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데이-맘풀이 01 <이준호> 선생님

●2010년 11월 23일(화) 오후7시

●진행 문요한

2010년 11월 23일 저녁. 연건동 진실의힘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진도 박연옥 선생이 손수 만들어온 유과/과자, 김기숙(이준호) 선생이 한아름 사 오신 빵, 귤이 풍성하게 놓은 상은 그대로 기쁘게 차린 돌상이 됩니다. 바로 "마이데이" 첫번째 날, 주인공은 이준호.

전용성 화백이 그린 <들고 있으면 아프고, 내려놓으면 마음이 아프다>는 그림을 배경으로 문요한 선생이 문을 열고 징검다리를 놓으니 이준호 선생님이 마음을 열어보입니다. 호젓한 산길을 걸어가는 느낌입니다. 수십년 지나도 여전한 분노, 치미는 모멸감, 생생한 두려움... 하나하나 펼쳐 보입니다. 아주 작은 목소리로 모여앉은 사람들을 때로는 한숨 짓게, 때로는 눈물짓게, 때로는 크게 웃게도 만드시더군요. 2시간 동안 이준호 선생님 혼자 말씀하시고 그저 듣기만 하는데도 모두들 내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집중과 공감을 보이셨습니다.

첫 마이데이-맘풀이를 끝낸 선생님들의 소감은 "우리 모두 즐겁고 행복해야 한다, 그럴러면 무조건 자주 봅시다" 는 것입니다. 우리 선생님들이 하루씩 "오늘의 주인공"이 되어 그에 걸맞는 대접과 박수와 격려를 받는 시간, 마이데이-맘풀이는 매달 마지막주 화요일 진행됩니다. 늘 함께 해주세요.

우리끼리 안아주고 같이 기뻐하고 우리가 참 대단하다

분노, 내가 삭이지 못해

밤에 주로 많이 그러는데 자꾸만 나도 모르게 욕을 해요. 벌써 25년 넘었는데 욕이 나와. 남들이 들으면 미쳤다 하지. 운전하다가도 욕이 괜히 나와. 경찰만 나오면 기분 나쁘고. 아주 기분 나빠요. 개야도 정삼근 선생님이 감옥 나와서 밤에 칼을 갈았다고 하는데 똑같은 맘이지. 나는 어디 소리 안나는 총 없나. 그거 찾아가지고 정말 쏘고 싶은 맘.

그 당시에 내가 머리가 길었는데 수사관이 머리칼을 맨날 잡아당겨. 아유. 그때 머리도 엄청 빠졌을 것 같애. 잡아당기면서 여기(옆구리) 치고 그러는데 그 사람들은 운동하는 사람들이라 조금만 쳐도 아파요. 선생님들 주로 전기고문 당했다는데 저는 매를 많이 맞았어요. 무슨 개처럼. 내 어릴 때 쥐를 잡아서 얼른 안 죽이고 가지고 놀잖아요? 붙들어 매 가지고. 그래서 내가 그랬어요. 어릴 때 쥐를 가지고 놀아서 쥐 같은 인생이 됐구나 생각했어요.

감옥소에 갔는데 교도관이 침을 탁 뱉는 거야. 아, 빨갱이들. 재수가 없게... 빨갱이 만났다고 침을 뱉더라고.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가 없어. 아무 소리 않고, 가만 있었지. 지금까지 보면 감옥에서의 고통이 쌓여가지고 긴 시간을 분노, 내가 삭이지 못해. 내가 믿음밖에 가질 게 없더라니까. 지푸라기 잡을 데 없잖아요. 온전히 믿음 하나 가지고 구약을 본다든가 하면 나에 대한 말을 하는 것 같애. 내가 너의 눈물을 병에 담는구나. 나를 위로해 주는 사람 하나 없잖아요. 아침에 안 일어났으면 좋겠는 거예요. 내가, 몸이 일어나기 싫어. 그러다가도 또 집사람 생각이 나는거야. 애들 데리고 열심히 사는데....

지금까지도 고치기 힘든 거는 욕을 나도 모르게 큰 소리로 하는 거. 괜히. 누가 보면 미친 사람 같애요. 은주 엄마가 지금 누구 보고 욕하냐고 하는데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요. 분노죠. 욕하고 나면 시원해지니까. 어디 가다가도 괜히 대상이 없는데 개새끼들! 하기도 하고 쌍욕을 하고. 진짜 욕을 한다니까. 내가 보안관찰 받을 때 경찰들이 오면 한바탕씩 하는데 그래야지 마음이 좀 풀리니까. 내가 2005년까지 보안관찰을 받았는데 아주 기분 나빠요. 일할 때, 내가 타일 일할 때는 전화가 와요. 어디야? 아휴.... 정신적으로 이게 참 내가 60이 넘었는데 고치기 힘든 병이라는 걸 깨달아요. 그거 안하면 더 힘드니까 내뱉는 거야.

