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참사 유가족들에게 보내는 작은 선물, 위로

2013년 11월 19일 화요일. 지난 초겨울, 수은주가 가장 아래로 떨어졌다는 날 아침입니다. 진실의힘 사무실은 일찍부터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합니다. 전날 저녁 진도에서 오신 박동운 이사장님 부부는 따뜻한 차를 끓이고,

박균수 감독님과 이채훈 피디님은 카메라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강용주 이사님은 사무실에 찬바람 새는 곳은 없는지 꼼꼼하게 둘러봅니다. 꿈작업을 진행할 고혜경 박사님도 일찌감치 도착, 인사를 나눕니다. 김정민 간사는 위치 물어오는 전화를 받고 상세한 안내도 모자라 건물 1층까지 마중 나갑니다. 광주트라우마센터 조희연 팀장과 김문선님은 심리검사를 하기 위해 함께 했습니다. 든든한 지원군입니다. 드디어 오늘의 손님, 용산 참사 유가족 4분과 대책위 활동가 정영신님이 도착했습니다. 아, 그렇습니다. 오늘은 진실의힘이 용산 참사 유가족을 위한 심리치유 프로그램 “꿈 작업”을 시작하는 날입니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도심 한복판인 용산의 한 건물에서 시커먼 불이 타오르던 때를 기억하시나요? 4층짜리 남일당 건물 옥상에 세운 망루는, 서울시의 재개발 보상대책에 항의하는 용산 철거민들이“살기 위해”설치했습니다. 전날, 개발업체가 고용한 용역들과 경찰병력 300명이 건물을 막았습니다. 밤이 되자 물대포를 쏘기 시작했습니다. 철거민들이 망루에 오른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 협상 한 번도 없이, 바로 강제진압에 들어간 것입니다. 경찰은 컨테이너에 경찰특공대를 태워서 건물 옥상으로 진입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불길은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망루가 무너져 내렸습니다. 동트기 전 어스름, 불길은 시커멓게 타오르며 살아있는 것들을 삼키는 것 같았습니다.

이 불길 속에는“살기 위해”망루로 올라간 철거민들이 있었고, 경찰도 있었습니다.“저기 사람이 있어요!”용역과 경찰이 이중삼중으로 막아선 남일당 건물 1층에서는 가족들이 처절하게 울부짖었습니다. 설마 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철거민 5명이 숨졌고, 20명 넘는 사람이 심각한 부상을 입었습니다. 경찰 1명도 목숨을 잃었습니다.

경찰은 당시 대책위 위원장 이충연 씨 등 5명을 화염병처벌법위반,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사상혐의로 구속 기소했고, 유죄를 선고했습니다. 화재 원인이 경찰 과잉진압에 있다는 변호인측의 주장은 묵살되었고, 이충연씨 등은“자기 자신과 동료들을 죽이기 위해 불을 지르고 화염병을 던진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재판에서는 경찰의 과잉진압이 드러났지만, 책임은 모두 철거민들이 떠안았습니다.

이충연씨 등은 4년형을 선고받고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유가족들은 병원에서 시신을 지키며 1년여 싸웠습니다. 그 날 이후, 유가족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1년여의 병원 투쟁에 이어 대책위를 구성해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해 싸웠습니다. 4년형을 선고 받은 이충연씨 등은 2013년 1월에야 풀려났습니다.

오로지 진실규명을 위해 싸워온 그 세월을 이제서야 돌아보게 됩니다. 마음 깊은 곳의 상처가 여전하다는 걸 깨닫습니다. 너무나 억울한 죽음이기에 망자의 죽음을 인정할 수도 없고, 떠나보낼 수도 없습니다. 유족들의 마음을 갈갈이 찢어놓은 시신 부검, 그 또렷한 영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으니 단 하루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마음의 상처는 나날이 더 깊어져 온 것만 같습니다. 절망스러운 것은, 이 싸움의 끝이 도무지 보이질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리한 진압의 핵심 책임자인 김석기 전 서울경찰청장은 한국공항공사 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그들이 버젓이 더 높은 자리로 옮겨갈 때마다 유족들의 마음은 찢어집니다.

