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독일 극우주의(AfD)의 부상과 정치 지형의 변화
독일의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2013년 유럽 재정위기 속에서 탄생했다. 처음에는 유로화와 유럽연합(EU)의 재정 지원 정책을 비판하는 보수적·경제적 성격의 정당에 가까웠다. 그러나 2015년 유럽 난민위기를 계기로 급격한 변화를 겪으며 반이민· 민족주의 정당으로 성격이 바뀌었다.
창당 당시 4.7%의 지지율에 머물렀던 AfD는 독일 의회 진출 기준인 5%에 미치치 못하다가, 2017년 총선에서는 약 13%를 얻으며 연방의회에 진출했다. 이후 지지율은 계속 상승하여 2025년 총선에서는 20%를 넘어서며 제2당으로 성장했다. 특히 동독정당이라 일컬어질 만큼 동독에서 지지세를 크게 얻고 있는데 중심지가 동독의 튀링겐이다.
충격적인 것은 그동안 독일에서 기민련과 함께 40%이상 지지율을 받았던 사민당(SPD)이 16%로 줄어든 상태이다.
전후 독일은 나치의 역사와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 위에서 극우 정치의 재등장을 막아왔다. 그러나 AfD의 등장은 이러한 전후 정치문화가 더 이상 절대적인 안전장치가 아님을 보여준다. 현재 독일의 기존 정당들은 AfD와의 연정을 거부하는 ‘방화벽(Firewall)’ 전략을 유지하고 있지만, AfD의 지지율이 계속 상승한다면 이러한 정치적 합의가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 "누가 독일인인가?": 이주 사회화와 독일 시민성의 한계
2004년 이민법 제정 이후 '이주배경을 가진 자'의 독일인구 비율에서 2005년 18%에서 2025년 30%로 늘었으며, 이들은 극빈층부터 바이오엔테크 창업자·녹색당 대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에 분포한다. 계절노동자·강제노동자·손님노동자·난민으로 이어진 외국인 고용의 역사 속에서, 이주민은 독일 중산층 복지사회를 떠받쳐온 존재였음에도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아왔다.
여기에 2015년 시리아 내전과 유럽 난민위기가 겹쳤다. 메르켈 정부는 약 100만 명에 가까운 난민을 수용하며 장기집권의 종지부를 찍게 된다.
나폴레옹의 신성로마제국 해체(1806년)를 계기로 본격화된 독일 민족주의는 1815년 이후 자유주의와 결합해 발전했으나, 1848년 혁명기 폴란드 독립 문제를 둘러싼 논쟁에서 ‘건강한 민족 이기주의’를 내세우며 배타적 민족주의로 기울었다. 이후 융커 계급과의 타협을 통한 '위로부터의 통일'(비스마르크의 철혈정책)로 나아가며 문화적·종족적 민족주의가 뿌리내렸고, 이는 나치즘으로 귀결되었다. 전후 서독은 '뷔르거(시민/부르주아)' 개념의 재정의를 통해 계급성을 넘어선 시민사회를 지향했지만(테오도르 몸젠, 돌프 슈테른베르거의 헌법애국주의), 빌헬름 하이트마이어의 장기 연구가 보여주듯 중산층 내부에는 신자유주의 가속화와 복지국가의 후퇴 속에서 자신의 지위가 흔들린다는 불안에서 비롯된 혐오 정치가 계속 잠복해 있었다.
이 불안은 밑바닥에 머물 줄 알았던 이주민과 난민을 향한 집단적 혐오와 분노로 연결되었다. 학자들은 이를 민주주의의 버팀목이어야 할 중산층 내부에서 팽배해진 '조야한 시민성(Rohe Bürgerlichkeit)'이라고 진단한다
3.흡수통일의 상흔인 동독 상처와 극우주의
동독 출신 사회학자 슈테판 마오는 『불공평하게 통일되다(Ungleich vereint)』에서 동독이 단순히 경제적으로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정체성적 소외를 경험했다고 분석한다. “동독은 언젠가 서독처럼 될 것”이라는 기대는 실현되지 않았고, 오히려 동독 주민들은 자신들의 삶이 부정당하고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불만은 난민 문제와 결합했다. “외국인을 통합하기 전에 우리부터 통합하라”는 구호가 등장했고, 난민에 대한 분노는 곧 정치적 지지로 이어졌다. AfD는 바로 이러한 상실감과 소외감을 정치적으로 조직하는 데 성공했다.
