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송년회 준비로 퇴근을 미뤘던 늦은 저녁, 사무실로 전화 한 통이 걸려 왔습니다. “민가협도 그렇고, 진실의 힘도 다들 집을 안 가는구먼요!”라며 민가협부터 이어진 오랜 인연의 타래를 하나씩 풀어놓던 후원회원 김충례 님이었습니다. '얼떨결'에 후원을 시작해 10년을 꼬박 채운 김충례 님을 2020년 첫 후원회원 인터뷰이로 만났습니다.
2011년 1월에 진실의 힘 박성희 총무가 후원하라는 말에 그냥 했어요. 하하. 송소연 이사, 박성희 전 총무와는 민가협 활동할 때부터 알고 지냈어요. 제가 지하철 기관사로 일했고, 노조 활동을 열심히 했는데 그때 시민사회 연대 활동을 많이 했거든요. 그러다 양심수 후원회에서 알게 되어, 민가협을 자주 드나들었죠. 그때 민가협 활동가들은 유독 집에는 안 가고 매일 사무실에서 먹고, 자고, 일하고 다 하더군요. '워커홀릭'이 민가협 사람들 특징인가 싶을 정도로요.
1987년부터 2000년대까지만 해도 시민 사회는 '정치적 싸움' 중심이었잖아요. 특히 87년 이전에는 군사독재 정권이라는 워낙 큰 정치적인 힘이 시민을 억압하던 시절이다 보니, 우리도 그만한 정치적인 담론으로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죠.
그때 진실의 힘은 정치적 담론 대신에 구체적인 시비를 가리는 법정 싸움으로 가져갔던 것 같아요. 길에서 농성하고, 언론을 통해 우리 담론의 정당성을 알리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법률을 두고서 하나하나 진실을 가려내는 것이요. 저는 이제까지 해왔던 방식이 더 익숙했기 때문에 '진실의 힘의 방식이 가능할까?' 의문을 가졌죠. 사실, 진실의 힘 만든다고 했을 때 잘 될 수 있을지 걱정도 했어요. 고생을 많이 할까봐요.
의문의 가장 큰 이유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워낙 강했기 때문이었죠. 사법부 놈들이 당시에도 그게 진실이 아님을 몰랐던 것도 아닌데, 이제 와서 우리의 말을 들어 주겠어 하는 불신이었죠.
그런데 나중에 조작간첩 피해자들의 재심 승소 소식을 신문에서 보고선 내 마음이 어찌나 흡족하던지요. 예전이라면 어림도 없을 일인데 잘 싸워낸 덕분에 사법부가 한 발 나아간 판결을 하더군요. 아, 시대가 이렇게 바뀌는구나 싶었어요.
사실, 진실의 힘이 만들어진 것 자체가 굉장히 신선한 발상인 것 같아요.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우직하게 해나가는 것도 대단하고요. 그간 진실의 힘 활동에서 나온 결과물을 보니까 그때 이 사람들의 판단이 옳았구나 싶어요. 저라면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을까 싶어요. 진실의 힘을 만든 사람들이 함께하면서 방향을 잘 잡았던 덕분이겠죠.
젊은 활동가들이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 고마워요. 8, 90년대야 공익과 사익에 대한 구분 없이 사는 사람이 더 많았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시대적 상황이 다르니까요. 여전히 시대적 과제를 두고서 고민하는 사람들이 함께 있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좋고, 든든하네요.
그래도 숙제는 남아 있죠. 여전히 해방 이후 민족문제를 제대로 청산 못 했잖아요. 아직 피해자로서 인정조차 받지 못한 제주 4.3이나 여순항쟁처럼 참 많지 않습니까. 그간 진실의 힘이 강고한 체제에 맞서 크고, 작은 균열을 낸 것처럼 민족, 계급을 둘러싼 역사적 문제에도 더 관심을 뒀으면 해요.
아, 저는 정년퇴직한 후 고전번역교육원에서 한문 번역 공부를 하고 있어요. 3년 과정인데 논어, 맹자, 사서삼경 등을 배워요. 한자로 쓰인 오래된 기록이 생기거든 한 번 들고 와요. 내가 읽어봐 드릴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