두 사람도 아니고 혼자, 혼자 갇혀있다 보니까 사람이 동물도 혼자 가둬두면 바보 될 것 같애. 혼자 가둬두니까 대상이 없다보니까 약간 허해진 거라 생각해요. 옛날에는 안 그랬는데. 내가 회사 생활할 때는 생전 큰소리 한번 안치고 가정에서도 그랬고. 대전교도소에서 혼자 꼬박 7년을 살았잖아요. 그 세월이 사람을 바꿔놓는 거죠. 가둬놔 가지고. 나오고 나서 집사람이 그러더라고. 사람 눈빛이 달라졌다고 그러더라고. 나는 모르는데.

이, 억눌렸던 게, 죽어야 없어지나

내가 서울 교도소에 있는데 누군지 모르는데 민주인사라고 하더라고. 이 사람이 나하고 선을 긋더라고. 같은 보안법인데 픽픽거리더라니까. 자기는 노동운동하다 들어왔대. 같은 보안법인데도 이렇게 차별이 되는구나. 대전 갔는데 그런 사람이 또 있더라고. 그때 노동운동하던 사람들은 같은 보안법이라도 아주 선을 긋더라고. 그래서 난 노동운동 했던 사람을 다시 봐요. 그 사람은 내가 어떻게 들어왔는지 모르잖아요. 그런데 나보고 잘못을 압니까? 그러더라고. 첨에는 무슨 뜻인지 모르겠더라고. 진짜 간첩으로 본 거야. 걔는 나랑 같이 목욕을 하는 게, 나랑 같이 있는 게 기분 나쁜 거야. 어떻게 들어왔습니까? 했더니, 민주화, 노동운동 하다 들어왔다 하더라고. 그 다음부터는 안 물어봤어요. 그때부터는 보안법도 두 가지가 있더라고. 들어와도 저같이 들어와야지 나처럼 들어오면 안 된다는 거야. 그래서 뭐 했다 그러면 아주 기분 나빠. 정치가들도 그렇지만 한편으로 기분 나빠요. 나는 불신이 많아요.

그때만 해도 민주화실천가족협의회 했지만 저하고 거리가 먼 거로 생각했어요. ‘민주’자가 붙었잖아요. 그래서 거리가 멀다 그런 생각을 했기 때문에 솔직한 얘기로 쳐다볼 생각도 안했어요. ‘민주’자가 붙었기 때문에 항상 노동운동하던 얼굴이 생각나서. ‘민주’라는 말만 들어가도 기분 나쁘고 한편으로 아이 뭐, 저 사람들 말은 그렇게 해도 우리같은 사람하고는 거리가 멀다.

긴 세월 동안 이, 억눌렸던 게, 죽어야 없어지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요. 선생님들도 병들을 다 가지고 있을 거예요. 우리가 억압에서 해방됐지만 정신적인 거는 해방이 안 돼요. 치유가 참...... 생활하다 보면 나타나니까. 순간순간 내가 이거 하지 말아야지 하는데도 나오잖아요. 욕부터 나오는 걸 어떻게 해? 어떨 때는 나 자신도 내가 미친 게 아닌가... 경찰을 보거나 경찰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때 기억이 나. 잠재적으로 지워지지 않는 거지. 속으로 미워하는 거 이거 죽어야 없어지나 이런 생각이 들고. 치료가 안 되는 병이구나. 그런 생각을 해요.

내가 어떻게 이런 나라에 태어났나

저는 비전향수니까 바깥을 못 나가잖아요. 한 평도 안 되는 곳에 7년을 살았다고 생각해보세요. 접견이나 와야 나가죠. 갇혀있다 보니까 개도 내놓으면 문다고 사람이 변하는 거죠. 항상 분노 밖에 없고. 내가 뭐 힘은 없지만 마음 속으로는 다 쳐죽이고 싶고. 진짜예요. 소리 안 나는 총이 있으면 돌아가면서 다 죽이고 싶고. 아주 그럴 맘이 있더라고요. 그건 못 지워요. 왜냐면 청춘을 그렇게……

감옥에서 제가 사실 어머니 때문에 병들고 아유, 어머니 때문에 정말. 여기서 대전 교도소 내려갈 때 어머니가 내 앞에 가는데 서울서부터 내릴 때까지 우시는 거예요. 뒤에 있는 날 쳐다보면서. 야, 참 힘들더라고요. 홀어머니에 외아들이 신세가 참… 국가도 밉고 다 밉더라고요. 내가 어떻게 이런 나라에 태어났나, 애들 만큼은 어떻게 해서라도 외국에 보내야겠다, 그 맘 가지고 살았어요. 그 생각 외에는 없었어요.

