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베드조 운퉁 대표와 YPKP 65(1965/66 학살 생존자 단체)
제7회 진실의힘 인권상 수상자로 결정

재단법인 진실의힘은 제7회 진실의힘 인권상 수상자로 인도네시아 YPKP 65와 대표 베드조 운퉁(Bedjo Untung) 선생을 선정했습니다.
YPKP 65는 1965~1966년 사이 인도네시아에서 벌어졌던 집단 학살 사건 피해자들이 1999년 만든 조직(1965/66 학살 진상규명 연구소, The Indonesian Institute for the Study of 1965/66 Massacre)입니다. 베드조 운퉁 선생은 당시 체포되어 9년간 수감되었던 피해자이며 현재 YPKP 65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시상식은 유엔이 정한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인 6월 26일 월요일 남산 문학의집•서울에서 열립니다.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상장, 상금 10,000 USD를 드립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1965/66년 사이 1백만~3백만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공산주의자라는 의심과 추정만으로 대량 학살당했습니다. 자바의 강물과 저수지는 피로 붉게 물들었습니다. 아름다운 발리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군부의 총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들과 산에는 암매장된 시신들로 넘쳐났습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사건을 떠오르게 합니다.  “살해된 사람의 숫자로 치면, 이 살육은 20세기 최악의 대량 학살 가운데 하나”(미 CIA보고서)입니다. 수천 명의 사람들이 악명 높았던 ‘부루’ 섬에 있는 감옥을 비롯해 여러 강제수용소로 보내졌습니다. 의문을 가질 수도 없고, 저항할 수도 없는 암흑의 시간이었습니다. 공포는 온 사회를 뒤덮었고, ‘65학살’은 금기어가 되었습니다.

베드조 선생은 고문과 폭력의 시간을 온 몸으로 견디며 살아남은 생존자로, 그의 삶은 인도네시아의 어두운 역사를 증언하고 있으며, 진실의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베드조는 1970년 군에 의해 체포되어 온갖 고문을 당하고 강제수용소로 넘겨졌습니다. 1979년 풀려날 때까지 고문과 가혹행위, 강제노동, 극심한 기아 속에 있었습니다. 무장군인의 24시간 감시와 가혹행위, 배고픔은 그를 시시때때로 죽음의 문턱까지 잡아당겼습니다. 하지만 그는 ‘반드시 살아남아야 한다’고 다짐하면서 고문과 폭력의 어두운 시간을 온 몸으로 견뎠습니다. 가까스로 영어를 독학했고, 기타를 만들어 연주했으며, 종이에 건반을 그려서 피아노를 배웠습니다. 그의 옥중 투쟁은 치열했습니다. 그리고 1979년, 세상으로 돌아왔습니다.

정치범이라는 이유로 차별과 감시를 받으면서 그는 영어와 기타, 피아노를 가르치며 생존해왔습니다. 그는 억새 풀처럼 살아남았고, 강력한 진실의 언어로 거짓의 시대를 거둬내고 있습니다. 수하르토 정권이 영원토록 땅 밑에 묻고자 했던 반인도적 만행을 햇빛 아래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베드조 선생이 피해자에 머물지 않고 고통 속에서 걸어 나와 YPKP65 활동가로,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1965년 학살의 진상은 50년이 지난 지금도 어둠 속에 있습니다. 정부의 부인과 은폐는 계속되고 있지만, 피해자들은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있습니다. 베드조와 YPKP65 회원들은 1세대 선배들의 경험을 이어받아 변화된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새롭게 2세대 운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피해자 중심의 진상규명, 국가의 사과, 피해자 재활, 명예회복이라는 원칙적인 목소리를 견지한 활동으로 피해자들에게 삶의 용기를 불어넣고 있습니다.

우리가 YPKP 65 결성과 활동에 주목하는 이유는 피해자들이 당당한 목소리를 지니게 됐다는 점 때문입니다.

