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겨울 독감예방접종 활동보고

“거리에서 선 자본폭력,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 건강한 겨울을 응원합니다~“

- 진실의 힘, 겨울독감예방접종 프로젝트

여의도 KDB산업은행 앞. 바람이나 막아줄까 싶은 비닐천막 4동이 나란히 세워져있습니다. 순식간에 일자리를 잃은 씨그네틱스, 풍산, 공무원노조, 현대차비정규직, 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노동자들입니다. 저녁 7시45분, 씨그네틱스 농성장이 갑자기 시끌벅쩍합니다. 길거리 농성으로 지친 노동자들의 체온을 재고 청진기로 심장소리를 듣고, ‘문진’을 하는, 이색적인 풍경이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실의힘에서 왔습니다. 과거 군사정권 시절, 어느날 갑자기 잡혀가서 죽기 직전까지 고문을 당했고, ‘간첩’으로 내몰렸지요. 수십 년동안 감옥에서 억울함을 삼킬 때 우리에겐 아무도 없었어요. 그때 알았습니다. 고통에 귀 기울여주며 함께 하는 손길이야말로 고난 받는 삶에 얼마나 큰 선물이 되는 것인지를요. 그래서 우리는 그 마음으로 이 자리에 왔습니다. 그냥 주사가 아닙니다. 개인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폭력과 싸우는 분들에게 따뜻한 응원의 마음을 담은 주사입니다. ... ” 2, 30년 전 잔혹한 고문 끝에 ‘간첩’이 되어 오랜 감옥살이를 하고 그것을 견디며 살아온 고문생존자, 그리고 그 상처에서 돋아난 새 살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상처입은 치유자’, 진실의힘 선생님들 말씀입니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그저 고맙습니다. 열심히 싸우겠습니다.” 인사말을 전해들은 노동자들의 눈빛이 숙연해 집니다.

“몸이 튼튼해야 오래 버틸 수 있지요? 오늘 제 말대로 잘 따라하셔야 해요~” 거리의 의사, 강용주 선생이 익숙한 솜씨로 주의사항을 설명하고 함께 한 의료 자원활동가 김승연 김정옥 김미정 박연화 선생이 주사놓을 준비를 합니다. 그 곁에서 진실의힘 선생님들과 자원활동가들은 뽀로로를 붙여주고, 체온을 재고, 우는 아이에게 사탕을 물려주며 분주합니다.

지난해 진실의 힘이 예방접종을 해드렸던, 그리고 1년 만에 다시 만난 씨그네틱스 노동자들. 오늘은 꼬마 친구들이 많이 왔습니다. 씨그네틱스 노동자들은 주로 엄마들입니다. 아직은 엄마 손길이 필요한 어린 아이들을 키우는 분들이 많습니다. 잘 싸우시는 분들이 아주 작은 주사바늘을 보고 “선생님, 이거 아파요?” 묻는 모습이 재미있습니다. 주사 앞에서는 어른도 아이와 같습니다. 씨그네틱스 꼴찌로 윤선애 씨 삼남매가 소아과의사 김승연 선생님 앞에 나란히 앉습니다. 온갖 사탕발림의 인사와 함께 주사를 놨지만 막내는 여지없이 앙앙 울어버립니다. 아이의 울음이 농성장에 환한 웃음꽃을 피웁니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노동자도 팔을 걷었습니다. 비정규직의 아픔을 삭이기에는 아직 앳되어 보이는 해고노동자들 모습에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그 용기와 자긍심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풍산해고자와 공무원노조는 왁자지껄하게 접종을 마쳤습니다. 마지막 학교비정규직 농성장은 9일 째 단식농성 중인 박금자․황영미 위원장 건강검진으로 대신했습니다.

해마다 이맘 때면 진실의 힘은 ‘거리의 의사’ 강용주 선생(가정의학과전문의, 진실의힘 이사)을 앞세우고 거리로 나섭니다. 추운 겨울 모진 감옥살이를 해본 경험 때문에 찬바람이 불면 ‘거리에 선 사람들’이 눈에 밟히기 때문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제안한 강용주 선생도 열네 번의 겨울을 감옥에서 보냈습니다. 진실의 힘을 만든 고문생존자들은 억울한 옥살이 중에 가족들을 생각할 때면 눈앞이 캄캄해지곤 했습니다. 살림살이는 어찌하는지, 겨울 양식은, 아이들은, 아내는... 갑자기 가장이 사라진 집안에서 영문도 모른 채 쩔쩔매고 있을 가족들 모습에 벽을 붙잡고 눈물 흘리지 않은 날이 없었습니다. 속수무책이던 그때, 아이들을 걱정해주는 누군가가 있었더라면, 다가오는 손길 하나만이라도 있었더라면, 조금은 덜 아프고 덜 원망스러웠을 것입니다. 그 아픔은 방금 막 찔린 상처처럼 지금도 생생하기만 합니다.

