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 흐른 2015년 봄이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이 정치적 시빗거리와 편가르기의 대상이 되고, 유족들은 차가운 거리에서 노숙을 하며 떠돌고 있었습니다. 그 때 한 아버지를 만났습니다. 박수현 학생의 아버지 박종대 선생은 새벽마다 아들의 책상에 앉아 기록더미와 씨름하고 있었습니다. 한겨레 21 정은주 기자가 세월호와‘진실의 힘’을 이어주었습니다.
유족들이 건너야 할 슬픔과 절망의 시간 위에 진실의 힘이 견뎌온 시간들이 겹쳐졌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 우리는 고문 조작의 기록과 호소문을 가득 넣은 가방을 들고 거리를 헤맸습니다. 냉정히 뿌리치며 돌아서는 뒷모습을 지켜볼 때의 모멸감, 귀 기울이는 분들에게 허둥지둥 설명하고 난 다음에 오는 공허함, 실낱 같은 진실의 단서라도 찾으려고 미로 같은 기록을 뒤질 때의 무력감, 끝을 알 수 없는 막막함…. 세월호 유족들의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었습니다.
‘세월호 프로젝트’ 의 목표는 이미 만들어진 기록과 자료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독자적 조사를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온전한 진실과는 분명히 거리가 있지만, 진실을 밝히는 작업은 지금 있는 기록과 자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성과는 성과대로, 한계는 한계대로, 현실을 정확하게 파악해야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출발점으로 삼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막상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보니 처음에 예상했던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엄청난’ 양의 기록이 있었습니다. 끝내 수집하지 못한 자료도 적지 않습니다. 어둡고 탁한 바닷물 속에 잠겨 있는 세월호처럼, 진실도 그에 못지 않게 막막한 기록과 자료의 바닷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세월호 기록팀은 시민의 눈으로 사실을 확인하려고 노력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세월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침몰할 때까지 101분 동안 선장과 선원들은 무엇을 했는지, 해경과 지휘부는 무엇을 했는지, 선장과 선원들을 도주시킨 해경이 배에 갇혀 있는 승객들은 왜 못 구했는지 추적했습니다. 승객들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존자들은 어떻게 살았고 희생자들은 왜 희생되었는지 알아보았습니다. 배는 왜 침몰했는지, 우연한 사고였는지, 사고가 날 때까지 세월호와 청해진해운에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일을 했는지 확인했습니다.
‘과연 승객들을 구할 수 있었을까?’, ‘476명이 탄 여객선이 갑자기 침몰하는 상황에서 해경이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모든 의문은 결국 이 질문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제가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이것을 다 챙깁니까?”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의 항변은 현장의 해경들은 물론 해경 지휘부의 생각을 대변합니다. 기록팀은 객관적인 자세로 검토했습니다. 그리고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구할 수 있었다!”
재난 구조는 신의 영역에 속하는 일이 아닙니다. 국가의 일입니다. 시민들은 재난 현장에서 공무원이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리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법과 규정에 정한 대로, 권력을 행사할 때 내세우는 명분에 합당한 수준의 책임감과 판단력을 가지고 직무를 수행하라고 요구할 뿐입니다.
‘세월호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면서 우리는 몇 장면을 기억합니다. 선장과 항해사, 조타수, 기관장을 포함한 간부 선원들은 일찌감치 모여서 기다리다가 해경이 도착하자마자 도망쳤습니다. 선원의 임무를 다한 사람은 사무장 양대홍 씨와 하급 선원 정현선, 박지영, 안현영 씨뿐이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순간, 멀찌감치 떨어진 123정은 “어선들 철수해, 철수하라고” 라고 방송하며 지켜만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업지도선과 어선들은 위험을 감수한 채 세월호에 달라붙어 한 명이라도 더 구하려고 끝까지 안간힘을 썼습니다. 화물차기사 김동수, 심상길 씨와 일반 승객 김성묵 씨는 마지막 순간까지 학생들을 구해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더 많이 구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마음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안내방송만 믿고 배 안에 남았다가 꼼짝없이 갇히게 된 학생들은 위급한 상황에서도 서로 위로하고, 구명조끼를 찾아주었습니다. 탈출하지 못한 친구를 찾으러 죽음이 닥쳐오는 배 안으로 다시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학생들은 부모와 헤어져 울고 있는 다섯 살 아기를 달래며 보살피다가 끝내 살려냈습니다. 그 참담한 순간, 공포에 떨던 ‘아이들’이 아기를 구해냈습니다.
이들의 행동은 왜 이렇게 달랐을까요? 그 차이가 뜻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프로젝트를 끝낸 우리를 붙들고 있는 질문입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 그리고 이 시대를 고민하는 시민들과 함께 답을 찾고 싶습니다.
이 책을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박다영 씨, 박수빈 변호사, 박현진 씨가 정은주 기자와 함께 깊고 어두운 기록의 바다에서 진실의 조각들을 건져 올렸습니다. 수십만 장의 기록과 수많은 자료를 읽고 보고 듣기를 되풀이했습니다. 사건의 크기와 깊이를 생각하면 결코 길다고 할 수 없는 기간이지만, 깊은 책임감을 가지고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교열자 허선주 선생과 편집 디자이너 공미경 선생은 무리한 일정 속에서 최선을 다해 읽을 만한 책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박지홍 선생은 첫 출판의 낯선 길에서 크고 작은 도움을 줬습니다.
‘세월호 프로젝트’를 시작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주신 뜻있는 변호사들과 후원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기꺼이 마중물을 부어주신 고마운 분들이 없었다면 이 책은 세상에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 분들의 귀한 뜻에 값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진실의 힘 이사인 조용환 변호사는 처음부터 끝까지, ‘세월호 프로젝트’가 출범하고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더할 나위 없는 수고로 이끌어 주었습니다. 송소연, 강용주 이사와 이사랑 간사는 기록팀이 하루하루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모든 것을 뒷받침했습니다.
모든 일이 그렇듯이, 여기에 일일이 이름을 밝히지 못하는 많은 분들이 이 프로젝트를 성원하고 도움의 손길을 주셨습니다. 자료를 제공하신 분들, 여러 조언을 해 주신 분들, 사진을 다듬어주고, 기록을 복사하고 저장하고 출력하고 운반하는 거추장스러운 일을 도와준 분들을 잊을 수 없습니다. 기록팀이 지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지지하고 격려해준 분들의 고마운 마음도 기억합니다.
깊고 어두운 기록의 바다 속을 헤매는 기록팀을 안내한 것은 승객들이 남긴 자료들이었습니다. 휴대전화에 남긴 단원고 학생들의 음성과 동영상, 문자와 카카오톡 메시지, 그리고 생존자들의 용기 있는 증언이 길을 밝혀 주었습니다. 세상을 향해 남겨놓은 마지막 목소리를 허락해준 유족들과 4.16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협의회의 뜻을 특별히 기억합니다. 맞잡은 손을 놓지 않겠다는 인사로 마음을 전합니다.
잊지 않는 사람들, 기억하는 사람들의 노력으로 진실이 모습을 드러내고 세상이 조금씩 바뀌어 왔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 길에서 이 책이 때로는 나침반이 되고 때로는 지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월호 희생자들과 생존자들, 유가족들, 진실을 찾기 위해 애쓰는 분들께 이 책을 바칩니다. 감사합니다.
2016년 2월
재단법인 진실의 힘 이사장 박동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