1965/66 학살사건 이후 수하르토와 학살 가해세력인 군부는 32년 동안 인도네시아를 통치했습니다. ‘공산주의의 위험성’은 과장 선전되었고, 그로 인해 형성된 반공 이데올로기가 온 사회에 드리워졌습니다. 피해자들은 망각을 강요당했고, 반공세력의 위협 앞에 서 있어야 했습니다. 1999년 4월 7일 YPKP 65의 결성은 인도네시아 사회에서 망각과 부인의 카르텔을 깨고, 침묵에 맞서 진실을 말하기 시작한 출발점이었습니다. 생존이 곧 투쟁이던 암흑의 시대에 YPKP65는 정부의 부인과 은폐, 거짓에 맞서는 무기였고, 피해자들이 세상을 향해 가는 창이 되었습니다. 집단학살과 암매장지가 있는 14개 지역에 110개 이상의 지부를 두고 학살지와 암매장지를 발굴하고 자료를 수집했습니다. 수집한 자료로 실태조사 보고서를 만들어 정부에 진실규명을 촉구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의 상징이었던 집단 무덤(mass grave)은 진실의 강력한 증거가 됐습니다. 피해자들의 증언은 기록으로 남았고, 기록은 진실규명을 위한 강력한 도구가 될 것입니다. 

‘인간의 삶은 폭력보다 강하다’는 진실을 일깨운 베드조 운퉁 선생을 비롯한 1965학살사건 생존자들의 삶에 깊은 존경과 뜨거운 연대의 마음을 보냅니다. 우리 역시 한국전쟁을 전후한 시기, 20만~40만 명에 이르는 민간인들이 군과 경찰에 집단학살 당한 역사가 있습니다. 학살이 금기어이듯, 진실도 금기어였던 오랜 세월, 유족들의 눈물겨운 분투는 진실을 밝히는 마중물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역시 지금까지도 집단학살의 완전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고, 유골은 수습되지 않은 채입니다. 노환과 고령의 유족들은 지금도 싸우고 있습니다.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피학살자 유족들의 온 생애를 건 투쟁을 상기하며, 우리는 진실의힘 인권상이 진실규명을 위해 오랫동안 싸우고 있는 1965 학살사건 생존자들에게 보내는 뜨거운 연대와 위로의 메시지가 되기를 바랍니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길에 접어들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과거청산 운동의 길에서 굳은 연대의 목소리로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기억하지 않는 과거는 되풀이된다!” 잊지 않기 위해 남산 옛 안기부 터로 모입니다.


인도네시아에서도, 한국에서도, 망각은 가해자가 휘두르는 두 번째 무기입니다. 진실을 은폐하며 망각을 조장하는 국가폭력의 가해자들에 맞서 우리는 기억하려고 합니다. 유엔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우리는 과거 국가폭력의 상징인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터, 중앙정보부장 공관에서 모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를 맡고, 밤과 낮을 구별하고, 사랑할 수 있는 모든 감각을 빼앗습니다.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파괴합니다. 그것이 고문입니다.”

2017년 유엔고문생존자지원의날 기념 Global reading, 국제고문피해자재활센터(IRCT)

독재정권시절 남산은 이런 고문이 일상이었던 곳입니다. 남산으로 끌려간 사람의 숫자는 추정조차 할 수 없습니다. 남산에서 평범한 가장은 간첩으로 조작이 되었습니다. 법대 교수는 의문사를 당했습니다. 셀 수도 없는 보통 사람들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문을 당했습니다.

1960년대 박정희 정권은 남산에 중앙정보부를 설치했습니다.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와 국가정보원(‘국정원’) 시대를 거쳐 1994년 내곡동으로 이전할 때까지 남산은 국가정보기관의 본산이었습니다. 40여 채의 안기부 건물이 남아 있었지만 이미 사라지고 없습니다. 그나마 남은 건물들은 과거의 흔적을 지운 채 다른 용도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건물 앞 조그만 금속표지판들이 과거를 설명하고 있지만, 영혼과 육신을 파괴당한 수많은 이들을 위로하기엔 부족합니다. 피해자들은 원하는 것은 진실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다시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새로 생기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는 남산 안기부 터가 고통과 야만의 역사를 껴안는 시민들의 공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은 그것을 반복하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이겨낸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고문과 국가폭력에 대항의 목소리를 높이는 6월 26일! 진실의힘은 국가가 고문으로 파괴하려 했지만, 결코 부서지지 않았던 생존자들의 분투를 기억합니다. 전 세계에서 이날을 기억하고 축하하는 수 많은 이들과 함께 합니다. 연대와 지지의 힘이 시간이 흐를수록 커져 나가기를 바랍니다.

