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소식이 반갑게 들려오던 날, 채현국 선생님의 강연이 열린 진실의힘 사무실이 즐겁게 붐빕니다.

채현국 선생님은 2014년 한겨레 이진순 열림 인터뷰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를 통해 큰 화제가 되었습니다. 한국 현대사, 격동의 세월 속에서 다양한 선택과 고민을 치열하게 한 선생님이 젊은 세대에게 건넨 이야기가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았습니다.

1988년 효암학원 이사장으로 취임한 뒤, 주로 경상남도 양산에서 지내시는 선생님의 강연을 듣기 위해 60여 명의 이들이 모였습니다. 어깨가 맞닿을 만큼 비좁게 앉았지만, 선생님을 바라보는 이들의 눈에 궁금증과 기대가 가득합니다. 조그만 체구의 선생님이 힘찬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기왕 늙은이에게 물어볼 거, 체면 보지 말고. 얼마나 드럽고, 유치하고, 비겁하게 살았는지 물어”봐 달라고 했던 선생님의 첫 마디- 여기 저기서 손이 하나, 둘 올라갑니다. 스무살 청년부터, 흰머리 지긋한 노신사까지 다양한 색깔의 질문에 대답하는 선생님의 등이 꼿꼿합니다.

군에서 얻게 된 병장이라는 직위가 준 자만감 때문에 스스로에게 실망했던 젊은이가 ‘도덕적 죄책감’에 대해 묻자, “괜히 자책하지 말고, 끝까지 가보시오. 좀팽이면 좀팽이로, 돈이 없으면 돈이 없는 대로. 스스로 깨닫지 않으면 방법이 없지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지 않아요. 스스로를 조금만 더 믿어봐요.”라는 대답.

다양한 사업, 다양한 길을 걸은 뒤 모든 것을 정리한 지금, 어째서 교육사업만큼은 오래도록 하고 계신지 묻는 질문에- 아이들과 있는 게 좋다는 대답. 입시에 지치고 공부하느라 바쁜 애들에게 헛소리로 이런 저런 얘기 묻고 듣는 게 좋다고 말씀합니다. 그래서 지금 즐거우신지 묻자, 잠깐 멈칫하는 선생님. “아까 내 소개하는 영상, 그게 슬프지 않습디까? 나는 좀 슬프더이다.” 그래도 즐겁게 산다, 최대한 즐겁게 웃으면서 사는 게 인생이지 않느냐고 말씀합니다.

비슷한 연세의 어른이 나는 선생님 같은 인생이 존재하는지 알지 못했다, 같은 시대에 이렇게 다른 삶이 있는 걸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자, 선생님은 당연하다고 말씀합니다. “어느 시대든지 첨예하게 다른 삶의 모습이 있는거지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한 적 없습니다.” 단호한 어조로 여러 인물들의 여러 인생 얘기를 들려줍니다.

선생님의 삶의 길이 평범하진 아니했기에, 가족이나 사모님이 어떻게 생각했는지, 따라줬는지에 대한 질문도 있었습니다. 선생님은 환하게 웃으면서, “내가 살면서 가장 잘 한 것 중에 하나가 내 아내와 결혼한 거예요.”라고. 모든 사업을 정리할 수 있었던 건, “나랑 함께 일하던 사람들이 같이 해줬기 때문이죠. 언제든 생각하면 늘 고맙습니다.”하고 대답합니다.


많이 걷고, 산책하고, 즐거운 이들과 어울리는 삶. 자기 자신을 조금 더 믿고, 당연히 받아 들여지는 신념이나 가치에 대한 깊은 고민의 시간을 더 가져보라는 선생님의 이야기. 2시간 남짓 되는 시간 내내 꼿꼿한 등, 우렁찬 목소리로, 선생님은 함께 앉은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바투 앉은 타인의 온기가 힘이 되던 시간- 강연을 마치는 박수소리가 별처럼 반짝입니다.

동부시장의 명물 맛나는 전과 부침개, 계동에서 만든 고소한 두부, 군산 개야도에서 편복희 선생님과 임봉택 선생님이 바닷바람, 섬햇살, 정성 가득 넣고 만드신 아삭한 김장김치가 한 상 가득 펼쳐진 뒷풀이 자리. 뽀얀 막걸리잔 마다 웃음소리, 얘기소리가 바쁩니다.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궁금한 새순이 연둣빛 치장을 서두르고, 바삐 움트기 시작합니다. 봄밤이 그렇게 무르익어 갑니다.

Photographed by 장성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