 일상 업무다. 비상계엄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더라도 경찰 조직에 속한 사람은 명령을 받아서 출입을 봉쇄하고 팔다리를 잡고 들어내며 신체에 위협을 가한다. 총기 사용 같은 생명과 직결되는 폭력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상이기에 더 무섭다. 당신이 타인의 팔다리를 잡고 들어내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상상해보라.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고 마음이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든 행동이 두 번, 세 번 반복될수록 점점 무뎌지고 어느 순간 동료 인간의 몸은 수십 킬로그램의 다루기 까다로운 짐 덩어리로 여겨질 것이다. 직장인의 한낱 피곤한 업무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어쩌면, 민주 시민이 되는 일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경찰이 폭력을 습관으로써 행사했듯 시민들도 민주주의를 습관으로써 지켜낸 것이다. 습관이기 때문에 한 번 높아진 상식의 기준선은 쉽게 내려가지 않는다. 속된 말이지만 '역체감'이라는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겠다. 민주주의의 역체감을 도저히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국회로 나선 것이라고. 그렇다면 상식의 기준선은 어떻게 다시 새롭게 그어지는가? 나는 간단히 '이야기'라고 답하고 싶다.

이야기의 힘

“다시 한번 반복하건대, 우리는 운이 좋았다.”

12ㆍ3 계엄의 밤, 국회는 라이브 방송과 실시간 SNS로 열린 공간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시민들을 움직인 것은 실시간 정보만이 아니었다. 인터뷰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5ㆍ18 광주'의 기억이 시민들을 행동하게 했다. 12ㆍ3 내란은 역사적으로도 고립된 사건이 아니었다. 광주의 이야기가 12ㆍ3시민을 만들었다. 이러한 연대의 기억과 내일의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은 이 책이 진정으로 천착하는 주제이다. 새 술에는 새 부대가 필요하듯이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내란의 밤, 시민의 기록』은 스스로 정의한 것처럼 "시민의 윤리를 전승하는 이야기"(417쪽)다. 광주가 12ㆍ3을 불러냈듯이 12ㆍ3은 또 다른 세대를 부를 것이다. 이 책은 그 전승을 위해 쓰였다. 일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