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대의 포스터, "세계의 민중이여, 우리는 상품이 아닙니다"

박윤주 교수 (계명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3회에 걸쳐 칠레의 사회 개혁 요구 시위와 그 뒤를 잇는 개헌의 노력을 소개하고자 한다. 칠레의 사례를 살펴보면 지금 우리가 처한 현실을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세계적으로 창궐하던 2019년 겨울, 남반구에 있는 칠레는 여름이었다. 그리고 칠레의 여름은 코로나19 대유행에 대한 공포가 아닌, 칠레 사회의 모순과 오랜 시간 이를 해결하지 못한 정치권에 대한 분노로 가득 차 있었다. 2019년 10월부터 2020년 3월까지 계속된 칠레의 사회개혁 요구 시위는 그 참가 인원의 규모와 시위의 강도 덕분에 사회폭발(Estallido Social, Social Explosion)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전 세계 시민들이 코로나19의 공포 속에서 마스크를 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설 때, 칠레의 시민들은 칠레 전역에서 사회개혁을 요구하며 거리를 메웠다. 라틴아메리카 최초의 OECD 가입국이자, 신자유주의의 모델 국가로 칭송 받던 칠레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에 관한 뉴스는 전 세계 언론을 통해 소개되었다. 평소 라틴아메리카에 대해서 큰 관심이 없는 우리 언론 마저도 칠레의 시위 소식은 비교적 여러 매체에서 다루었다. 시위를 촉발한 고등학생들의 지하철 점거 소식은 뉴스 포털에서 클릭을 많이 받을 수 있을 만큼 흥미로웠으며, 특히 고작 30페소(2022년 4월 기준 한화 약 45원)에 불과한 인상 폭에 전국이 들고 일어났다는 다소 자극적인 머리기사는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했다. 그 많은 사람이 고작 우리 돈 45원에 분노하게 된 사연이 궁금했던 것이다.

언론은 앞다투어 칠레 사회개혁 요구 시위의 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지하철 요금인상과 그에 반대하는 지하철역 점거 사태로 촉발되었으니 경제적인 불만을 시위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결정이었다. 게다가 라틴아메리카는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지역으로 손꼽는 곳이니 경제적 어려움과 함께 OECD 국가마저 극복하지 못한 라틴아메리카의 고질적 불평등으로 사회개혁 요구 시위를 설명하는 글들은 타당해 보였다. 하지만 정말 칠레의 불평등이 악화하였을까?

세계은행에 따르면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불평등의 정도를 수치화한 지니 계수의 추이를 비교해보면 칠레의 불평등은 1990년대에 비하여 2000년대에 들어 상당히 개선되었다. 이는 20여 년 넘게 정권을 잡았던 칠레의 중도좌파 정부가 실행한 불평등 완화 정책의 성과였다. 물론 여전히 44.9에 달하는 지니 계수는 칠레 사회의 불평등이 심각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불평등을 사

회폭발이라고까지 불리는 대규모 사회개혁 요구 시위의 원인으로 지목하기에는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다. 특히 칠레의 불평등이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닌데 2019년에 칠레 시민들이 분노한 원인을 불평등에서 찾는 것이 설득력 있는 주장일까? 불평등은 칠레 사회에서 변하지 않는 상수였고, 심지어 소폭이나마 개선되고 있었다면 불평등만으로는 2019년 칠레 시민들의 분노를 설명하기 어렵다.

사회개혁 요구 시위는 일종의 사회운동이며, 사회운동은 불만을 통하여 촉발되고 그 불만에 공감하는 사람들의 수를 늘려가면서 성장한다. 사회운동은 그래서 불만을 촉발시킨 대상에 대한 투쟁이라기보다는 불만에 아직 공감하지 않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과정이다. 불만을 공유하고 이에 공감하는 사람들을 많이 모을수록 사회운동은 성장하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에 유리하다. 투쟁은 투쟁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투쟁을 통하여 투쟁의 대의에 공감하는 세력을 확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할 때 사회운동에 유용한 것이 된다. 이 틀에서 살펴보면 칠레의 사회개혁 시위는 매우 성공적인 사회운동이었다.

