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 인권침해 사건에 대한 진화위 조사결과에 부쳐-

“공권력이 직·간접적으로, 부랑인으로 칭한 사람들을 형제복지원에 강제수용해 강제노역, 폭행, 가혹행위, 사망, 실종 등 중대한 인권침해가 있었음을 확인했다.”

“국가는 형제복지원 인권침해 문제에 대한 진정을 묵살했고, 사실을 인지했으나 조치하지 않았으며, 1987년 형제복지원 사건을 축소 왜곡해 실체적 사실관계에 따른 합당한 법적 처리가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확인되었다”

지난 8월 24일, 긴장감과 기대감이 뒤섞인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의 기자회견장.

형제복지원(이하 ‘복지원’) 피해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근식 위원장이 복지원 인권침해사건 진실규명 결과를 발표했다. 복지원 사건이 세상에 알려진 후 35년만에 공권력에 의한 부당한 인권침해가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1987년 복지원 수용자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하고, 폭행·감금한 것에 대해 수사가 진행됐지만 외압에 의해 축소됐고, 축소된 공소사실마저 법원에서 대부분 무죄가 선고됐다. 6월 민주항쟁의 열기 속에서도 이른바 ‘부랑인’들에 대한 참혹한 인권유린은 시민사회의 정당한 관심을 받지 못했다. 2005년 출범한 1기 진화위는 복지원 강제수용 사건에 대해 신청인의 주장이 신뢰성이 없다는 이유로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채 각하 결정을 내렸고, 이 사건은 그대로 잊혀지는 듯했다.

그러나, 2012년 피해자 한종선씨가 국회 앞 1인 시위로 공론화를 촉발하고, 곧이어 합류한 최승우씨와 3년에 걸친 노숙농성을 통해 시민사회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마침내 2기 진화위를 이끌어냄으로써 전기를 마련했다.

진화위가 발표한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정부는 1960년대 이후 사회복지 관계 법령, 치안 관계 법령, 내무부훈령 제410호, 부산시재생원설치조례 등에 근거하여 부랑인 단속과 강제수용 정책을 실시해 왔는데 이는 상위 법령의 위임 등 적법절차를 지키지 않은 자의적 구금으로, 신체의 자유 등 중대한 기본권을 침해했다.

둘째, 복지원에 과밀 수용하여 피수용자들을 군대식으로 통제하고, 무임금으로 강제노역에 동원하였을 뿐 아니라 아동들에게 의무교육을 시키지 않았다.

셋째, 피수용자들에 대한 구타, 가혹행위 뿐 아니라 성폭력이 만연했고 사망자가 다수 발생했으며, 부적절한 의료조치와 사망진단서 조작, 암매장 등이 이뤄졌다.

넷째, 정부는 복지원의 실상을 알고 있었으나, 1987년 검찰 수사가 있기까지 실태조사나 피수용자 구제를 위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다섯째, 부랑인으로 지목되어 온 사람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연고자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거나 이들의 신원을 허위로 기재, 혹은 강제로 변경하기도 했다. 이로 인해 피수용자들 중 현재까지 생사나 행방이 확인되지 않거나 가족관계와 원적이 회복되지 못한 경우가 있다.

또한, 진화위는 ‘복지원을 불순분자에 의한 조직적인 집단행동 유발가능성이 높은 집단’으로 판단한 국군보안사령부가 복지원에 요원을 침투시켜 ‘갈채공작’이라는 수사공작을 통해 간첩혐의를 포착하려 했던 것을 확인했다.

진화위는 이러한 조사결과와 함께 △피해자와 유가족에게 국가가 공식 사과할 것, △피해회복과 트라우마 치유 방안을 마련할 것, △각종 시설에서 피수용자의 인권침해 방지를 위해 관리·감독을 철저히 하고 사회복지공무원 및 시설 운영자 등에 대한 인권교육을 강화할 것, △국회는 유엔 강제실종방지협약을 비준 동의할 것, △부산시는 복지원 피해자의 조사 및 지원 업무를 담당하는 조직에 적합한 예산, 규정, 조직을 정비할 것을 권고했다.

