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활동가 라이브톡] ‘종이 기록’의 의미
올여름 대학생 자원활동가들은 진실의 힘이 진행한 조작간첩 사건 소송기록의 디지털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다섯 개 사건의 재심, 형사보상, 손해배상 기록은 약 2만 1천 쪽에 달합니다. 피해자 진술서, 탄원서에는 간첩으로 조작돼 긴 세월 옥살이를 했던 이의 울분 섞인 메모와 밑줄이 흔적처럼 남아 있습니다. 이 기록을 받아 든 변호사와 활동가는 오타 하나, 여백 하나까지 외울 만큼 철저하게 기록을 헤집으며, 단 하나의 고문과 간첩 조작의 증거도 놓치지 않고 찾아냈습니다.
‘무죄’ 그 자체인 조작간첩 사건의 종이 기록을 디지털화하기 위해 자원활동가들은 매일같이 세월의 흔적에 누렇게 변색된 진술서를 한 장씩 조심스럽게 넘기며 스캔을 하고, 새로운 이름을 붙이고 있습니다. 9명 자원활동가 구민채, 김동민, 김세민, 박채연, 심민지, 양유진, 윤성민, 임은지, 포민철과 함께 ‘기록의 의미’를 나눴습니다.
조작간첩 사건 기록을 처음 봤을 때 어땠나요. 잘못 손대면 금세 찢어질 것 같은 기록 앞에서 긴장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은지: 일단 양에 압도됐어요. 그런데 오래전 기록임에도 유실된 부분 없이 잘 정리된 것을 보고 피해자들과 변호사들의 노고가 느껴졌어요.
유진: 양에 압도됐다는 은지 언니 말에 동의해요. (웃음) 간첩을 조작하고 사건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맞서 진실을 추적하는 노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물질적 증거가 되는 기록을 눈으로 보니 수십 년의 투쟁을 실감할 수 있었어요. 피해자들이 휘갈겨 쓴 손글씨와 종이 곳곳에 찍힌 지장에서 느껴지는 현장감에 저도 모르게 숙연해졌어요. 그래서인지 기록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더욱 조심스럽기도 했어요.
세민: 저도 양을 보고서 ‘헉!’하고 놀랐어요. 어려운 법률용어와 옛날에 사용된 말들이 굉장히 생소하게 느껴졌고요. 타자기 폰트나 당시 사람들의 정갈한 국한문 혼용체에서 왠지 모를 거리감이 들기도 했어요. 피해자들의 이야기는 기록의 외관을 눈으로 다 뜯어보고 나서야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동민: 양에 놀랐다는 것에 공감해요. 이렇게까지 많은 기록을 생산하며 간첩을 만들었던 수사기관 등의 노력이 참 어떤 면에서는 대단하기도 했고요.
민철: 기록을 조작하고 허위 자백을 강요하는 장면, 장면들이 그려졌어요. 종이 기록으로 봐서 그런지 그 장면들이 더 생생하게 느껴졌고요.
민채: 고고학 전공이라 박물관에서 수 천 년 된 유물을 자주 만져본 터라 오히려 누렇게 바래거나 찢어진 종이 자체는 친숙했어요. 세민과 같은 기록을 보는데 ‘한문’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어요. 조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다 한자로 쓰여 있는데 어떻게 읽고 이해해서 정리해야 할지 막막함이 컸죠. 그런데 기록에서 중요하다고 표시해놓은 부분 위주로 보기 시작하니 ‘아 이런 내용이구나’ 하고 감 잡을 수 있었어요.
민지: 저도 방대한 양을 보고서 기록이 담고 있는 긴 시간과 오랜 싸움의 흔적에 놀랐어요. 한편으론 이 기록을 정리하는 것 자체가 무언가 사건에 한발 다가가는 느낌이었어요. 80년대 간첩 조작 사건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과 내 앞에 놓인 기록과의 ‘물리적 거리감’이 서로 상충해서 긴장됐나 봐요.
동민: 다들 비슷했네요. 지금으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들이 실제로 일어났던 일들이라는 사실이 와 닿았어요.
