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와 말에 어려움이 있는 장애 아동들의 중재 및 재활을 하는 ‘언어 재활사’ 박정진 후원회원을 만났습니다. ‘할머니 눈은 동그랗고 주름이 있어’라는 객관적 묘사 대신에, 할머니의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각을 느껴 ‘나의 할머니’를 그려낼 수 있는 장애 아동을 위한 교구와 동화를 만들고 싶어 합니다. 2020년 1월 후원회원이 된 그는 진실의 힘이 “한 인간의 무너진 세계를 재건하는 공간”이라고 말합니다. 손에 닿는 촉각과 온기로 아동들과 교감을 나누는 박정진 후원회원이 바라본 진실의 힘의 인간과 세계가 궁금해졌습니다.

진실의 힘 후원 계기가 무엇인가요.

시작은 지인 추천이었는데 지난해 송년 모임에 오고서는 진실의 힘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됐어요. 진실의 힘에는 자기만의 어떤 고유한 이야기를 가진 사람들이 문을 두드리잖아요. 그 문제에 관심 없는 사람들은 ‘당신의 개인적인 문제’라고 치부할 수도 있는데, 조금만 깊숙이 들여다보면 그 문제나 사건을 겪은 것은 그 사람의 결정이나 잘못이 아니잖아요. 진실의 힘에는 그러한 개별적인 한 사람의 삶 이야기가 있는 공간이라고 느껴졌어요.

‘개별적인 한 사람의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이었을까요?

올봄 진실의 힘 사무실 이사를 도와주면서 조작간첩 피해자 선생님들의 사건에 대해 알게됐어요. 나와 가까운 이야기인 거예요. 마치 옆집 아저씨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요. 그분들이 받은 고문의 잔인성에 놀란 건 아니었어요. 제 현장에서 보고, 듣는 것도 많으니까요. 놀란 건 과정에서 모든 것이 완벽히 조작됐다는 사실이었어요. 그것도 교묘한 조작이 아니라, 없던 건물이 있었던 것처럼 사실 자체를 완벽히 조작해서 한 사람의 세계를 무너뜨린 것이요. 어떤 권력이 자신들이 원하는 결과를 위해 한 사람을 그냥 뭉개버렸다 싶었어요. 그런 사람과 진실의 힘이 만나, 한 인간의 무너진 세계를 재건한다고 생각해요.

‘사람’ ‘한 인간의 세계’에 집중하는 지점은 ‘언어 재활사’라는 본인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을까요. 현 시국에서는 코로나 상황에 대해 묻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데요. 언어 재활사로서 장애 아동 교육 현장에서 피부로 느끼는 문제가 있을까요.

사회적 경험을 하기 위한 제약이 많아지는 게 안타깝죠. 장애 아동들은 학교에 매일 등교하는 것과 같은 사회화를 일상적으로 교육해야 하는데, 언제든 집단감염이 터지면 학교에 못 가잖아요. 비장애 아동, 장애 아동 모두 급격한 환경 변화는 굉장한 스트레스예요. 그러나 장애 아동 특히 지적 장애 아동은 적응에 좀 더 오랜 시간이 필요하고, 변화된 환경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받아들여요. 특히 자폐아동들은 원하는 감각 욕구가 제각기 달라요. 어떤 아동은 마스크를 쓰는 것조차 어려워해요.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쓰지 않으면 치료실을 못 가거나, 엘리베이터도 타지 못하는 등의 일상 시스템에 적응해야 하지만 자폐아동들은 그 행동 양식에 민첩하게 적응하기를 어렵죠. 그러니 마스크 쓰는 것, 상황에 따라 벗는 것, 챙기는 것, 땅에 버리지 말아야 하는 것까지 하나씩 쪼개어서 가르쳐야 해요. 요즘 코로나가 일상화되고 익숙해졌다고 말하지만, 장애 아동들은 그 일상을 살기 위해 수많은 단계를 나눠서 연습하고 배워야 해요.

