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갈등의 뿌리와 얼개: 아베의 약속은 무엇인가’ 강연 후기

일본은 왜 사죄하지 않을까?

자원활동가 박채연

진실의 힘 자원활동가이자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동아리 ‘평화나비’ 활동을 하는 대학생 박채연입니다. 이 한 문장만으로도 제가 이번 강연에 흥미를 가진 이유를 단번에 알아보셨나요? 사회교육과 전공인 저는 1학년 겨울방학부터 ‘평화나비’를 통해, 한일 관계와 동아시아 평화에 대해 고민하는 세미나, 수요시위에도 참석하고 있습니다. 관련 강연도 듣기도 하고 기사나 문헌도 놓치지 않고 꼼꼼히 찾아보곤 합니다.

일본은 왜 사죄하지 않는가. 어떻게 저렇게 떳떳하게 반인권적 행보를 이어갈 수 있는가.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질 때 가장 먼저 드는 의문입니다. 역사적 배경에 대한 고찰 없이는 쉽게 답을 내리기 힘든 질문이기도 합니다. 서승 선생님, 한승동 기자님과 함께한 2시간 30분의 대담은 이 질문의 답을 천천히 메워나가는 시간이었습니다.

ⓒ장성하

서승 선생님의 기조연설 후, 한겨레 한승동 기자님과의 대담이 이어졌습니다. 두 분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청중들이 충분히 강연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대화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것처럼 한마디 한마디에 집중하며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세계대전부터 이어져 온 한일 갈등의 역사적 바탕, 그 안에서 발현되는 다양한 국가들(특히 미국과 일본)의 이해관계, 이전 정부들과는 다른 아베 정부의 특징, 일본 시민 등에 대한 심도 있는 이야기들이 이어졌습니다.

세계대전, 분단과 전쟁, 그 이후까지 일련의 과정에서 미국과 일본은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움직였습니다. 특히, 일본의 패전 이후 미국은 일본의 재성장 환경을 마련해줬습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비롯한 미일 간의 조약을 바탕으로 미국은 일본을 이용하여 사회주의 세력의 견제를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일본은 천황제를 유지하고 A급 전범을 총리 자리에 임명하며 제국주의적 사고를 청산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미국이 독일과 일본에 대해 다른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주도권을 잡으려 한 것을 통해서도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우선시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장성하

대담을 들으며 역사적 배경뿐만 아니라 다양한 측면에서의 ‘왜’를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차 ‘어떻게’가 떠올랐습니다. 현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현 상황을 만들어낸 다양한 요소 중 어느 부분을 개선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복잡해진, 만병통치약 같은 해결책이 존재하지 않는 현재이기에 그 누구도 쉽게 말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저는 두 분의 대담 중 교육과 일본의 언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을 정리해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생각한 첫 번째 단계는 ‘이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알아야 문제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고, 알아야 문제 해결의 단계를 고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 언론에 대한 서승 선생님의 말씀을 통해 일본에서는 첫 번째 단계부터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일본 언론은 아베 정권의 현재 태도에 대한 비판은커녕, 과거부터 현재까지 일어난 일에 대한 지식 전달의 기능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일본 언론의 신뢰도는 바닥이라는 사실이 체감된 순간이었습니다.

또한 교육을 통해서도 첫 번째 단계를 실현할 수 있지만, 일본에서는 이 역시 잘 되고 있지 않았습니다. 교과서 내용 및 교사의 자율성을 확보하여 문제의 심각성과 앎의 필요성을 느끼는 모멘트를 더 많은 학생에게 제공해야 하며, 교육 과정 및 제도의 변화를 통해 국가적 차원에서 이 문제를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이 문제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가지기 이전에 이 문제에 관심이 없다고 합니다. 따라서, 담론의 확산과 사실 인식을 위한 교육과 언론의 지속적인 보도가 필요할 것입니다.

ⓒ장성하

국가 차원의 범죄에 대한 해결책은 위험한 행동에 대한 서로 간의 견제와 끊임없는 비판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미국의 이익을 위한 정책들 속에서 일본에는 견제와 비판이 크게 가해지지 않았고, 결국 제국주의적 가치관이 그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베 정권 이후 극우적 성향의 정치 세력이 집권함으로써 법과 제도부터 언론 보도 및 교육까지 우경화되고 점차 그 생각이 일본 내에 공고해지고 있습니다.

결국 강연 제목에서 말한 아베의 약속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생각하는 약속은 60년대 한-미-일의 수직적인 동맹처럼 동등한 관계가 아닌 채로 맺어진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는 듯합니다. 상호 간의 양보와 배려, 동등한 관계에서의 이익 추구가 없는 채로 이루어진 약속이 진정한 약속인지에 대한 고민이 아베에게 필요할 것입니다. 

썩은 이를 빼는 것은 굉장히 아픈 일입니다. 하지만 빼내지 않는다면 그 썩은 이는 결국 어떻게 될까요. 계속 참아서 해결될 수 있는 이가 아닐 것입니다. 단기적으로 상황이 악화된다는 이유로 이를 회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뿌리 깊은 갈등이 있었다면, 그 해묵은 것을 해결하기 위해서, 더 나은 상황을 만들어가기 위해서 갈등과 험악한 분위기가 연출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갈등이 더욱더 수면 위로 드러났을 때, 상황을 명확히 판단하고 이후의 태도와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일 것입니다. 서승 선생님과 한승동 기자님의 대담을 통해 그 노력의 첫 단계인 ‘앎’부터 ‘실천’에 대한 방법까지를 고민해 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썩은 이를 빼기 위해 어떠한 일을 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