민지: 재심부터 손해배상까지의 지난한 과정을 읽고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답답하기도 하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많은데, 이를 수십 년 동안 겪은 당사자 선생님들과 가족들의 아픔은 감히 상상도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특히 80년대가 아닌 90년대, 심지어 2010년대에 접어들어서도 법정 투쟁이 계속되는 걸 보며 국가의 폭력이 나와 동떨어진, 분리된 세계에서만 일어난 '과거'의 일이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여전히 존재하지만 가시화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이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지 못한 스스로가 부끄러웠습니다.
채연: 저도 같은 심정이었어요. 그래서 약간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오히려 기대하게 됐어요. 기록을 정리하고 나면 이게 어떤 형태로 남을까, 누가 보게 될까, 그리고 시간이 흐른 후 이것은 어떻게 사용될까 하는 궁금증, 기대감이요.
민채: 맞아요. 누가 이 기록을 보게 될까 하는 기대감에 정말 공감해요.
언제부터 기록에 익숙해졌다고 느꼈어요?
세민: 정리 방법과 요령이 익숙해진 후에는 피해자들의 이야기가 머릿속에 들어왔어요. 그제야 당시 진술서를 받는 과정, 장소 등에서 경찰의 회유라든지 당시의 정황이 보였고요. 기록 중 피해자의 배우자가 대법원장, 법무부 장관에게 진정서를 썼는데, 사법경찰관이랑 검사가 말만 잘하면 별일 없을 거라고 그랬다고 해요. 몇 줄 안 되는 내용이었지만 읽고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민채: 저도 그 진정서를 인상 깊게 기억해요. 검찰의 회유나 협박도 드러났지만 무엇보다 “자신이 결백하기만 하면 무죄가 후에 입증되리라는 자신감, 사법부가 올바른 판결을 내릴 것이라는 믿음”이었어요. 국민은 국가 사법 체제를 믿었는데 국가 사법 시스템은 결국 무고한 사람의 믿음을 저버리고 진실을 외면했다는 게 너무 아쉬웠죠. 그런 점에서 재판장의 피고인 신문, 피고인 측 변호인들이나 검사의 신문도 마찬가지로 아쉬웠어요. 사형이나 무기징역이 선고되는 중한 재판인데도 정작 거의 유일한 증거라 할 수 있는 자백의 임의성에 대한 검증은 전혀 하지 않더라고요.
은지: 몇 가지 인상 깊은 지점이 있었어요. 철저하게 사건을 조작하는 과정에서는 아무리 ‘배운 사람’이라고 해도 국가의 무자비하고 계획된 폭력 앞에서는 무력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읽기에도 버거운 양의, 매우 조리 있게 정리된 진술서와 진술조서가 아주 단기간에 작성됐다는 점(나라면 절대 하루 안에 진술할 수 없는 내용)에서 한 마디로 사건이 ‘말이 안 된다’고도 느꼈습니다. 깔끔하게 작성된 문서 그 자체가 앞서 긴 시간의 고문이 있었고, 누군가가 진술서의 내용을 불러준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동민: 피해자 분들이 작성하신 글들이 가장 기억에 납니다. 몇 십 년 전의 수사기록과 재판기록도 인상 깊었지만, 피해자분들이 재심을 준비하면서 작성한 진술서, 탄원서, 사건기록에 대해 직접 작성한 메모들이 눈에 들어왔어요. 몇몇 기록에는 피해자가 그어놓은 수많은 밑줄, 메모가 가득 차 있었어요. 피해자 스스로 과거의 일을 되짚어 보면서 떠올린 억울함과 자신의 무고함을 입증하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빼곡한 기록물을 보니 마음이 좋지 않았어요. 이외에도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탄원서, 재심 과정에서 자필로 작성된 최후 진술서를 읽어보면 문장 하나하나에 그분의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이 느껴졌어요. 다른 어떤 기록물들보다 더 눈이 가고 강하게 기억에 남습니다.
민철: 저도 선생님의 진술서, 메모들이 가장 인상 깊었어요. 원본을 그대로 가져와야 하는데 너무나 억울한 나머지 기록 여기저기에 글들을 써놓으셨더라고요. 그 간절함이 느껴졌습니다.
민지: 진실화해위원회(진화위) 기록을 읽는데, 수사관들이 과거 자신이 서명한 수사 기록이 명백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내가 서명한 것은 맞지만 직접 (고문 등에) 참여한 것은 아니’라고 부인하거나, ‘위에서 내려온 지시를 따랐을 뿐이다, 당시 일이 많아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등으로 답했을 때 굉장한 무력감을 느꼈어요.
