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유럽 극우가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의 헤게모니 개념을 어떻게 전유해 '메타정치' 전략에 활용하는지 살펴보는 강연이다.
강연자 김헌기 선생은 처음 마르크스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해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자 루이 알튀세르, 그리고 그람시로 관심을 점차 확장해왔다. 연구 주제는 시기마다 바뀌어왔지만 그 밑바탕에는 일관되게 '포스트식민주의적 문제의식'이 자리했다 —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대부분의 식민지가 공식적으로 해방되었음에도, 이후에도 경제적·문화적으로 식민주의적 권력의 효과가 계속 작동해온 현실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연구하였다.
그 중에서도 역사학에 주목한다. 역사학, 나아가 사회과학 일반은 세계 각지에서 연구되고 있지만 사실상 유럽에서 만들어진 학문, 말하자면 '서구의 학문'이다. 강연자는 이러한 서구중심주의적 역사학을 어떻게 개작하여 서구중심주의를 걷어내고 보다 진보적인 학문으로 발전시킬 것인가에 관심을 갖고 공부해왔으며, 극우 공동연구에 참여해 이탈리아 극우 문화를 살펴보던 중, 이탈리아·유럽·미국 극우가 '공산당 수호성인' 그람시를 오히려 상찬하고 있다는 역설적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규명하는 내용으로 강연을 준비하였다.
2. 그람시의 생애 (1891~1937)
그람시는 이탈리아 '남부지역'에 해당하는 사르데냐라는 섬 출신으로, 이러한 배경은 중심-주변, 억압자-피억압자 문제에 대한 그의 예민한 통찰의 밑거름이 되었다. 어린 시절에는 가난과 척추 질환(낙상 사고로 인한 곱추)이라는 이중의 시련 속에서 성장했다.
이후 토리노 대학(역사·철학·언어학 전공)에 진학해 1914년경부터 사회당 활동을 시작했으며, 1917년 러시아 10월 혁명이 있은 후 혁명을 전하는 <자본에 대한 혁명>을 쓰는데 러시아의 혁명 성공은 경제조건을 뛰어넘는 '인간 의지'로 설명한다. 1919~20년 '붉은 2년' 시기에는 그람시가 소속한 이탈리아 사회당에서 토리노 공장평의회 운동을 주도했다. 1921년 사회당을 탈당해 이탈리아 공산당 창당에 참여했다.
1926년 무솔리니 정권에 의해 불법 체포되었으며 그를 체포한 검사가 그람시를 두고 "이 두뇌를 20년간 작동 못하게 해야 한다"라고 한 말이 유명하다, 그는 11년간 옥중에서 있다가 사망한다. (37년 사망). 옥중에서 노트 33권·약 3천 쪽에 달하는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이것이 사후 <옥중수고>로 출간되었으며, 그 핵심 문제의식은 '가능한 혁명을 위하여'였고 그 중심에 헤게모니 개념이 자리한다.
3. 헤게모니 개념
마르크스는 경제(토대)가 사회의 근본이고 정치·교육·종교(상부구조)는 그 위에 놓인다는 건축적 비유를 썼으나, 둘의 '관계'는 정밀히 설명하지 않았다. 이 공백이 상부구조를 종속변수로만 보는 경제주의적 역사발전론으로 이어졌다. 알튀세르는 이 미지의 영역(상부구조)을 실제로 탐사한 것이 그람시뿐이라 평했다.
그람시는 지배가 강제(폭력·억압)뿐 아니라 동의(설득)를 통해서도 이루어진다는 데 주목했다. 지배계급의 이익을 모두의 이익처럼 보이게 하여 피지배계급의 자발적 동의를 얻는 것 — 즉 강제보다 동의가 우세한 권력 상태가 헤게모니다. 다만 시민사회 지배가 흔들리면 국가의 강제기구가 언제든 동원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점도 그의 이론에 포함된다.
