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리고 로힝야> 강연 후기
로힝야가 나를 보고 있다
후원회원 김경훈
미얀마의 수많은 소수민족 중 하나인 로힝야는 2017년 8월 갑작스럽게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았다. 로힝야 반군 ‘아라칸로힝야구원군’(ARSA)에 맞서 대테러작전을 벌인다는 명목으로 미얀마 군부가 로힝야가 거주하는 약 400개 마을에서 집단학살과 방화·강간·약탈 등을 벌였기 때문이다.
미얀마 군부가 벌인 참상을 보며 가슴이 먹먹하다가도 여러 의문이 떠올랐다. 미얀마 군부는 왜 이렇게까지 로힝야를 탄압하는가. 로힝야는 대체 누구인가. 이런 끔찍한 일이 벌어지는데 미얀마 국민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 하는가 등등.
그 질문들의 답을 얻고 싶어서 4월 30일 진실의힘과 아시아인권평화디딤돌 아디가 함께 주최한 <우리, 그리고 로힝야> 강연에 참석했다. 내게는 낯선 미얀마와 로힝야에 대한 이야기여서 조금 어려웠지만, 새로운 질문과 고민을 던져주는 강연이었다.
사실 로힝야는 2017년 8월의 학살 이전에도 오랫동안 미얀마 사회에서 탄압받았다. 특히 미얀마 정부는 1982년 국적법을 제정하는 과정에서 로힝야를 135개 인종에서 배제하고, 시민권을 박탈했다. 로힝야는 결혼할 때 돈을 내고 허가증을 받아야 하고, 2명 이상 자녀를 낳으면 안 되는 등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
로힝야가 이토록 박해받는 배경에는 이들이 이슬람교도란 사실이 있다. 미얀마인의 89%가 불교도이고, 이슬람교도는 4%에 불과하다. 특히 불교극단주의 단체 ‘마바타(MaBaTha, 인종 종교 수호위원회)’가 반이슬람, 반로힝야 정서를 부추기는 데 앞장섰다. 마바타는 이슬람교도가 아이를 많이 낳기 때문에 이대로 놔두면 미얀마가 이슬람국가가 되고, 버마족과 불교를 파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내겐 그 말이 이렇게 들렸다. ‘우리가 이제까지 이슬람교도에게 끔찍한 일을 저질러왔다는 사실을 우리도 잘 안다. 그래서 이슬람교도가 다수가 되면 우리가 똑같이 당할까 봐 무섭다.’
정말 슬픈 사실은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죽고, 시민권을 박탈당했는데 미얀마 정치인들이나 시민사회마저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던 아웅산 수치도 마찬가지다.
물론 여러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로힝야를 옹호했다가는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가 있고, 반무슬림 정서가 팽배한 상황에서 어설프게 나섰다가는 오히려 군부에 빌미를 줘서 미얀마의 민주화를 퇴행시킬 수 있다는 고민도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로힝야 문제에 침묵해야 한다면 그 민주화는 누구를 위한 민주화일까. 로힝야에게 그 민주화는 대체 어떤 의미일까.
아디가 만났던 로힝야 사람 중 한 명은 “국제사회가 우리를 도울 수 없다면 폭탄을 떨어뜨려서 죽여 달라”고 증언했다. 그런 사람들에게 ‘미얀마의 민주화를 위해서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가 어떻게 들릴까. 내가 로힝야라면 “우리는 그런 민주화 필요 없다”라고 말할 것 같다.
<우리, 그리고 로힝야> 강연을 들은 뒤 무거운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면서 나는 릴케의 시를 떠올렸다.
“지금 세상 어디에선가 누군가 죽어가고 있다. 까닭 없이 죽어가는 그 사람은 나를 쳐다보고 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엄숙한 시간>
내가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는 없어도 그 사람과 잠시 눈을 맞추고, 손을 잡는 일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 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까 로힝야의 고통에 더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갖고, 작은 일이라도 함께하길 바란다. 나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좀 더 찾아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