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근태 선생을 ‘제2회 진실의힘 인권상’ 수상자로 결정하기까지 “제2회 진실의힘 인권상 심사위원회”는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무엇보다 김근태 선생께서 생전에 하신 말씀 때문입니다. 김근태 선생은 “고문을 받은 사람이 나 혼자만이 아니고 군사독재 때 많은 사람들이 고문을 받고 목숨까지 잃었다, 그 분들의 희생에 비해 김근태는 보상을 받았는데 다른 분들은 그렇지 않은 측면이 있어 자세히 얘기하는 게 부담이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습니다. 살아계셨다면 분명 거절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고 김근태 선생의 삶에서 인간의 몸과 마음에 도저히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기고야 마는 고문의 잔혹한 실체를 바라보게 됩니다. 고문후유증은 어떤 형태의 ‘보상’을 통해서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김근태 선생 역시 평생 고문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한여름에도 한기와 콧물 때문에 에어컨조차 틀지 못했고, 해마다 초가을만 되면 한달 이상 몸을 앓았습니다. “칠성판에 다시 올려진 느낌”이 들어 수술대에도 오르지 못했고, 전기고문 받았던 의자로 연상되던 치과 시술용 의자에 앉지 못해 치과를 꺼렸습니다. 임종 직전 무의식 상태에서도 코로 영양분을 공급하려는 것을 본능적으로 거부해 가족들을 울렸습니다.

‘고문’이란 그런 것입니다. 어떠한 보상이나 겉치레, 사회적 명예가 주어진다 해도, 몸과 마음에 새겨진 고문의 흔적은 시시때때로 고문피해자들을 암흑의 고문수사실, 그 시간, 그 장소로 데리고 갑니다. 김근태 선생을 끝내 죽음에 이르게 한 것도 고문후유증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 김근태 선생의 삶과 죽음을 통해 우리 사회가 ‘고문’의 본질적 실체를 더 똑똑히 목격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다시는 ‘고문’이라는 야만적이고 반인간적인 행위가 우리 사회에 더 이상 발붙이지 못하도록 서로 다짐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가 김근태 선생을 ‘제2회 진실의힘 인권상’ 수상자로 결정하는 첫 번째 이유입니다.

김근태 선생은 1985년 9월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23일 동안 8번의 전기고문, 2번의 물고문을 당했습니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원할 만큼 잔인하고 혹독한 고문이었습니다. 무릎 꿇고 사느니 차라리 서서 죽겠다는 노래를 속으로 부르면서 버텼지만, 인간으로서 도저히 버텨낼 재간이 없는 것이 바로 고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온 몸이 망가졌지만, 김근태 선생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죽음을 넘나들던 그 시간 속에서 고문했던 자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투쟁을 벌였습니다. 그들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고문피해자는 공포감과 두려움에 젖어듭니다. 그러나 김근태 선생은 그들의 정체와 고문이 가해진 구체적 실상을 세상에 알렸습니다. 김근태 선생이 죽을 용기를 다해 알려낸 사실은, 정의를 밝혀내고 책임자를 추궁하려는 시민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켰고, 몇몇 수사관을 처벌하는 데까지 이르렀습니다. 특히 고문이 “잘못된 수사관행, 폐습”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반인륜적이고 반인도적인 범죄행위라는 사실을 우리 사회에 일깨움으로써 인권상황을 개선하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를 통해 한국 독재정권의 실상이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이는 민주정부를 세우는데 큰 디딤돌이 되었습니다.

고문 가해자는 고문 피해자가 다시는 ‘인간’으로 살지 못하도록 인간에 대한 신뢰를 잃게 만들고 인간으로서 자존감을 뭉개려고 합니다. 하지만 김근태 선생은 그 칠흑같은 어둠의 시간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잃지 않으려 애썼고 그 결과 아름답고 진지하고 거룩한 생애를 이뤘습니다.

김근태 선생은 2011년 12월 30일 별세했습니다. 향년 64세였습니다. 김근태 선생의 죽음 앞에서 우리는 김근태 선생이 이 사회와 역사 앞에 ‘민주화투사 김근태’로 기억되는 한편, ‘고문 생존자 김근태’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2010년 6월 26일,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기념대회에 참석하여 맨 뒷자리에서 눈물 흘리며 고문 생존자들에게 깊은 연대감을 보내주던 김근태, 죽음같은 고문을 겪고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희망을 잃지 않았던 김근태, 그리하여 “인간의 삶은 폭력보다 강하다”는 진실을 우리에게 일깨워준 김근태, 우리가 ‘제2회 진실의힘 인권상’을 시상함으로써 그를 기억하고자 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제2회 진실의힘 인권상’을 김근태를 대신하여 인재근 선생에게 드리게 된 것을 또 하나의 기쁨으로, 자랑으로 여깁니다.

인재근 선생은 김근태 선생이 이근안을 비롯한 남영동 대공분실의 고문기술자들에게 당한 고문 사실을 전 세계로 알려내고 진실을 밝히는 길에서, 인재근 자신이 바로 ‘남영동의 김근태’, 그리고 김근태 선생 이전부터 존재해왔던 ‘수많은 김근태들’의 증언자가 되었습니다. 인재근 선생은 남편 김근태 한 사람의 진실을 알리는데 멈추지 않았습니다. 한국의 독재정권을 고발하고 우리사회에 민주주의와 인권을 앞당기기 위한 길의 맨 앞에 서서 용기있고 정의로운 활동을 펼쳐온 것입니다.

고문을 당한 피해자의 가족들 역시 고문 희생자로 여기는 것이 국제원칙입니다. 고문으로 인한 트라우마는 고문당한 당사자 뿐 아니라 사람관계를 왜곡시키고 파괴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김근태와 인재근 선생은 서로 격려하고 지지하는 관계 속에서 그 어둠의 시간들을 빛의 시간으로 만들어냈고, 이는 고문피해자 가족들에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도록 하는 큰 힘이 되었습니다. ‘제2회 진실의힘 인권상’을 김근태를 대신하여 인재근 선생에게 드리는 것을 무한한 기쁨으로 여기는 이유입니다.

김근태 선생이 살아있을 때 ‘진실의힘 인권상’을 드려야 했다는 아쉬움이 큽니다. 고문후유증은 이를 기다려 주지 않았고, ‘제2회 진실의힘 인권상’을 주는 우리는 지금, 고문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죽음같은 고문을 견뎌낸 ‘고문생존자 김근태’를 그리워하며 눈물로 이 상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