민채: 가장 엄정하고 정확해야 할 수사기록에 추측성 발언이 너무 많다는 것이 충격이었어요. 재판 기록 중에 수사기관이 당시 실종된 인물에 대해 '죽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살아있다면 필경 남파간첩이 되었으리라'라고 주장하는데, 이 사건 전체가 그 불확실한 가정 하나에서 출발한 거죠.
채연: 맞아요. 저는 합법적인 절차를 거쳤다고 해서 옳음이 증명되는 게 아님을 인지해야 한다는 것도 기록을 통해 배웠어요. 법원 판결에 영향을 미치는 문서임에도 불구하고 작성 과정 자체에도 문제가 있었고, 그게 ‘사실’도 아니었잖아요. 이것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도 형태는 다르지만 계속해서 유지되는 어떤 시스템적 문제라고 생각하거든요. 지난 진실의 힘 김영희 교수님 강연에서도 언급됐던 것인데, ‘밀양 할매’들이 탈송전탑 운동의 당사자임에도 불구하고, 밀양 송전탑 공론화위원회에서 배제된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당사자와 소수자의 의견은 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조작간첩 사건이 발생한 건 제가 태어나기도 전의 일이지만, 우리 사회는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서 괜한 무력감도 느껴지고 무섭기도 해요.
지금도 다른 형태로 과거의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는 말이 무겁게 느껴져요. 업무 전에 각자 맡은 기록의 사건을 간략히 설명했지만, 사건 흐름을 이해할 시간은 부족했을 것 같습니다. 사건 정보를 따로 찾아본 적이 있나요? 기록 정리에 있어서 여러분에게 필요한 정보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세민: 궁금한 점이 생기면 그때그때 검색을 했는데 가장 많이 검색한 건 한문이고, 다음은 법률용어였어요. 이 두 가지가 처음 자료를 맞닥뜨렸을 때 가장 난감했어요.
채연: 양이 방대하다 보니, 하나하나 다 읽지 못해서 지금 나의 위치가 어디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느낀 적도 있어요. 기록을 정리하기 전에 사건의 개요나 과정, 현재 상황 등을 파악하기 위해 인터넷에서 사건을 검색해 봤어요.
동민: 사건에 대한 간략한 설명은 들었지만 확실히 문서를 정리하면서 보게 되는 수많은 정보 때문에 머릿속에서 정리가 잘 되지 않았어요. 그럴 때 진화위 보고서가 사건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세민: 저는 자원활동가들의 인터뷰나 사건 관련 기획 기사를 찾아본 적 있어요. 제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이 자료를 정리해야 할지 항상 고민이 되더라고요. 자원활동을 할 때뿐만 아니라, 제 자신이나 타인의 사정을 들여다볼 때면 나도 모르게 타자화를 할 때가 많은데 나는 다르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는 건 온전한 공감에 방해가 되고, 위험하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자원활동가나 피해자들의 구술인터뷰를 살피면 어느 정도 마음가짐을 다잡게 돼요.
은지: 저는 일을 시작할 때쯤 사건을 몇 개의 기사로 먼저 살펴봤어요.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 것은 대법원이 이 사건에서 두 차례나 파기환송을 하고도 결국 스스로의 판결을 뒤집은 점, 즉 대법원이 고문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자백의 내용은 유효하다는 참담한 판결을 내렸다는 점이었어요. 또 무죄 판결 당시의 시사인 기사가 인상 깊었어요. 기자가 피해자를 찾아가자 왜 왔냐고 화를 내고 의심하는 모습에서 깊은 상처가 느껴졌고, 특히 마지막 문단에서 82년 당시 간첩조작 사건을 열심히 홍보했던 주요 언론이 오늘날 그 지면에서 무죄 판결 소식은 다루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간첩 누명 쓴 ‘송씨일가’의 지옥 같은 25년”, 이오성, 시사IN, 2007.10.29.)
피해자를 대하는 방식에서 그 사회의 품격을 짐작할 수 있죠. 그런데 우리 사회는 피해자는 증언하고 고발해야 하고, 고통 속에만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 피해자를 대한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습니다. 다음 질문으로, 기록을 잘 정리하기 위한 여러분만의 방식이 있을까요.
