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힘 치유학교
진실의힘과 치유학교는 서로 댓구이기도 하고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
죽음과도 같은 고통, ‘영혼을 파괴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기술’에 노출된 인간은 누구든지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새기게 됩니다. 영혼이 짓밟히는 경험을 하고 두 번 다시 세상과 사람들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설 수 없는 깊고 깊은 절망감과 단절감이 아래새기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고문의 이유이자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진실의힘은 그러한 고문을 겪고 국가와 사회로부터 버림받는 2중,3중의 고통 속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았던 고문생존자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입니다. 또 죽음과도 같은 고통 이후 몸과 마음에 새겨진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마주하면서도 자기자신을 포기하지 않았던 인간의 강인한 모습이자 간절한 치유를 소망하는 이름이도 합니다. 그래서 ‘진실의힘’과 ‘치유’는 원인과 결과로서 우리의 지금 모습을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진실의힘 치유학교는 이제 본격적으로 이러한 관계를 이해하고 당당하게 우리 자리를 개척하는 시도입니다.
우리가 고문을 겪은 이후 한 순간도 덜어지지 않는 억울함과 분노, 오늘까지 계속되는 몸과 마음의 괴로움은 너무도 생생하고 한결같습니다. 마치 헤어날 수 없는 수렁에서 일생동안 허우적대는 듯합니다. 고문실을 나선 이후의 발자취는 돌아보기조차 두렵고 아득합니다. 스스로가 너무 힘겨운 나머지 다른 사람은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느끼고 있습니다.
“아픔을 아는 우리가 아픔 속에서 울고 있는 이들을 감싸안을(이준호)” 것이며 “폭력보다 강한 인간의 삶(서승)”을 기뻐하고 싶습니다. 이제껏 소망으로만 간직했던 이 말들을 더 크게, 더 힘차게 만들어가려고 합니다. 우리의 고통을 삶의 중심에 놓고 더 깊이 더 치열하게 드러내고 싸우고 공부하려 합니다.
2008년 시작한 고문치유모임은 우리가 겪고 있는 극단적인 감정이나 고통이 단지 내 성격의 문제라거나 오랜 징역살이 때문이거나 나이 들어 생긴 못된 성격이 아니라 고문후유증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던 고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그 이야기를 듣는 이들이 진심으로 들어주고 같이 울어주고 깊이 공감해주던 경험은 그 자체로 내 자신을 많이 변하게 했습니다. 고통 속에서 단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내가, 돌덩이를 매달고 사는 것 같았던 내 마음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걸 느꼈던 것입니다. 내 마음이 가벼워지니 이제 다른 사람들의 고통도 들리고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수 십년씩 극심한 고문후유증에 시달리면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견뎌낸 우리들의 강인한 삶의 힘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고문생존자인 우리가 '치유자'가 될 수 있는 이유는
(1) 고문, 오랜 감옥살이, 보안관찰로 인한 경찰감시, 간첩낙인으로 인한 사회적 차별 등 온갖 고통을 견디며 이겨낸 귀중한 경험이 있고,
(2) 고통을 알기 때문에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 대한 공감능력이 있으며,
(3) 인간은 폭력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삶 자체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간첩'으로 내몰려 불가촉천민으로 살아왔던 우리가 이제는 이 사회와 구성원들에게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고, 고통에 어떻게 맞서야 하는지를 우리의 삶 자체로 보여주는 것이야말로 '진실의힘'이 걸어야가야 할 방향입니다. 고문생존자가 단순히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고통을 견뎌낸 경험을 통해 고통받는 다른 사람들을 보듬고 다독이며 희망과 인간존재의 무한한 가능성을 제시하고 안내하는 스승, 조력자, '치유자' 로서 고문생존자의 정체성을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전히 고통 속에 머물러 있는 사람들을 도우려 하는 것이 바로 우리가 갖고 있는 힘이고, “진실의힘을 만든 일이 곧 치유의 시작”이라는 사실을 우리의 경험에서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① 1기를 마친 고문생존자들은 ‘치유자’가 되어 국가폭력에 희생된 이들, 인권피해자들과 적극적인 만남, 대화의 자리를 마련하여 나갈 것입니다.
우리가 겪은 고통은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넘어서는 고통의 극한이므로, 우리는 다른 피해자들의 고통에 대해서 더 끌어안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고통을 당해봤기 때문에 그 고통을 치유할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고문생존자로서 치유자가 되는 이유는, 우리의 삶 자체가 피해자들에게 희망의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고문조작사건 피해자, 의문사 유가족, 민간인학살 유가족, 국가공권력에 의한 피해자, 해고노동자 및 가족들과 적극적으로 만나서 연대하고 격려하는 자리를 만들어 나갈 것입니다.
② <진실의힘 치유학교> 1기 과정을 진행하면서 우리는 향후 고문후유증 치유모델을 만들어 갈 것입니다.
③ 또한 1기 성과를 담은 <고문후유증과 치유 workbook>을 제작하여 피해자와 함께 하는 단체 및 활동가들에게 배포할 예정입니다.
④ 더 나아가 고문생존자로 고난의 삶을 인내해온 내 삶을 글로 쓰고 이를 토대로 <진실의힘을 만든 고문생존자들>(가제) 책을 집필할 계획입니다.
<진실의힘 치유학교> 진행방법
<진실의힘 치유학교>는 1기모임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치유학교의 모델을 서로 만들고 발전시켜 갈 것입니다. 총 8회에 걸쳐 진행하려고 합니다.
첫 회는 일종의 사전설명회로, <진실의힘 치유학교>에 대해 서로 의견을 나누고 토론하는 자리입니다. 본격적인 치유적 대화는 2회부터 8회까지 총 7회를 진행할 것입니다.
● 일 정 : 2012년 2월부터 매주 화요일
● 참가자 : 박동운 김양기 김장호 김태룡
● 치유자 : 정혜신
● 참관자 : <치유학교>와 함께할 자원활동가 그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