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요한 : 마이데이 때 선생님들께서 힘들었던 고통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는데,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단어가 “산산조각”이라는 표현입니다. 삶이, 관계가, 내 마음이 산산조각이 나서 어찌할 수 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셨지요. 오늘은 그 시간의 기억을 나눌 텐데요, 치유라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고통을 다시 경험하는 것인데, 서로 지지해주는 관계 안에서 재경험할 때 그 간격이 조금씩 메워진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많은 분들이 오셨는데, 관객이 아니라 다같이 치유자가 되는 경험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선생님의 용기있는 얘기를 듣게 될 때, 내 안에서 아직 치유되지 않는 상처들이 같이 건드려지는 느낌을 받으실 것이고요, 그런 정서적인 공명이 이 자리에서 많이 일어나게 됩니다.
김태룡 : 이렇게 많이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동안 생각이 많이 가라앉아 있어서 이 자리에 오기 힘들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제 아픔을 씻어내고 살아갈 힘을 얻었습니다. 진실의힘이 많은 도움을 주셨는데요, 항상 이 안에서 함께 하고, 그동안 아팠던 이야기들을 나누면서 힘을 얻고 새롭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도 가져보려고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문요한 : 오늘은 어떤 마음에서 나오셨는지 말씀해줄 수 있으세요?
김태룡 : 세월이 흘러 조금씩 마음에 문이 열리나 했습니다. 어머니하고 누님이 작년 11월 18일 재심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고, 저도 춘천지방법원에 재심을 신청했는데, 2월 18일에 재심개시결정이 나서 여러분 앞에 설 용기가 생겼습니다.
문요한 : 작년에 혈액암 판정을 받으셨잖아요. 몸 상태는 좀 어떠신지 궁금하네요.
김태룡 : 생활이 어려웠는데 설상가상으로 작년 7월 임파선 종양이라는 혈액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수술을 하고 항암치료를 했는데, 간이 나빠졌어요. 너무 힘들어서 좌절도 하고 괴로워했습니다. 치료비가 굉장히 많이 나왔어요. 여기저기서 조금씩 도와주시고, 진실의힘에서 나머지 치료비를 다 도와주셔서 많은 도움이 됐기 때문에 이 자리를 빌어서 감사드리고,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문요한 : 선생님께서 2008년 봉은사 고문치유모임 집단상담 2기 때 참석을 하셨는데 그 때하고 지금을 비교해보면 어떠신가요?
김태룡 : 감옥에 있다가 나와 가지고 부모 형제간,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고통을 당했는지 한 마디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너무 참혹한 고통을 남한테 넘기고 싶지 않았어요. 출소해 가지고 살아보려고 해도 힘도 없고. 그런데 마침 고문치유모임이 시작된다고 송소연 이사님이 여기 나와서 이야기해보면 어떻겠느냐 해요. 나와 같이 고통을 받던 동지들이 다 모이는 곳이니까 이야기 나누다 보면 마음이 열리고, 지독한 고통도 좀 지워지지 않을까 참석했어요. 다행히 참 좋은 느낌으로 끝났습니다.
문요한 : 치유모임 때 이야기를 하고 또 오늘 이야기를 하시는데 여전히 많이 힘드신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김태룡 : 치유모임을 할 때도 내 마음을 다 열 수가 없었고, 지금도 여러분한테 할 말을 다 할 수가 없습니다. 고통 속에서 나와서 생활이 안정 되면 그래도 용기를 갖고 활동을 하겠는데 지금 굉장히 힘듭니다. 나이도 먹고 몸도 병에 걸리고 하니까 더욱 좌절되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정말 나지 않았습니다.
문요한 : 혹시 다른 사람 앞에서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불편하지는 않으셨나요? 안 좋은 느낌이신 것은 아닌지요?