민채: 모든 아카이빙이 그렇듯 ‘이 기록을 나중에 누군가는 꼭 보겠지’하는 생각으로 해요. 나중에 이 기록을 접할 사람이 잘 이해할 수 있게끔 파일의 이름을 정해야 한다고 생각하다 보면, 나름의 기준도 생기고요.
세민: 맞아요 특히 당사자가 많을 때면 파일명에 어떤 분의 이름을 기재해야 할지 더 고민돼요.
채연: 자료의 양에 압도되는 것만큼 우리 파일 목록의 아름다움에도 압도되고 있어요. (웃음)
유진: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진 부분도 있어요. 예를 들어 보통 피의자마다 사건기록목록과 인지동행보고가 나오고, 진술서와 피의자신문조서가 번갈아 나오고, 수사결과보고서로 이어지는 흐름이거든요. 이제는 기록을 안 보고도 다음에 어떤 자료가 나올지 예상할 수 있어요. 또 기록 끈을 풀었다가 다시 묶는 시간이 많이 단축되었어요. 초반에는 스캔하는 것보다 기록 끈을 다시 묶는 데 시간이 더 걸렸거든요.
은지: 맞아요 거의 자동으로 습득됐어요.
유진: 은지 언니와 저는 이제 기계처럼 기록 끈을 묶을 수 있어요.
은지: 거의 한 몸처럼 움직이지! (웃음)
세민: 기록 끈, 쉽지 않습니다. 과거 수예부 했던 짬도 울고 도망갈 기록 끈 묶기! (웃음)
여러분은 디지털에 익숙한 세대다 보니 종이 기록을 접할 기회가 많진 않을 텐데, 디지털 시대의 종이 기록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이 기록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요.
세민: 디지털 데이터들도 문서에 붙여둔 누군가의 메모, 낙서 등을 그대로 남길 수 있지만, 그 기록을 오래 들여다봤을 이의 고민과 떨림이 온전히 전해지지는 않아요. 그런 점에서 종이 기록에 남겨진 메모나 밑줄이 그 느낌과 정보의 중요도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민철: 종이 기록물이 아닌 PDF 파일로 접했다면 수사, 공판과정이 생생하게 전달되지 않았을 거 같아요. 종이 기록물들을 보고, 영화에서처럼 80년대에 고문을 당한 후 허위 자백을 강요받는 선생님들이 떠올랐거든요.
은지: 저도 하드카피 기록이 디지털 기록물과 다른 것은 생생함을 전달한다는 점이라고 생각해요. 그 생생함을 통해 피해자들의 울분과 당시의 부조리함이 보는 이에게 절절히 전달되고요.
민채: 이런 비유가 맞는지 모르겠지만, 유물을 대할 때도 복제품이 아닌 원본을 더 귀중하게 여기듯 디지털화된 글자들과는 다른 하드카피만의 아우라가 분명히 존재하는 것 같아요. 기록을 거쳐 간 사람들의 손길이, 필체가, 직인이 뚜렷이 남아있고 그 종이가 거쳐 온 세월 자체가 주는 느낌이 하드카피의 가치가 아닐까요.
채연: 저도 그 생생함 때문에 보관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해요. 진실의 힘 박물관을 만들 순 없을까요. 그만큼 의미가 큰 기록이거든요.
기록 공간은 진실의 힘의 오랜 꿈입니다. (웃음) 그렇다면 기록을 보기 전후로 여러분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이 기록을 통해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세민: 기록을 보기 전후의 생각이 같아요. 가능한 기록을 잘 정제해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면 좋겠어요. 지난 학기에 국가보안법 관련 리포트를 작성할 때 재판기록과 판결문 열람이 거의 허용되지 않아서 애를 먹었거든요. 법제처 데이터베이스에도 없고 파주 법원도서관에만 있더라고요. 별다른 수확 없이 옛 신문 기사와 국회 회의록만 조사해서 마무리했어요. 진실의 힘에서 그 모든 자료를 보니 엄청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론 공개되지 않는 기록에 화도 나요.