고문의 상처와 억울한 옥살이를 견뎌내고 오늘에 이른 지금, 그때의 간절함을 따라 지금 폭력에 맞서고 있는 이들을 찾아 손잡고 귀 기울이려 합니다. 우리들, 진실의 힘 고문생존자들은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 상처를 입은 사람들과 함께 하려는 ‘상처입은 치유자’입니다. 고문으로 간첩이 된 후 국가의 핍박과 사회의 증오와 이웃의 냉대 속에서도 기나긴 세월동안 진실을 되찾기 위해 싸웠고 국가의 책임을 추궁했습니다. 그저 우리가 해야 할 일, 하고 싶었던 일,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오는 동안 우리 스스로 우리의 소망이 되어 살아 왔습니다. 너무도 커다란 상처였기에 아무 데도 기댈 곳이 없었습니다.

작년 예방접종 때 어떤 노동자가 그랬습니다. “진실의 힘 선생님들의 삶에 견줘보면 우리들의 어려움은 작은 모래알 같아요.” 라구요. 내 상처가 제일 깊고 내 어깨에 짊어진 짐이 가장 무겁다고 생각했는데 더 큰 상처의 이야기, 그것을 견뎌낸 모습을 본 순간 거짓말처럼 사소하고 가벼워진다고요. 그래서 견딜 만하다고 깨닫고 결코 포기하지 않고 싸울 거라고 말했습니다.

참 고마운 만남이었습니다. 우리 삶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다시 일어서게 하는 듯, 우리 삶이 또 다른 곳으로 번져가는 듯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헛된 것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음으로 마음이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목요일은 80여명의 어깨에 독감예방주사를 놓았습니다. 금요일은 부평으로 가서 대우자판노동자들을 다시 만납니다. 토요일은 서울광장에 모일 강정 주민들과 활동가들, 그리고 용산 유가족들을 응원하러 갑니다.

내년엔 다들 일터로, 집으로 돌아가서 진실의힘 겨울독감 예방접종 프로젝트가 마무리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거리에서 만날 일 없어야 할 텐데...”하는 우리의 인사말은 참 특이합니다. 농성장이 아닌, 회사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뵙자고 인사드리며 여의도 찬바람 가득한 비닐천막을 나섭니다. 가슴 깊이 아픔이 있지만, “삶은 폭력보다 강하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믿음이 차가운 비닐천막에 용기와 온기를 전해주기를 바랍니다.

(박성희,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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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의힘 2012 겨울독감예방접종 프로젝트 진행일지

1차 2012 10 26(금) : 재능교육해고노동자(서울시청앞 농성장)/쌍용차 해고노동자(대한문앞 농성장)

참가자 : 강용주 김장호 김철 최양준 송소연 박성희 조미영 이채훈 정희선 외 2명 은혜공동체(김승연 김정빈 박연화)

2차 2012 11.1(목) : 씨그네틱스해고노동자 풍산기업해고노동자 현대차비정규직해고노동자 전국학교비정규직연대회의 전국공무원노조(여의도 KDB산업은행 앞 농성장)

참여자 : 강용주 김철 박근홍 안금자 최양준 송소연 박성희 조미영 이채훈 은혜공동체(김승연 김정옥) 정희선 심우영 심주영

3차 2012.11.2(금) : 대우자동차판매서비스해고노동자(인천 갈산역 대우자동차판매 농성장)

참여자 : 강용주 김철 최양준 송소연 박성희 조미영 이채훈 심우영 심주영

4차 11/3(토) 강정마을주민 용산참사 유가족 2012생명평화대행진단(서울시청 광장)

참가자 : 강용주 김장호 김철 박동운 박연옥 송소연 정혜신 이명수 박성희 조미영 이채훈 심주영 은혜공동체(김미정 김승연 김정빈 김정옥 박연화)

5차 11/7(수) 코오롱․쌍용차․한국쓰리엠 해고노동자,베링거잉겔하임 골든브릿지 노동조합(대한문 쌍용차해고자 농성장)

참가자 : 강용주 김성규 김철 박근홍 안금자 송소연 조용환 최양준 박성희 조미영 이채훈 정은주 은혜공동체(김미정 김정옥 박연화)

6차 11/8(목) 푸른공부방(양천구 목동 저소득층 자녀들)

참가자 : 강용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