지배계급은 비판적 검토 없이 통용되는 '상식(common sense)'을 확산시켜 동의를 얻는다. 그람시는 다른 방식의 혁명이 필요한데 즉 느린 혁명이 필요하다 보았고 지배 체제를 반대하는 동의를 획득해야 한다. 즉 대항 헤게모니 구축이새로운 혁명의 전략이라 말한다. 상식에 비판적 잣대를 들이대 '양식(good sense)'으로 전환시키는 작업이다.
그람시의 '통합국가론'은 국가를 군대·경찰·행정 같은 강제기구('정치 사회')만이 아니라, 가족·학교·언론·종교처럼 설득으로 체제를 유지시키는 '시민사회'까지 포괄한다. 러시아처럼 시민사회가 미약한 곳은 국가기구를 직접 공격하는 '기동전'만으로 혁명이 가능했지만, 서유럽처럼 시민사회가 견고한 '참호'로 작동하는 곳은 장기간에 걸쳐 문화 영역을 잠식하는 '진지전'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람시의 통찰이다(단, 두 전술은 양자택일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결합됨).
4. 도둑맞은 그람시
그람시가 정당·국가기구를 넘어선 '문화 영역의 정치'를 사유했다는 점에서, 각국 극우는 이를 '메타정치' 전략의 근거로 삼는다. 강연자는 이를 "도둑맞은 그람시"라 부른다.
프랑스의 제무르·마레샬, 네덜란드의 보데는 지배적 신념이 '문화 기준'이 되는 과정을 설명하며, 표면적 선거 결과 아래의 '심층 문화'로 내려가야 한다는 논리로 그람시를 인용한다. 알랭 드 브누아는 "우파 그람시주의를 위하여"에서 정당권력이 아닌 문화권력 획득이 핵심이라 주장하며 스스로 '중립'을 표방하지만, 실질은 극우 이념을 정당화하는 작업에 가깝다.
이탈리아 총리 조르자 멜로니는 체 게바라를 소비하는 청년 문화를 개탄하며 극우 인사를 새로운 문화적 아이콘으로 제시하고, 해방기념일을 '국민화합의 날'로 재규정하려는 시도를 통해 기존 상식에 도전하는 문화 전략을 구사한다. 알렉산드로 줄리는 <그람시는 살아있다>에서 그람시를 탈정치화하여 '위대한 지식인'으로만 서술하지만, 실제로는 이념 대립의 '탈정당화'를 멈추고 '화합'을 받아들이라는 메시지로 극우의 정치색을 희석시킨다.
미국과 한국의 우파 그람시주의는 문화 영역에서의 좌파 헤게모니 장악을 경계하며 우파도 문화 전장에 참전해야 한다는 논리를 편다. 한국의 경우 유럽보다는 미국의 논의를 복제한 흔적이 역력하며 특히 기독교 진영에서 활발히 나타나는데, 그람시의 사상을 충실히 설파하기 보다는 실제로 언급한 적 없는 왜곡된 '강령'이 유포되는 등 허구들이 보인다.
다만 한국의 국정교과서 논란, 뉴라이트의 역사 재평가, 5·18 담론 등도 역사적 사건에 대한 통념을 바꾸려는 시도 등은 그람시적 진지전 전략의 사례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강연자의 진단이다.
5. 맺음말
그람시가 동생에게 쓴 편지의 문구 "지성에는 비관주의, 의지에는 낙관주의(Pessimismo dell’intelligenza, ottimismo della volonta )"를 인용하며, 극우 부상을 견제할 세력이 뚜렷이 보이지 않는 지금, 비관을 비판으로 바꾸어 보는데 여기서 비판은 어떤 대상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파악을 하고 그리고 그것의 논리가 어떤 것인지 그리고 거기에 어떤 모순이 있는 것인지 그 모순을 언제 작동하고 언제 그 논리를 파괴하는 것인지 이것을 정확하게 분석하는 것이다.
낙관을 원하되 비판적 시선은 거두지 않아야 한다.
6. 질의응답
질문 1. 극우는 왜 약자의 언어와 진보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가?