물론 지하철 요금의 인상은 많은 칠레 시민들이 불만을 가질 수 있는 사건이었다. 하지만 칠레 정부는 고집스럽지 않았고, 이내 요금인상안을 철회하였다. 불만이 사라지면 시위도 사라져야 했다. 하지만 칠레의 경우 요금인상안 철회로 시위가 잦아들지 않았다. 불평등이 시위의 원인이라고 지목되자 당시 대통령이었던 세바스티안 피녜라 대통령은 그동안 칠레의 불평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는 대국민 사과 성명을 내고 강도 높은 개혁 추진을 약속하였다. 하지만 시위는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거리로 나와 근본적인 사회개혁을 요구하였다. 왜 시위대는 멈추지 않았을까?

그런 의미에서 지하철 점거 고등학생들과의 인터뷰는 흥미롭다. 사실 칠레의 지하철 요금 인상은 고등학생들에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학생 요금의 인상은 인상안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교통통신부 장관도 학생들이 인상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여 시위를 시작했다며 황당하다는 반응을 내비쳤다. 하지만 학생들의 입장은 달랐다. 시위를 주도했던 칠레 중고등학생 연맹의 대변인인 마르코 파우레는 그들의 시위가 “비참한 수준의 임금을 받는 아버지, 어머니,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고통” 그리고 “그들을 옥죄는 불평등한 시스템”에 분노한 결과라고 주장하였다. 시민의 발이 되어야 할 지하철이 이윤을 창출하는 상품으로 여겨지는 현실도 참을 수 없다고 했다. 이들은 개인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가 겪고 있는 사회문제에 분노했고, 공동체의 삶을 위협하는 시장의 논리에 저항한 것이다. 45원의 요금인상이 철회되었다고 이러한 근본적인 불만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신자유주의는 흔히 경제정책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시장의 논리가 삶을 지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경제정책 이상의 결과를 초래한다. 개인은 시장에서 무한경쟁에 내몰리는 존재로 전락하고, 가치 있는 삶은 시장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삶으로 재해석된다. 공공의 영역은 부패와 무능의 영역으로 치부되고, 함께 무엇을 도모하는 것은 개인들이 경쟁하는 것에 비하여 능률이 떨어지는 구태가 된다. 나에게 이롭지 않은 인간관계는 청산의 대상이 되고, 나 또한 누군가에게 청산 당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 혹독한 경쟁 속에서 나에게 흙수저를 물려준 가족이 원망스럽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인간이 본래 놀라울 정도로 사회적인 동물이고, 정서적으로 심지어 육체적으로도 공동체를 떠나서는 생존하기 어렵다는 점을 잊게 만든다. 신자유주의가 만든 세상에서 인간은 고립되고 동시에 소외되며 정신적 그리고 육체적으로 병들게 된다.

신자유주의의 민낯을 무려 50여 년 경험한 칠레 시민들은 더욱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며 2019년 시위에 나섰다. 이 변화의 요구는 사회의 각 부문에서 터져 나왔다. 학생들은 교육 제도에서 소외된 학생들의 삶을 복원하라고 요구하였고, 여성들은 성폭력과 차별로 여성의 삶이 파편화되는 것이 무자비한 시장의 논리와 무관하지 않다고 주장하였다. 칠레의 역사 속에서 늘 소외와 차별을 경험해왔던 원주민들은 사회적 약자에게 가해진 폭력과 배제를 활용하는 신자유주의의 본질을 폭로하였다. 효율적인 경제 발전이라는 핑계로 파괴되는 환경을 보호하기 위하여 인간과 인간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 환경의 관계를 회복해야 한다는 환경운동가들의 주장도 큰 호응을 얻었다. 이 밖에 의료, 노동, 성소수자, 연금수령자 등 다양한 집단들이 시위에 동참하였고, 이들의 주장이 어우러져 큰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한 중심에는 신자유주의와 함께 삶의 곳곳에 스며든 시장의 논리에 대한 저항이 있었다. “칠레에서 태어난 신자유주의, 칠레에서 종말을 고하리라”는 그들의 구호는 이런 광범위한 공감대를 확인하는 것이었으며, 칠레의 사회개혁 요구 시위는 45원 지하철 요금인상안의 철회 정도로는 진정시킬 수 없는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요구였다.