감옥에 있을 때는 무너진 갱 안에 있는 거랑 똑같죠. 첫째 힘든 게 비웃장거리는 게 아주 힘들어요. 교도관 하나하나가 비웃장 거리지. 대전교도소로 이송 가서 고무신짝으로 물 떠먹었다고 얘기했죠? 보안법은 죽어도 괜찮은 검불락지더라고요. 교도관한테 목이 탄다고 했더니 “참아 내일 먹어”, 목이 타는데 그래요. 그러니까 개만도 못한 거지. 보안법은 뭐 하나 꺽어져도 아무렇지 않단 얘기죠. 그때 고문신짝으로 그 물을 먹으면서 내가 먹으면서, 아, 참, 변기도 더럽잖아요. 그 물을 먹으면서. 내가.... 아! 그러니 내가 세상을 살아가겠어요?

저는 그래요. 이 사회의 일원이라고 생각하고 살지 않아요. 왜냐면 지난번에 경찰이 작성한 이력서 떼어보니까 그대로 있더라는 얘기예요. 무죄 받았는데도 간첩이라고. 세상이 그렇더라고요. 작년에 무죄받았는데 경찰서류는 그대로 있어요. 넌 무죄 받아도 우린 아니다, 저희들은 아직도 간첩이라고 인정하고 있는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무죄 받아도 당연히 해주고 싶어서 해 준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니까 요새 검찰이 계속 항소하잖아요. 그것도 그런 거 아닙니까. 어쩔 수 없이 아니다 했을 뿐이라는 생각도 들고.

우리도 편이 있네!

우리가 같이 모이면 고생한 걸 얘기했잖아요. 바깥에서는 얘기할 데가 없잖아요. 저도 교회 생활하지만 얘기 안해요. 사람들은 그런 중병을 안 앓아봤으니까. 감정이 없어요. 아파보지 않은 사람들이 우리 생활한 걸 알겠어요? 그래서 차라리 얘기 않는 것이 값진 삶이다 해서 얘기 안해요. 우리가 다 고생을 했기 때문에 같이 풀어놓는 것이 치유가 되더라고요. 대전 국립대학 갔다온 얘기, 맘 편하게 어디 가서 할 데가 없어요. 다 들이박고 싶은 걸. 더 오히려 병이 드는 거예요. 하고 싶은 걸 못하니까. 우리는 같이 폭발을 하잖아요. 새끼들, 하면서 같이 모일 때 욕도 하고 그러니까 시원해지죠. 그런데 딴 데는 못하니까 참아야하고. 들이박고 싶을 때 못하니 아주 괴로워요. 나도 모르게 니까짓 것들이 뭘 아냐고 하고 싶은데 못하고. 선생님들하고 같이 계실 때는 욕도 하고.

우리 같은 모임이 없잖아요. 우리가 잘 모였다는 생각도 들고. 저는 대전에 갇혀있을 때 고통이 아주 힘들었고 너무나 정말, 뭐랄까 살기가 생기더라고요. 뭐라고 할까, 칼이 갈려 있다는, 마음 속에 갈아지는 거예요. 매일 매일이 갈아지는 거예요. 그래도 믿음 하나로 사는 거죠. 그나마 없었으면 무슨 일이 있었을지 모르겠어요. 선생님들하고 같이, 물론 연세가 들었고 나도 나이가 먹었는데, 한 번씩 모이면서 같이 웃고.

대전교도소 있을 때 북한이 댐 만들었다고 했을 때, 제일 먼저 우릴 죽인다는 거야. 열쇠도 없고 나갈 수가 없으니까, 그냥 죽는 거지. 그냥 담담해지더라고요. 아 죽는구나. 여기서 죽는구나, 그랬죠.

정치적으로 우리들이 격려를 받잖아요. 좋은 분들, 우리를 도와주는 분이 바깥에 있다는 것이 그게 그렇게 큰일이에요. 우리도 편이 있네! 우리도 편이 있다는 걸. 빨갱이라고 침뱉는 사람이 없나, 공산주의자가 성경책을 보냐고 하질 않나, 교회사는 맨날 전향서나 받으러 다니고 경찰은 집에 와서도... 친척들 외면하지. 우리도 편이 있네! 아, 우리도 편이 있구나. 먼 산 바라보는 거 같애. 편이 있다는 걸 두고. 다시 태어나는 것 같더라니까. 우릴 도와주는 사람이 다 있다니. 우리도 편이 있다는 게.