사회학을 연구하고 있다. 두 가지 질문을 하겠다. 우파들이 이렇게 문화적으로 대중들을 포섭하면서 약자의 언어를 사용하면서 전유를 하려고 하는 것이 왜 먹히는가. 독일의 독일을 위한 대안(Alternative für Deutschland AfD)를 비롯한 일부 극우 세력이 여성의 권리를 내세우며 반이민 정책을 정당화하거나, 진보 진영 내부에서도 이러한 담론과 결합하는 사례가 나타나는 이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궁금하다
답변 우파(극우)가 시민사회에서의 헤게모니 투쟁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는 정치 사회(강제기구)의 주인이기도 하다는 점을 짚었다. 시민사회에서의 지배가 흔들릴 때는 언제든 정치 사회가 그 이해관계 보존을 위해 동원될 준비가 되어 있으며, 극우가 스스로를 약자처럼 내세우는 것은 현재 정권을 잡지 못한 데서 비롯되는 인상일 뿐 지배계급의 관점에서 실제 약자·종속계급이라 보기는 어렵다.
두 번째로 이런 전유에 맞서려면 '연대'의 의미가 더 강조되어야 한다. 프랑스혁명부터 1960년대까지 서구의 역사적 과정을 보아도 페미니즘 같은 가치가 단독으로 실현된 좋은 사례는 찾기 어려우며, 노동계급 운동이나 젠더·나이·지위·계급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지배관계를 이루는 다양한 '서발턴' 집단과 결합할 때 그 가치가 더 효과적으로 실현되어 왔다. AfD가 무슬림 남성을 독일 여성에 대한 위협으로 규정하며 페미니즘의 언어를 끌어다 쓰는 것은 이러한 연대의 부재를 파고든 사례로, 그런 식의 결합이 아니라 사회 내 다른 서발턴적 지위에 있는 이들과의 연대가 필요하다고 본다.
질문 2. 기동전과 진지전에 따른 그 당시 국가론은 무엇인가?
러시아는 시민사회가 사실상 부재한 사회였기에 국가의 억압기구(정치 사회)만 장악하면 혁명이 완성될 수 있었지만, 서구는 진지적 시민사회가 장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람시가 강조한 진지전이란 결국 일상생활에서 사람들이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상식'의 허점을 공격해 이를 '양식'으로 대체함으로써 시민사회를 장악해가는 과정이며, 바로 이 지점 때문에 유럽의 많은 진보 지식인들이 그람시에 열광했다 — 볼셰비키 혁명 이후 소련의 실상을 보고 실망한 이들에게 (검열로 인해 감옥에 있는 그람시가 맑시즘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수 없었지 않나) 피 흘리는 투쟁 없이도 시민사회에서의 진지전을 통해 혁명이 가능하다는 그람시의 사상이 일종의 지성사적 위안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정치 사회(억압기구)가 성곽의 '해자'처럼 시민사회를 보호하며 시간을 버는 역할을 하는 것인지, 아니면 통합국가론에서처럼 이 둘이 생활 속에서 서로 혼종되어 있는 것인지를 궁금하다.
답변 사람들이 편의상 기동전은 동유럽에서처럼 시민사회가 거의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공격하는 방식이고 서유럽처럼 시민사회가 고착된 곳에서는 진지전이 적용되는 전술이라 하는데 그람시가 말하고는 있지만 <옥중수고>에서 그람시는 기동전과 진지전을 양자택일로 보지 않았다. 유기적으로 결합되는 것이고(예컨대 인도 식민지에서는 둘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그람시 스스로 언급했다), 정치 사회와 시민사회 역시 뚜렷이 구획된 두 영역이라기보다 서로 겹쳐 있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검열(censorship) 말씀해 주셨는데 실제로 <옥중수고>에는 수백 회 맑시즘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검열로 인해 ‘노동계급’을 ‘서발턴’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도 그렇지는 않다. 검열 보다는 자신만의 어떤 고유한 개념적인 의미를 담아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통합국가론을 그림으로 보자면 정치사회와 시민사회가 아주 살짝 겹쳐진 상태이다. 정치 사회의 강제성들이 움직이는 윤리적인 기반을 갖고 이 시민사회에 터잡은 것 아닌가 하여 살짝 겹쳐놓았다. 그리고 정치 사회가 해자(垓字)의 역할을 한다 하였는데 정치 사회가 일종의 해자(垓字)에 둘러싸인 성이라고 할 수가 있어서 그것을 공격할 수 없도록 미연에 방지해 주는 시민사회가 진지, 참호의 역할을 한다.