여기에 회케가 기억정치의 ‘180도 전환’을 요구하고, 가울란트가 나치 시대를 독일 역사에서의 ‘새똥’에 비유하는 등 나치의 가해 역사를 상대화하고 독일인을 피해자로 재구성하려는 기억정치가 겹치면서, 정상과 극단의 경계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4.통합 정체성을 향한 새로운 과제
오늘날 독일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는 새로운 국민 정체성을 만드는 일이다. 독일은 더 이상 단일 민족국가가 아니다. 인구의 30% 이상이 이주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경제와 문화, 정치의 모든 영역에서 이주민 후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문제는 독일 사회가 이러한 현실을 완전히 수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인 민족 개념은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극우세력은 이를 적극 활용하고 있다. 특히 경제적 불안, 복지국가의 후퇴, 중산층의 위기감은 외국인 혐오와 결합하며 정치적 극단주의를 강화한다.
결국 독일 극우주의의 부상은 단순히 난민이나 경제 문제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독일은 누구의 나라인가”, “독일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치 과거에 대한 반성 위에 세워진 역사문화가 독일 민주주의 안전판이라 믿어 왔던 것이 세대교체를 하며 바뀌고 있다. 안전판을 지키기 위한 민주시민교육과 역사교육이 중요하다.
5. 질의응답
질문 1. AfD(독일인을 위한 대안) 정당 지지자 중에 젊은 층이 많은가?
최근 젊은 층의 지지가 상당히 늘고 있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일에서도 '디지털 극우'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특히 '독일 정체성 운동' 등을 중심으로 미디어를 통해 AfD를 지지하는 청년층이 크게 증가하는 추세다.
질문 2. 독일에서 "시민이 부르주아가 되었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경제 성장으로 인해 계층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면서, 과거 사민당의 기반이었던 전통적 '노동자 정체성'이 옅어지고 중산층(부르주아)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오늘날 독일의 주요 노조 대표들이 현장 노동자로서의 정체성보다는 중산층 시민으로서의 정체성을 더 강하게 가지게 된 것 같다.
질문 3. 독일의 복지가 잘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독인들이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의 실체는 무엇인가?
경제적 지표상으로는 통일 후 30년 동안 동독이 서독의 70% 수준까지 따라잡았으나, 박탈감의 본질은 단순한 경제 수치보다 '심리적·정서적 박탈감(하이마트의 상실)'에 가깝다. 난민 문제 등 외부 요인에 대한 반발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통일 과정에서 발생한 서독과의 상대적 격차 및 정서적 괴리감이 주요 원인인 내부문제로 보인다.
질문 4. (보충 의견 및 질문) 통일 이후 동독 지역의 실업과 난민 배분, 그리고 동독인들의 정서적 부정(Self-Denial) 경험에 대해 어떻게 보나?
(청중 보충 및 메르켈 총리 언급): 통일 직후 동독은 높은 실업률로 고통받았고, 이때 전국으로 배분된 난민들을 처음 접하며 큰 혼란을 겪었다. 비록 경제 지표는 70% 수준까지 올라왔지만, 언론·대학 총장 등 고위층(엘리트) 내 동독 출신 비중은 여전히 매우 낮다. 메르켈 총리가 퇴임 시 언급했듯, 동독 주민 상당수가 직업을 바꾸고 자신들의 과거와 삶의 가치 전체를 부정당해야 했던 정서적 상실감이 오늘날 정치적 반발로 나타나고 있다.
