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8월 22일, 세월호 유가족 유민아빠가 단식 40일만에 입원하셨고, 가족들은 청와대 근처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길거리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유족들이 원하는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내 아들, 딸이 죽은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것이지요. “오로지 진상규명!”을 외치는 유족들의 싸움은 진실의힘을 만든 고문생존자들이 걸어온 길과 닮아있습니다.
고되고 힘들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진실은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는 걸 우리는 믿습니다.
그 시간 진실의힘에서는 아주 작은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강기훈(기타)과 손인달(비올라, 바이올린), 정현아(플룻), 김레베카(노래)가 지난 4월 17일 첫 연주회 이후 두 번째 여는 음악회였지요.
지난 2월 열린 재심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아낸 강기훈씨. 23년동안 자신을 옥죄었던 ‘유서대필’이라는 너울을 벗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검찰의 항고로 완전한 무죄를 받기까지 시간이 더 길어지고 있습니다만... 강기훈씨는 클래식 기타와 함께 기나긴 고통의 시간을 견뎌왔습니다. 지난 4월 17일의 ‘아주 특별한 음악회’는 고난의 시간을 함께 건너온 친구들에게 그 클래식 기타 연주를 들려주고 싶어서 강기훈씨가 준비한 자리였습니다.
“제 선후배, 가족들의 삶은 하루도 ‘유서대필’ 사건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죽어서도 명예롭지 못한 망자에 대한 부채감, 하루 한 순간도 용납할 수 없는 세월을 보내고 있는 저에 대한 연민, 처절하고 지옥 같았던 시간의 기억을 공유하는 것, 이 모든 게 많은 사람들의 삶을 뒤틀어 놓았습니다.” (최후진술)
넉달만에 열린 두 번째 음악회. 강기훈씨는 사람들이 들어서 편하고 알기 쉬운 곡을 선곡했다고 하는군요. 연주를 맡은 네 사람은 매주 월요일마다 진실의힘 사무실에 모여 악보를 읽고 호흡을 맞춰왔습니다.
오후가 되니 원서동 사무실이 북적거립니다. 정지현님이 준비해온 월남쌈 덕분에 식탁이 무척 풍요롭습니다. 선생님들은 젊은 후원회원들 덕분에 이렇게 둘러앉아 얘기 나눌 수 있어서 무척 고맙다고들 인사를 건넵니다. 따뜻하고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음악여행 길잡이 이채훈 피디께서 바이올린의 귀재, 파가니니가 만든 바이올린 소나타 6번 E단조를 아주 재미있게 해설합니다. 태진아의 <미안미안해> 첫 선율과 드라마 <모래시계> 혜린의 테마를 각각 들려주면서 바이올린의 귀재가 만든 소나타와 비교해보라고 합니다. 강기훈씨의 기타 반주로 손인달님이 바이올린을 연주합니다. 바로 앞에서 연주자의 호흡을 느끼며 감상하니 파가니니의 애절한 선율이 마음에 바로 꽂힙니다. 어렵다고만 생각했던 파가니니의 바이올린 소나타 6번, 이제는 절대로 잊지 못할 곡이 될 것 같군요!
다음 곡은 가브리엘 포레의 ‘파반느’. ‘영화 속 클래식 명곡’ 제하의 책이나 음반을 보면, 포레의 파반느가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브래드 피트, 케이트 Blanchet 주연, 데이비드 핀처 감독)에 나온다고 버젓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이채훈 피디, <소비자 고발> 이X돈 피디처럼 “제가 직접 확인해보겠습니다!” 하더니, 이 영화에 파반느는 등장하지 않는다고 결론짓네요. 다만, 비슷한 분위기의 음악이 흘러서 착각하기 좋겠다는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손인달, 정현아, 강기훈씨가 무대로 등장합니다. 황홀한 플루트 소리가 꿈결처럼 흐르더니 곧이어 비올라와 기타의 선율이 꽃받침이 되어 신비스러움을 더해줍니다. 경청하는 관객들은 어디서 들어본 음악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군요. 이 무대에는 고등학교 교복을 입은 앳된 학생이 함께 등장했습니다. 기타치는 아버지의 악보를 넘겨주기 위해서 오늘 참석했다는 강기훈씨 딸입니다. 무거운 호른 가방을 메고 씩씩하게 등장, 우리 모두를 설레게 한 똑똑한 딸입니다. 딸은 아버지의 기타소리가 흐트러질 때면 아주 간절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봅니다. 때로는 악보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기도 합니다. 기타에서 고운 소리가 울리면 입가에 웃음이 번져납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고 아름답던지요!
오늘의 마지막 곡, 20세기 브라질의 거장 빌라 로보스의 음악입니다. 처음 들어본 이름이지만, 길잡이의 쉽고 재미있는 설명으로 또 한명의 브라질 사람 빌라로보스를 배워봅니다. “나는 민요를 사용하지 않는다. 나 자신이 민요다.” 브라질 민속음악과 유럽 클래식을 결합시킨 분이라고 합니다. 오늘 연주곡은 그의 대표작 <브라질 풍의 바흐> 5번입니다. 브라질 토속음악의 요소를 바흐의 음악양식에 담은 9개의 모음곡 중 가장 유명한 5번은 소프라노와 8대의 첼로를 위한 곡이랍니다.
김레베카님은 “4월 17일 탱고스페셜 때, 세월호 무사귀환을 빌며 공연을 시작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처럼 큰 참사로 이어질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는 분들과 특별법 제정을 위해 싸우고 있는 분들게 이 곡을 바칩니다”고 인사한 뒤 마음을 담아서 근사하게 노래를 시작합니다. 모두 똑같은 마음을 곡에 실어봅니다. 끝닿을 데 없이 곱게 뻗어나가는 김레베카의 음성이 더 멀리 멀리 울려 퍼지기를...
끝나지 않는 박수소리에 강기훈씨가 기타를 매고 다시 무대로 나옵니다. 세 차례의 앵콜과 자연스레 이어진 뒷풀이에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뒷얘기가 나오나 했더니 아예 소프라노 김레베카님과 알토 이보경 기자님이 일어서서 모차르트의 <아베 베룸 코르푸스>를 함께 부르는군요. 아픔으로 가득한 세상이지만 공감과 소통이 넘쳐나는 따뜻한 음악회는 그렇게 저물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