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전시가 끝났다. 드로잉 산문집 <마음은 파도친다>에 실린 그림 원화전. 코로나 바이러스 덕분에 우여곡절이 많았다. 2월 책 출간에 이어 3월에 하려던 전시가 미뤄졌다. 5월 말 가까스로 전시 오픈을 했는데 일주일 만에 중단되고. 두 주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에 함께한 뒤 본디 예정했던 시간만큼 다시 열고. 일이 흘러가는 엎치락뒤치락 흐름에 뜻밖에도 나는 덤덤한 마음으로 얌전히 편승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기도 했으니까.
이 처음 겪는 격랑의 중심에는 보이지도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뚝 서 있고 그 둘레에서 온 세상 사람들이 허둥대며, 간절히, 헤쳐 나갈 방법을 찾고 있다. 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하는 몇 겹 더 소중해진 일상이랄까. 전시에 정성을 기울인다.
진실의 힘 일꾼 다영은 전시 그림 중 ‘지금 내 마음’이 좋다 한다. 책 에필로그와 어우러진 드로잉이기도 한데, 문득 그어댄 선들로 이루어진 단순하기도 하고 복잡하기도 한 선드로잉이다. 실컷 긋고 나서 물끄러미 바라본 뒤 ‘지금 내 마음’이라고 제목을 달았던 기억이 난다. 전시 때는 일부러 전시실 출입문 옆 구석진 자리에 배치해서 볼 수 있는 사람만 볼 수 있게 했다. 숨은 그림처럼. 전시 다녀간 뒤 보내온 다영의 문자는 영락없는 내 마음이다. “세상 만물이 다 궁금하지만 ‘지금 내 마음’ 만큼이나 잘 알고 싶고 오래 들여다보고 싶은 게 있나 싶어요.”
전시 덕분에 백만 년 만에 대학 선배 형들을 만나기도 했다. 책과 전시 공통제목인 ‘마음은 파도친다’를 가지고 희끗희끗 중년의 형들이 농을 주고받는다. “태규야, 너는 마음에 파도가 없어! 나도 그래. 시체마냥~. 쏘리. 에이 ×발, 두고 보자. ㅎㅎㅎ.” 마음에 파도가 안 친다는 모함을 당한 태규형은 방명록에 이렇게 살뜰한 문장을 남긴다. “자신을 닮은 그림을 그리는 유현미. 오래오래 그림을 그리겠네.” 반가워요, 다시 만난 형님들.
인스타그램이라는 신문물(?)에 접속하여 꾸역꾸역 그림을 올리고 있다. 어느 날은 전시실에 우두커니 있다가 든 생각을 전시 그림과 함께 올렸다. “그림은 바라보는 자의 것 아닐까. 한 사람이 그림과 1대1로 마주할 때 그 그림은 오롯이 그 사람을 위한 그림 아닐까. 전시는 그 순간을 위해서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이 글을 보고 코로나 덕분에 뉴질랜드에서 한국으로 오도 가도 못 하고 있는 지연이가 댓글을 달았다. “노래가 부르는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림도 보는 사람의 것이었구나. 모든 예술은 마음에 둔 사람의 것이네. 언니 그림은 다 내꺼야 ㅎㅎㅎㅎ”. 나도 댓글을 달았다. “응 다 가져!”
어쩌다 보니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의도했거나 계획했던 일이, 삶이 아니다. 우연한 드로잉.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고, 내가 그동안 숱하게 세우고 허문 계획들은 어리숙하거나 무모했다. 언제부턴가 계획이라는 것을 세우지 않는다. 되는 대로 막 살기. 다만 정성껏, 형편껏. 내 삶에 어느 날 훌쩍 뛰어 들어와 주신 드로잉 없는 일상을 이제는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걸핏하면 그림과 놀고 씨름하고 낙담하고 화해하는 이상한, 새로운 내가 되고 말았다. 이 이상한 내가 싫지 않아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