질문 5. 만약 남한 중심으로 흡수통일이 된다면 북한 주민들도 동독 주민들과 비슷한 일을 겪게 될까?
동일한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수준이 향상되더라도 자신의 과거와 삶의 궤적 전체를 부정당하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점에서 깊은 정서적 상실감(하이마트 상실)과 분노가 축적될 수 있다. 메르켈 총리가 17년 집권 후 퇴임 시에야 비로소 동독 출신으로서의 소회를 밝힌 점도 이러한 맥락이다.
질문 6. 유럽의 극우는 이주민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이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
한국 사회는 겉으로는 중국(조선족)이나 특정 국가에 대한 혐오만 드러나는 듯하지만, 무관심과 침묵 속에서 더 심각한 인종주의가 작동하고 있을 수 있다. 과거 독일도 90년대 외국인 비율이 8% 수준일 때 "배가 찼다(보트가 찼다)"고 했지만 금방 30% 수준의 이주배경사회로 진입했다. 한국 역시 저출산·고령화로 인력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다문화 사회로 전환될 것이며, 준비되지 않은 침묵은 향후 큰 사회적 갈등과 극우화로 이어질 수 있다.
질문 7.한국의 극우화가 더 심각해 보이는 상황에서, 독일의 경우 이를 어떻게 제어하고 있으며 성숙한 시민의 자세란 무엇인가?
결국 답은 '시민교육'에 있지만,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독일 모델 역시 한계가 있다. 독일 노조조차 역사적으로 외국인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지 않았다. 독일의 시민 개념 또한 여전히 국경을 넘어서는 '초국적(Transnational) 현실'을 완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다문화·이주민 현실을 함께 살아가는 실질적 동반자로 인정하는 비판적 시각과 성숙함이 필요하다.
질문 8. 우리가 접해온 독일의 사상적·정신적 유산(하이데거, 하버마스 등)도 일종의 허상이었을까?
우리가 가졌던 '독일 모델'에 대한 상이 너무 이상화되어 있었을 수 있다. 독일 역사학계나 지성사에서도 과거 나치 협력 이력을 은폐했다가 뒤늦게 밝혀지기도 했다. 독일 역시 서구화·정상화를 추구해 온 일반적인 국가일 뿐이며, 이를 비판적·현실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질문 9. 그렇다면 독일의 정치·시민교육 지침인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효과가 없었던 건가?
효과가 전혀 없었다기보다는 분명한 한계가 존재했다는 의미이다. 주입 금지, 논쟁성 유지, 학생 중심이라는 훌륭한 원칙에도 불구하고, 현대의 다문화 사회나 극단화된 정치 환경 속에서 이방인을 완전한 시민으로 포용하는 데는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질문 10.우리는 사민주의를 일종의 고향(하이마트)처럼 이상화하고 있는데, 사민당의 쇠퇴는 어떻게 봐야 하나?
사민당은 1998년 슈뢰더 집권 이후 중도 노선을 취하며 기존의 정체성을 많이 잃었다. 그 결과 사민당의 전통적 입지는 약화되었고 지지율이 크게 하락했다. 전통적 사민주의 모델이 현대 정치 지형에서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냉정한 분석이 필요하다.
질문 11. 바이마르 공화국 시절 사민당이 무너지며 히틀러가 집권했던 과거와 지금의 상황은 비슷한가?
과거 바이마르 체제와는 차이가 있다. 거대 양당이 무너지고 극우가 성장한 것은 사실이지만, 한편으로는 녹색당과 같은 소수 정당들이 20% 가까이 성장하며 진보적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현재 독일 정치는 거대 양당 중심에서 여러 정당이 20% 안팎에서 경합하는 다당제 및 연정 체제로 변화했다. 과거 억눌려 있던 민족주의적 발언들이 사회적 제약 없이 터져 나오는 측면은 있지만, 시민사회 내부의 견제 축 역시 함께 작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