2기 위원회에서 복지원의 강제수용 및 가혹행위 등이 국가에 의한 인권침해 사건임을 규명한 것은 의미가 있다. 국가기관이 복지원 피해자들의 참혹한 인권침해 사건을 처음으로 조사해서 피해를 인정하고, 국가가 배상해야 할 의무가 있음을 밝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화위 조사결과에는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먼저, ‘부랑인’에 대해 낙인을 찍고, 경찰력을 동원해 이들을 분류하여 단속하고, 강제 수용하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는다.

법률 대신 내무부 훈령을 통한 강제 수용이 위헌·위법했다는 평가에 그칠 것이 아니라, 법률 제정을 통해 이른바 ‘부랑인’을 단속, 강제 수용했다면 정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 문제 제기하고 답해야 했다. 나아가 소관 부처를 내무부로 정한 배경과 과정, 훈령 입안 과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하지 않은 것도 아쉬운 점이다.

1975년 내무부훈령 제410호 「부랑인의 신고, 단속, 수용, 보호와 귀향 및 사후관리에 관한 업무처리 지침」은 단속·수용·보호를 위한 임무로 ‘안보적 측면에서 범법자, 불순분자 등의 활동을 봉쇄’할 것을 우선적으로 명시하고, ‘불우이웃을 도와 건전하고 명랑한 사회질서를 확립하고 도시환경을 정화’하는 것으로 정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자치단체장과 경찰이 합동으로 단속반을 편성하도록 했다. 나아가 단속한 부랑인 중 범법자, 불순분자를 파악하여 관리하고, 퇴소 후에도 생활실태를 확인하는 명목으로 감시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들었다. 내무부 훈령 제410호는 ‘복지’차원이 아니라 ‘안보’ 차원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내무부 훈령 제410호를 제정한 1975년 무렵 유신체제가 맞닥뜨린 국내 정치·경제적 위기, 베트남 공산화와 미·중 데탕트를 계기로 한 미군 철수 움직임 등 국제 정치적 위기, 그 속에서 절대 권력 체제를 유지하려고 한 박정희 정권의 의도 등과 관련해 더 깊은 검토가 필요해 보인다.

다음으로, 부모와 가정에서 격리되어 복지원에 강제 수용된 피해자들이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한 채 폭력과 가혹행위, 성폭력, 강제노역 등 참혹한 상황에 장기간 노출되고, 퇴소 후에도 사회의 보살핌을 전혀 받지 못한 채 방치된 것이 현재까지 이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조사와 분석, 그리고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도 아쉽기 짝이 없다. 교도소 보다 더한, 지옥 같은 공간에서 물리적으로 벗어난 것만으로는 그 이후의 삶을 정상으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진화위는 누적된 과거의 참혹한 경험이 어떻게 현재의 고통으로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해, 그래서 국가폭력으로 인한 피해와 그 고통의 무게가 얼마나 큰지에 대해 깊이 분석했어야 한다.

진화위는 복지원의 사망자 수가 기존에 알려진 것 보다 많은 657명이라고 추산했다. 그러나, 명부나 자료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에 이 추산이 얼마나 정확한지 판단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인력 등의 한계로 진화위가 직접 할 형편이 되지 않는다면, 국가가 책임지고 사망자와 유가족을 전수 조사하고 적절히 조치하도록 권고하는 것이 필요했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와 유가족에 대한 배·보상 조치, 불법으로 신원이 변조된 피해자들의 신원 회복을 위한 법적 절차 마련, 박인근 원장이 축적한 재산에 대한 환수 등을 특별히 권고하지 않은 것도 한계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지금 상황에서는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받으려면 민사소송 절차를 거쳐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들은 그 절차를 감당할 수 있는 자원을 갖고 있지 않을 뿐더러 민사소송은 기본적으로 오랜 시일이 걸리고, 결과가 불확실하며 불공평할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들의 부담을 줄이고, 좀더 공정하고 정의로운 배상이 이루어질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도 진화위의 숙고가 필요해 보인다.

이번에 진실규명에 포함되지 못한 신청인과 올해 12월 9월까지 추가로 접수될 사건에 대해서 진화위가 추가적인 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이런 부분에 대해서 보다 면밀한 조사 결과와 권고가 나오길 기대해본다.

“진상규명을 해 주셔서 한편으로는 감사합니다만, 아직 저희는 국가에 대해서 정확한 확답도 받지 못해서 불안한 건 사실입니다.”

한종선씨의 말이다.

(임순영 진실의 힘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