김태룡 : 지금도 망설여지는데, 저는 북에서 남파된 외당숙을 만났습니다. 내가 간첩을 만났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마어마한 죽을 죄를 지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세월이 흐르다보니, 얼굴 한 번 본 것으로 이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 너무 억울한 것 같아요. 참혹하게 고문해서 안 한 것을 전부 했다고 만들어내고 반국가단체를 만들어서 국가를 뒤집으려고 계획했다고 자백하라고 해서 지독한 고문 속에서 다 만들어냈어요. 어디서 총을 뺏고 무기를 탈취하고 어디 초소를 때려 부시려 했다고 시나리오를 쓰는 거예요. 안 쓰면 두드려 패고. 도장 안 찍는다고 두드려 패고. 그래서 나중에는 포기를 했죠.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그냥 고문이나 덜 당할까 해서 해달라는 대로 다 할 테니까 제발 고문만 하지마라. 애원을 했어요. 그 때 외당숙을 본 것이 정말 무겁게 나를 억누르고 있었어요. 일반 시민들이 볼 때 누가 간첩을 만났다고 그러면 엄청나게 무서울 것 같아요. 그런 나를 여러분들이 이해해주고 용서해줄 수 있는지 내가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분이 같이 공감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지 그런 의문이 많이 들어서 차마 말을 못했어요. 이제는 내가 그러지 않았다는 것을, 친척이 이북에서 왔을 때 내가 고등학교 1학년이었으니까, 어른들 밑에서 무얼 스스로 할 수 있었겠어요. 신고하면 가족들 다 죽는다는 엄명을 거역할 수가 없었어요. 내가 간첩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 받고 싶기도 하고 그래서 이런 자리에 서지 않았나 싶습니다.
문요한 : 아까 이야기하실 때 “용서”라는 단어를 왜 쓰셨나 했는데, 그런 마음이 있으셨군요.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신가요?
김태룡 : 용서라는 단어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난 정말 간첩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고 그것을 이해해주십사 하는 것이 용서를 비는 마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문요한 : 이해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군요. 치유모임에 참석하시면서 다른 선생님들과 무언가 교감을 나누고 고통이 덜어지는 느낌도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나는 다르다는 느낌도 같이 가지셨겠네요?
김태룡 : 나는 좀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있어서 조심스럽긴 한데, 이제는 선생님들이 절 많이 이해해주시고, 또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고 있고 그래서 지금은 의지가 많이 되고 그렇습니다.
문요한 :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내가 다른 선생님들과 다르다, 나를 좋지 않게 볼 수도 있다는 느낌이 있었던 것 같네요.
김태룡 : 절 많이 이해해주시시만,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는 이북에서 내려온 외당숙을 만난 것 자체가 배척을 받지 않을까. 그렇게 믿지 않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그 생각이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아직 다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문요한 : 김태룡 선생님께서 다른 분들과 다르다는 느낌 때문에 약간의 거리감이나 염려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부분에 대해서 누가 이야기 좀 해주실까요?
진창식 : 김태룡은 제 조카뻘이고, 저는 삼촌 되는데요. 치유모임이나 마이데이에 먼저 참여한 사람이 조카고, 조카로 인해서 나도 참여하게 되었어요. 저는 마이데이 한 번 하고 나니까 내 마음이, 속이 아주 풀렸어요. 가족에게도 하지 못했던 말들, 진실을 말하고 나니까 마음이 후련해지고 아주 좋았는데, 오늘 조카를 보니까 아직도 그런 마음이 있네요. 동료들에게 용서를 받고 싶다고 하는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우리의 마음을 더 잘 아시는 분들인데, 그런데도 마음에 짐을 지고 있는 것 같네요. 그런 것이 내가 보기에 안타깝습니다.
임봉택 : 내 마음의 병은 내 자신이 어루만져야지 나이진다, 그렇게 생각해요. 나도 그동안 말 한마디 못하고 살았지만, 우리 진실의힘, 이 동기들을 만나고서는 꺼릴 것이 없었습니다. 선생님, 우리들 다 그렇게 살아왔습니다. 자신감 가지세요. 부디 평화롭게 생각하시고 마음가짐을 잘하시고 그래야 병마를 이기실 수 있습니다. 고생하셨으니까 조금이라도 더 살으야할 거 아닙니까? 선생님 부탁합니다.
김태룡 : 용서를 해달라는 말이 내가 죄를 용서를 해달라는 말 보다는 좀 사랑하고, 이해받고 함께하고, 그런 마음을 같이 해달라는 것이지, 죄를 용서해달라는 건 아니니까 그렇게 이해해주셨으면 그 말이 맞아요. 함께 가고 싶으니까 나도 함께 하게 해주십시요. 라고 하는 말입니다. 오늘 마이데이 이 자리가 여러분들이 함께 공감하고 그래야 하는데, 혹시 제가 부족함이 많아서 그런 공감을 얻지 못하지 않았나 좀 걱정스럽습니다. 저도 있는 그대로 제 모습을 보여드렸는데 많이 이해해 주셔서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부터는 내가 힘이 부쩍 부쩍 났으면 좋겠습니다. 격려 좀 해 주십시오....
*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지면 관계상 생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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