은지: '간첩'이라는 말이 일상에서, 농담처럼 별거 아닌 말처럼 혹은 우스꽝스럽게 사용되고 있잖아요. 간첩조작 사건은 젊은 세대에게 생경한 주제다 보니, 그냥 멀게만 혹은 과거 독재정권 당시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고 저도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어요. 그런데 직접 기록을 정리하면서 그 사건들이 실재했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실물 기록을 접하면서 누군가에게 실제로 발생한 일이고, 그 기억과 상처는 결코 과거의 문제만은 아님을 확신한 것이에요. 피해자의 상처는 여전한데 사회적 반성과 사과는 아직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잖아요.
채연: 동감해요. 여전히 전기 고문이 개그 소재로 등장해서 고통받는 연기를 하고, 그걸 본 사람들이 웃는 게 무서워요.
세민: 저도 이런 농담과 개그에 더욱 불편함을 느껴요.
성민: 진실의 힘 활동은 나를 허물고 타인과 연결되는 경험을 하게 해줘요. 언론에서 과거사를 접했을 때는 몇 초간의 분노를 느낀 게 전부였고, 그들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로 느껴지지 않았어요. 하지만 진실의 힘에서 활동하며 단발적 분노에서 나아가 당사자에게 더욱 공감하고, 이것이 그저 운이 나빠서 벌어진 일이 아니라 조직적으로 일어난 일이며, 우리가 정치 권력과 사법부를 날카롭게 감시하지 않는다면 같은 일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특히 이번에 기록에서 피해자들의 서사를 읽어 내려가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수사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사건을 바라볼 수 있었어요.
동민: 평소 조작간첩 사건을 포함한 국가폭력 사건을 생각할 때, 피해자보다는 국가권력은 왜 그러한 행동을 했는지, 사법기관을 비롯해 다른 기관에서 구제 절차가 작동하지 않았는지, 이러한 일들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지 등 사회, 제도적 문제에 관심이 있었어요. 그런데 진실의 힘에서 여러 활동을 하고 이번에 기록을 정리하면서 이제는 피해자 중심으로, 그분들이 겪었을 억울함이나 분노, 개개인 사연 등에 더욱 눈이 가요.
채연: 이런 자료들은 사람들이 '에이, 설마?'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진짜네'라고 느끼도록 도움을 줘요. 당장의 변화는 없겠지만, 추후에 유사한 상황들을 보았을 때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해주는 거죠. 그런 맥락에서 이 기록들이 어떻게 정제되고, 어떻게 공개해야 하는지는 좀 더 고민해봐야 하겠지만, 사람들이 꼭 눈으로 직접 봤으면 해요.
민채: 기록을 통해 사건의 전모를 알고 나니 뭔가 더 무섭게 느껴졌어요.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평범하잖아요. 그런데 한 개인이 대항할 수 없는 국가라는 거대한 권력이 자행한 폭력으로 인해 가족의 삶이 송두리째 뒤바뀌는 것을 마주하니, 누구나 국가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이런 소송기록의 전말이 널리 세세하게 알려져야 하지 않을까요.
세민: 맞아요. 국가권력이 개인을 파괴하는 건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채연: 누군가는 돈과 권력을 위해서 자행하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목숨과 삶 자체가 파괴될 수 있음을 그들은 알고 있을까요.
간첩조작 사건 기록은 한 개인, 한 가족의 기록이 아닌 ‘사회적 기록’이라고 정의할 수 있겠네요.
민채: 기록의 존재가 곧 진실이 여기에 존재한다는 상징적인 힘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의미에서 ‘진실의 힘'은 참 좋은 이름이라고 생각해요. 아무리 가해자들이 국가폭력 사건에 책임이 없다고 외면하고 부정해도 이 기록만 들춰보면 '뭔가 잘못됐다’고 느낄 수 있을 거예요. 다만 이 기록이 피해자들에게는 힘든 고통이고 기억일 테니 공개에 관해서는 신중해야겠죠. 개인정보 보호도 철저히 해야 하고요.
동민: 과거의 국가폭력 형태가 변화한 현재, 기록은 일종의 역사적 유물이라고 생각해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일종의 경계석, 그리고 행여나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도, 그것의 해결과 치유를 위한 교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민채: 공감해요. 고문이 가시적으로 자행되던 그때 당시의 모습은 이제 볼 수 없지만, 다른 방법으로 허위자백을 유도하고 나아가 국민을 국가체제라는 거시적 구조의 피해자로 만드는 행위들은 언제라도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기록물을 보존하는 작업이 더 중요한 것 같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