재단법인 진실의힘

(재) 진실의힘은 1970~80년대에 고문을 당해 간첩으로 조작된 피해자들이 진실규명에 함께한 인권활동가, 변호사, 의사들과 힘을 모아 만든 재단입니다. 수십 년의 고통과 노력 끝에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 받았지만 고문과 투옥의 흉터는 가시지 않았으며,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 없었습니다. 국가폭력 피해자를 돕고, 이런 일이 다시는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손해배상금의 일부를 출연했습니다. ‘상처입은 치유자’로서 ‘진실의힘 인권상’ 시상, 626 유엔 고문피해자 지원의 날 기념, 고문피해자 집단 상담, 고문조작 사건 재심지원, 한국과 아시아의 국가폭력 피해자 지원 사업을 해오고 있습니다. 세월호 관련 재판기록 등 3TB의 관련 자료를 분석하여 <세월호, 그날의 기록>을 출판했습니다. “인간의 삶은 폭력보다 강하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삼고 있습니다.

진실의힘 인권상

(재) 진실의힘은 ‘6.26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을 맞아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통을 인내해온 고문과 국가폭력의 생존자들에게 존경을 표하기 위해” 인권상을 만들었습니다. 2011년 첫 수상자는 서승 (71년 재일교포유학생간첩단 사건으로 19년 복역), 제2회 수상자는 김근태 의원, 제3회 수상자는 고문피해자들을 위한 인권변론의 길을 걸어온 홍성우 변호사, 제4회 수상자는 버마(미얀마)의 최장기 양심수 우윈틴 선생과 우윈틴 재단입니다. 제5회 인권상은 강기훈 씨로 선정되었고, 제6회 인권상 수상자는 문경 민간인학살 생존자 채의진 선생과 시사IN 기자 정희상 씨입니다.

<제7회 진실의힘 인권상 심사위원회>는 심사위원장으로 조은 (동국대 명예교수), 심사위원으로 곽은경(국제연대 활동가), 김선주 (언론인), 이근행(MBC PD), 권인숙 (명지대), 박명림 (연세대), 이삼성 (한림대) 교수와 조용환 진실의힘 이사로 구성되었습니다.

유엔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

1997년 12월, 유엔총회는 고문방지협약이 발효된 6월 26일을 고문생존자 지원의 날(United Nations Day in Support of Victims of Torture)로 선포하고 1998년 6월 26일 첫 번째 기념행사를 열었습니다. 코피 아난 당시 UN 사무총장은 “오늘은 상상하기조차 힘든 고통을 인내해온 이들에게 우리의 존경을 표하는 날”이라 역설하며 “이토록 잔악한 현상에 좀 더 주목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코피아난의 호소에 호응하여 수많은 나라, 조직들이 고문피해자들의 고통을 위로하고 국가폭력의 재발을 막기 위해 이 날을 기념하기 시작했습니다. 고문 방지 세계 최대 조직인 국제고문피해자재활센터(IRCT)는 2017년 6.26의 주제를 ‘고문,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Support Life After Torture)로 정했습니다. 오늘 이 시각, 세계 140여 나라에서는 고문생존자들의 삶을 지원하자는 하나의 목소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울려 퍼지도록 행동하고 있습니다.  

(재)진실의힘은 그 목소리에 화답하며, 이미 100여개 이상의 나라가 고문방지협약을 비준했고, 수많은 나라들이 법적으로 고문을 금지했지만, 고문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해치고 있는 현실에 주목합니다. 우리는 우리 사회가 단 하루만이라도 고문생존자들을 기억하고 지원하는 일에 온전히 바치기를 희망합니다. 고문과 국가폭력이 사라지고 사람이 사람으로 존중 받는 세상을 함께 만들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