요즘은 빽이 있다는 게 힘이 되요. 나도 빽이 있다. 예를 들어서 경찰이 우리집에 왔다그래요. 그래도 무섭지 않아요. 빽이 있다는 게, 크더라고요. 맘이 틀리더라니깐. 나를 지금 누가 잡아갔다 해도 빽이 있잖아요. 그래서 빽을 위해 이러저러하게 하나보다. 든든한 힘이 되죠. 그거 없으면 무서울 거 아녀요? 신앙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건 보이지 않는 거고 믿음은 날마다 새로 이거는 현실적으로 내가 잡혀갔다, 나를 도와주는 분이 곁에 있다.

선생님들도 돌이켜보면 울화통 터지죠. 가정이 파괴된 선생님들도 계시고. 좀 참아주면 안 되겠나, 내가 화가 나더라고. 가족한테 그런 대우를 받으면 비참하죠. 선생님들 가족 보면 나도 화가 나. 아, 그거... 분노가 터지더라고. 고생한 것도 정말 분통 터지는데 가족까지 이러면 참 힘들더라고. 선생님들 사시는 것 보면 우리가 참 대단하다, 이런 걸 느껴요. 무죄까지 받고 선생님들 연세 많으신 분들 청년같이 사시잖아요. 내가 보면 초월한 삶을 사시는 거 같애요, 이번에 칠레 광부들도 그런 삶을 살 거 같애요.

이렇게 모이는 것이 병을 고치는 것이다

빨갱이들은 제일 먼저 죽인다는데 항상 죽은 것처럼 사는 거 아니예요? 우리가 이렇게 모이는 것이 병을 고치는 거다. 어디가서 우리가 욕도 해보고 웃고 그러겠어요. 뭐 어디 가서 웃을 일이 없어요. 교회 나가기도 하지만 웃을 일이 없어요. 내가 고생했던 얘기 할 것도 아니고 교회에서는 내 믿음 외에는 얘기 안하죠. 그래도 선생님들하고 같이 믿음은 달라도 같은 역사를 지닌 사람들, 큰 역사를 지닌 것 같애요. 저나 선생님들 다 똑같죠. 분통 터지는 걸 웃고 사는 거지요. 옛날 돌이켜보면 못 살아요. 어디서 돌려받겠습니까?

집사람한테 못한 얘기요? 항상 말하기가 힘든데 집사람 보면 그래요. 어떨 때는 애들도 그렇지만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어요. 애들한테도 참 미안하고. 재작년에 큰아이가 결혼 상대자로 교회 안에서 소개받았는데, 아빠 뭐하냐 자꾸 물으니까 큰 애가 그냥 끝내버렸어요. 그 말을 듣고 내가 아...... 애들이 결혼을 서두르지 않는데 다 내 죄다 하고. 열심히 살아주길 바라는 거지요.

아내가 있기 때문에 내가 지금까지 있는 거고 만약 아내가 없었다면 어떤 선생님들보다 먼저 제가 허물어졌을 것 같애요. 오히려 제가 먼저. 아내가 지켜줬기 때문에 제가 서 있을 수 있는 거고. 아까도 얘기 했지만 살기가 많이 풀어졌는데 아직 남았죠. 집사람이 밝게 사니까 나도 맘이 편하고.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편이라고 했잖아요. 도와주니까 충분하죠. 힘이 다 원천이 있잖아요. 힘이 어디서부터 왔느냐 도와주는 분이 있기 때문에, 내 편이 있기 때문에 힘이 있기 때문에..... 몰랐던 것이 하나씩.

선생님들도 청춘을 다 뺏겨잖아요. 남은 날까지 같이 어울리고 살자. 진실의힘이 있기 때문에 계속 나아갈 거 아녀요? 참 잘 생각했다. 이것도 없이 그냥 무죄 받았으면 어쩔 뻔 했나 싶어요. 예를 들어서 무죄 받아서 그냥 집안에 있었으면 뭘 하겠어요? 오히려 병이 생겼을 거예요. 무죄받아서 우리끼리 안아주고 같이 기뻐하고 우리가 참 대단하다, 꿋꿋하게 이렇게. 전 그래요. 한 번씩 모이면서 서로 알고 많이 웃고. 우리가 언제 웃어봤어요? 많이 울어봤지. 웃어보지는 않았잖아요? 자주 웃고 웃어도 기쁜 웃음을 가지고 울어도 기쁘게 울고. 남은 게 그거 밖에 없더라고요. 그렇지 않으면 억울할 것 같애.

*진실의힘 소식지 제3호(2010.11.5. 발행) 게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