다른 것보다도 비장애 아동들은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많잖아요. 학교를 못 가도 학원을 가거나 친구들과 놀거나 안 되면 홈스쿨링도 가능하죠. 그런데 장애 아동들은 자가 학습이 어려워서 보조자가 필수인 경우도 있어요. 저는 장애 아동들이 여가 활동을 즐길만한 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아이들 성장에 있어서 교육도 중요하지만 교육에서 벗어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도 참 중요하거든요. 일상에서 쉼의 시간을 갖는 것처럼요. 장애 아동들의 치료, 교육 영역은 발전하는 반면, 아이들이 더 재밌게 놀기 위한 콘텐츠는 한정적이에요. 예를 들어, 중증장애 아동들은 매일 누워서 생활하니 쉬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요. 그런데 이 친구들도 누워서 열심히 공부하는 만큼, 노는 시간이 확실히 필요해요. 이 여가 생활을 어떻게 만들어주고 지원할 수 있을까가 제 고민이에요.

ⓒ박정진
2019년 긴 시간 함께 했던 아이로부터 받았던 편지.

아동들에게 어떤 놀이 콘텐츠를 만들어 줄 수 있을까요.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동화를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다양한 감각이나 질감이 있는 언어를 경험하게 하고, 비언어적 의사소통으로 아이들과 교감하고 방식이 필요해요. 보통의 동화는 그림과 글로 구성돼 있고 내부의 상징을 통해 내용을 받아들이잖아요. 그런데 장애 아동은 좀 더 감각적으로 텍스트를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도록 구체화하는 과정이 필요해요. 동화에서 종이 나오면 소리를 직접 들려주는 등, 내용에 맞는 적절한 사물을 활용하는 방식으로요. 꼭 구체적인 사물이 아니더라도 충분한 상호작용을 통해서도 교감할 수 있어요. 엄마 곰이 나오는 동화라면, 따뜻한 옷을 입고 곰 흉내를 내면서 동화를 읽어주는 거죠.

‘장애 아동들은 이야기를 이해하기 어려울 거야’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죠. 상대가 이해가 안 될 것 같으면 이야기를 충분히, 자세히 들려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런데 조금만 방법을 개선해주면 장애 아동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어요. 또래 비장애 아동이 매 성장 시기마다 접하는 재밌는 이야기를 장애 아동들도 충분히 경험해야 해요. 물론 좀 더 상세하고 전략적인 접근은 필요하죠. 감각 확장 차원에서 어휘를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거나, 문장을 좀 더 쉽고 단순하게 만드는 식으로요. 누워서 생활하는 중증장애 아동들이 신체적 어려움은 있지만, 비장애 아동이 좋아하고 즐기는 내용이라면 그 아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재밌어할 거예요.

어떤 동화를 만들고 싶으세요?

권선징악이 없는 동화요. 보통 전래동화에 나오는 ‘착하면 복 받고 나쁘면 벌 받는다’는 권선징악 구조가 불편해요. 권선징악 구조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행위를 우선시해요. 그리고 복이나 벌을 주는 것도 전적으로 타인이 주는 행위예요. 반대로 아이들이 복을 받으려면 ‘~를 해야만’ 하죠. 저는 나라는 사람을 중심에 두고서, 내가 기쁘고 행복한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우리가 복을 받으려고 사는 건 아니잖아요. 호랑이에게 잡아먹히지 않으려고, 복을 받기 위해서, 착한 사람이라고 인정받기 위해서 어떤 행동을 해야 한다는 건 아이들에게 채우지 않아도 될 족쇄라고 봐요.

오늘 인터뷰는 박정진 후원회원을 통해 진실의 힘에서 다루지 못하는 장애 아동의 기본권, 특히 교육권 문제를 후원회원들과 함께 나누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다소 진부하지만 후원회원으로서 진실의 힘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첫 질문의 대답과 크게 다르지 않아요. 모두가 각자의 영역에서 고군분투하면서 우리 사회의 톱니바퀴가 제대로 맞물려 돌아가잖아요. 진실의 힘은 그 사이에서 묻힐지도 모르는, 멈춰 있는, 멈추고 싶은 이야기를 톱니바퀴 사이 사이에 잘 끼워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진실의 힘에서 나오는 글들이 참 좋아요. 어떤 한 사람의 세계나 인권이 짓밟히거나 무너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이야기는 많은 사람이 보고, 듣고, 알아야 하잖아요. 앞으로의 활동도 그렇게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