질문 3. 한국의 뉴라이트 역사전쟁도 그람시식 '진지전'으로 볼 수 있는가?
역사 교과서의 국정 교과서 시도, 지금은 없어졌지만 한국 근현대에 대한 공격. 최근에 리박스쿨 그리고 뉴라이트 진영에 의한 이승만 합당 이런 것들이 다 그러면 소위 말하는 우리 한국사 우파들이,이제 그람시의 그런 진지전을 좀 차용해 와서 하는 전략으로 볼 수 있는가.
답변 이러한 사례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스스로를 '우파 그람시주의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펼치는 전략은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을 자신들의 방식으로 변용한 실천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핵심은 특정 역사적 사건에 대한 사회적 기억과 상식을 새롭게 구성하려는 데 있다. 예를 들어 5·18 민주화운동을 떠올릴 때 사람들이 희생과 민주주의를 먼저 연상하는 대신, 조롱이나 희화화된 표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분위기를 바꾸려는 시도는 단순한 역사 해석의 차원을 넘어 문화적 기반을 재구성하려는 전략으로 보여진다. 나아가 자신들의 역사관을 전달할 수 있는 학교나 교육기관 같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려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이 모두 그람시주의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문화적 헤게모니를 확보하기 위해 사회의 기억과 상식을 장기적으로 변화시키려는 '그람시주의적 실천'을 수행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질문 4. 역사 문제를 둘러싼 공론장은 여전히 가능한가?
최근 역사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점점 격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일부 보수 진영은 기존 역사학을 '자학사관'이라고 비판하는 반면, 진보 진영은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재평가를 역사 왜곡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또한 역사적 사실을 둘러싼 논쟁뿐 아니라 조롱과 혐오의 언어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이것이 단순한 정치적 반발인지 아니면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전략인지 질문했다. 아울러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공개적인 공론장에서 토론하며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갈 가능성은 없는지 강연자의 견해를 말해달라.
답변 그러한 공론장이 가능하다면 매우 바람직하지, 현실에 대해서는 다소 회의적인 입장이다. 위르겐 하버마스의 공론장 이론은 역사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특히 서유럽에서 공론장이 비교적 잘 작동했던 시기는 소득격차 지금보다 훨씬 적었던 1960~70년대의 사회적 조건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한국 사회에서도 이승만, 박정희, 5·18과 같은 역사 문제를 놓고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이 편견 없이 모여 충분히 토론하고 합의를 모색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대립을 위한 대립이 심화되어 있어, 역사 문제를 비롯한 여러 쟁점에서 서로 다른 진영이 신뢰를 바탕으로 대화하고 최대한의 합의를 끌어낼 수 있을지 회의가 된다.
질문 5. 오늘날 혁명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에는 혁명은 가능하지 않다는 생각들이 많은데 사실 2016, 17년 촛불 광장에서는 그 자리에 함께하면서 이것이 혁명이 아니면 무엇인가 하였고 그 혁명을 이렇게 새롭게 해석을 했을 때 기꺼이 좀 누렸다."강사에게 오늘날의 혁명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답변 한국 사회는 광우병 촛불집회, 박근혜 탄핵 촛불집회, 윤석열 정부에 대한 시민행동 등 큰 정치적 변화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그러나 정권이 교체된 이후 민주주의의 가치와 새로운 사회적 질서를 얼마나 만들어냈는지를 돌아보면 반복되는 한계를 느낀다. 거리에서 민주주의를 외치고 기존 권력을 무너뜨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 이후 새로운 민주적 가치와 사회적 상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이어져야 한다.
연구자로써 혁명이란 책상 앞에서 혁명을 하는 사람이기에 어려웠던 텍스트가 제대로 번역되고, 몰랐던 그람시를 새롭게 알게 되는 것이 혁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