그렇다면 시장의 논리에 잠식당한 사회 특히 공동체를 복원하는 작업은 무엇을 통하여 가능할까? 칠레 시민들은 그 해답을 헌법 개정에서 찾았다. 칠레의 현 헌법은 칠레인들에게 피노체트 정권의 잔재를 상징한다. 1980년 피노체트 헌법은 보수적인 가톨릭 신자이자 법학자였던 하이메 구스만이 주도하는, 12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헌법제정위원회에 의해서 작성되었다. 당시 이 헌법은 대통령이었던 피노체트의 정치적 영향력과 군부의 권력 그리고 보수정당의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다양한 독소 조항이 포함된 헌법으로 평가받았다. 이후 민주 정부 집권 시기 동안 다양한 개정 절차를 거쳐 여러 독소 조항이 삭제 및 수정되었으나 여전히 칠레 시민들에게 이 헌법은 신자유주의를 칠레 사회에 이식시킨 피노체트를 상징한다. 이번 사회개혁 요구 시위를 통하여 피노체트 헌법을 완벽하게 대체할 새 헌법의 제정이야 말로 칠레 사회의 복원을 의미한다는 정치적 합의가 도출된 것이다. 칠레 시민 사회의 개헌 요구는 따라서 법 개정 이상의 의미를 띤다. 그동안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에 의해 소외와 배제를 경험한 칠레 시민들은 헌법의 개정을 통해 칠레 사회가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를 복원하고 소외와 배제의 문화를 극복할 것을 요구한 것이다. 경제정책의 수정, 교육 정책의 변화, 연금 정책의 개혁 등 정책적 변화에 대한 요구가 아니라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세계관의 변화를 요구하였으니 개별 정책을 포기하는 정부의 항복 문서는 시위대의 마음을 얻기 어려웠다. 결국, 새로운 헌법을 제정함으로써 칠레 사회를 구성하고 다스리는 근본적인 원칙을 다시 세우자는 시위대의 의견은 칠레 시민들의 압도적 다수인 무려 78%의 찬성으로 현실이 되었다.

칠레의 사회개혁 요구 시위와 그 결론은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우리도 신자유주의를 사회가 움직이는 근간으로 삼은 지 무려 20여 년이 넘었다. 그동안 칠레와 마찬가지로 부분적인 수정은 이루어졌지만, 그 핵심이 바뀌지는 않았고, 그 결과 무한경쟁과 개인의 자유가 가장 중요한 가치라고 여기는 사회를 갖게 되었다. 이런 사회에서 우리는 행복한가? 칠레의 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인 듯하다. 칠레는 그래서 그 근간을 바꾸자고 결심하였다. 그리고 새로운 헌법의 제정을 그 방식으로 선택하였다. 경제정책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를 법의 이름으로 극복하려는 매우 놀라운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그 실험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022년 9월 칠레의 시민들은 그렇게 원했던 칠레의 새 헌법안을 부결시켰다. 헌법안 부결의 소식은 전 세계에 타전되었고, 지나치게 급진적이었던 새 헌법안의 내용이 문제였다는 반응이 쏟아졌다. 라틴아메리카에 그다지 관심은 없지만 이런 사안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는 우리 언론도 좌파 정권의 실패를 부각하는 분석을 내놓았다. 칠레의 새 헌법안은 정말 지나치게 급진적이었을까? 헌법안을 부결시키자마자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시민들의 절대다수인 76%가 개헌을 여전히 요구하는 현실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칠레의 신헌법 제정 절차를 법 개정이 아니라 사회 변혁의 시도로 읽는다면 답을 구할 수 있을 듯하다.

다음 글에서는 부결된 개헌안의 내용을 살펴보고, 개헌안 부결 이후 칠레 사회의 대응을 살펴보고자 한다. 무려 3회에 걸쳐 칠레의 개헌 노력을 살펴보는 것이 다소 지루한 일일 수 있으나, 헌법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극복하려는 칠레 사회의 실험은 너무나 중요하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 또한 지나칠 수 없으니 인내심을 갖고 살펴볼 이유는 충분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