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그리스의 은자 히페리온
프리드리히 횔덜린 지음, 김재혁 옮김/책세상 펴냄(2015년)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이름이 있다. 국가에게 경악할 만한 비인간적인 폭력을 당하고 (그렇게 폭로된 시스템은 여전히 건재해 한 농민의 몸뚱이로 쏟아져 내렸는데) 이제는 암투병중인 유서 대필 사건의 강기훈씨. 가을비가 내리기 시작하던 어느 금요일, 강기훈씨는 기타를 들고 젊어서 푸른 친구들과 함께 작은 연주회를 열었다.

그 연주회는 두 가지 점에서 앞으로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우선 무대에 선 그의 표정이다. 결연하면서도 무덤덤해 보이기도 한 그 무시무시한 초연한 그 표정은 대체 어디서 나온 것일까? (나중에 물어보니 긴장으로 제정신이 아니어서 굳은 것이었다고 한다.) 두 번째는 음악 자체의 느낌이다. <일 포스티노>, 피아졸라의 <탱고>, <시네마천국>의 러브 테마같이 아련하게 향수를 자극하고 말 수도 있었을 곡들이 ‘비애’라고 할 만큼 슬펐다.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떤 것, 이해시킬 수도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것들이 삶 안에 있다고 음악이 들려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나는 나에게 물었다. 누가 너에게 지금 이 슬픔을 들려주고 있지? 강기훈씨잖아. 강기훈씨가 대화하자고 하잖아. 잠깐만이라도 좋으니 너를 잊고 그를 들어봐. (나중에 물어보니 정작 자신은 재미있고 즐거웠다고 한다.) 그는 특히 탱고곡들을 좋아한다. 그는 자신이 탱고를 좋아하는 이유를 굳이 찾자면 불협화음 때문일 것이고 조금 더 확대하면 인생이 불협화음으로 가득한 것 아니겠냐고 내게 물었다. 내가 어떻게 감히 그 질문에 즉각 대답을 할 수가 있겠는가? 하지만 불협화음에 관해서 함께 더 이야기해보고 싶은 책 한권을 알고는 있었다. 세상에 대한 강렬한 동경과 열망 때문에 무겁게 짊어지게 된 인생의 짐 그리고 불협화음. 횔덜린의 <그리스의 은자 히페리온>은 바로 이 불협화음의 문제, 특히 ‘한 인물 안에서 불협화음이 해소되는 과정’을 다룬다.

[중략]

책의 맨 마지막 부분에서 히페리온은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불협화음이란 애인 사이의 다툼과 같은 것이다. 싸움이 한창일 때 화해의 싹은 이미 돋아나고 갈라졌던 모든 것은 다시 합쳐지기 마련이다.” 히페리온은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게 되었을까? 고통과 사랑 사이의 화음을 찾는 것과 관련 있다. 히페리온의 이 말은 니체가 차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던진 질문을 생각나게 한다.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삶에 익숙해지는 것인가? 사랑에 익숙해지는 것인가?” 우리는 과연 무엇에 익숙해지길 선택하고 있을까?

크나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삶의 기쁨을, 사랑하기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 강기훈씨에게 경의를 표한다.

정혜윤 (시비에스) 피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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