그래서 마련한 자리입니다. 마음 깊이 새겨진 상처를 서로 나눠 갖자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마음이 건강해야 더 잘 싸울 수 있다고 함께 손을 잡았습니다. 처음 만나는 분들도 많지만, 진실의힘에 모여 앉으니 이내‘연대의 힘’이 넘쳐납니다. 말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을 견뎌온 사람들은 눈빛만으로도 서로의 속마음을 알아보는가 봅니다. 진행을 맡은 강용주 이사가 말문을 여니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첫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전날 진도에서 올라오신 박동운 이사장님이 따뜻한 연대의 인사를 전합니다.

“4년 전 경찰이 강경진압하는 걸 텔레비전으로 봤어요. 그 때 국가한테 입은 상처를 어찌 다 말로 할 수 있겠습니까? 누구보다도 같이 고생하는 분들끼리 먼저 마음을 잘 어루만지면서 국가로부터 사죄를 받아내는 날까지 꿋꿋하게 걸어가시기를 바라며, 마음이 튼튼해야 싸울 수도 있으니 이번 모임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용산대책위 정영신씨(이충연씨 부인)는 사건 발생 당시부터 유족들과 함께 진실규명을 해온 가족 활동가답게 유족들이 겪고 있는 크고 작은 아픔을 들려줍니다.“이번 꿈작업을 통해 어머니들이 더 끈끈해지고 더 편해졌으면 합니다.”

고혜경 선생님은 작년 광주트라우마센터에서 80년 5월 시민군들과 함께 꿈작업을 했습니다. 끝없는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운 시간을 지내야 했던 시민군들은 이 과정에서 악몽을 끝냈다고 합니다. 그 꿈이 일러주는 말에 귀 기울이면서 시작된 변화입니다.

“이 사회에 아픈 사람들이 참 많아요. 이 분들이 더 움츠리고 살게 되는 말도 되지 않는 상황인데, 날것의 상처를 꺼내서 이야기 하는 것은 참 아프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꿈은 푹 삭힌 것이라 할 수 있어요. 날것의 상처가 콩이라면, 꿈은 그 콩이 푹 삭아서 만들어진 된장이라서 안전한 거죠.”

꿈이 무엇인지 콩에 비유하며 말문을 연 고혜경 선생님은 꿈의 오래된 의미를 재미있게 풀어갑니다. 꿈에 대한 미신도 많지만, 꿈이라는 것은 거대한 무의식의 일부분을 보여주는 빙산의 일각이라고 설명하십니다. 꿈이 말하는 바를 잘 이해하면 지금 내 마음이 겪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음 속의 상처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는 꿈을 기억하기도 어려우니, 꿈은 기억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스런 일이며, 어떤 꿈이든지 나를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고 합니다.  

꿈은 내 삶의‘나침반’같은 것이니, 이 세상에‘개꿈’도 없고 의미 없는 꿈도 없다고 합니다.‘악몽’이라는 꿈도, 특별히 중요하고 가치 있는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에 나의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방편이라고 합니다.“기분 나쁘겠지만 정말 중요한 거야! 잘 들여다봐” 악몽은 그렇게 말한다고 하니, 악몽일수록 더 자세히 들여다보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더듬어봐야 한다고 합니다. 꿈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꿈꾼 사람 자신뿐이랍니다. 꿈은 내면을 거짓 없이 비춰주는 거울이고, 깊은 곳의 진실을 말한다고 합니다.

고혜경 선생님은‘집단 꿈작업’을 하는데, 한 사람이 꾼 꿈에 대해,“내가 꾼 꿈이라면 이렇게 느껴진다, 이런 뜻이다”그 꿈을 가지고 대화를 나누는 것을 말합니다. 꿈은 보편의 언어로 말하기 때문에 꿈이 말하는 다양한 의미를 나누고, 그 과정에서 서로의 마음을 나누고, 상처도 감싸고 그러는 거지요. 그렇게 용산 유가족 선생님들과 꿈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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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숙 어머니가 꿈에서 만난 어머니, 단정한 옷 입고 집으로 돌아오는 남편…. 김영덕 어머니가 꿈속에서 자주 만나는 남편의 모습…. 유영숙 어머니가 만나는, 영안실에 누워있는 처참한 모습의 남편…. 그 이미지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나눠봅니다. 묵혀 두었던 감정들이 되살아나서 힘겹기도 하고, 그 때 꼭 하고 싶었던 말을 꺼내놓기도 합니다. 그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울기도 하고, 또 함께 웃어보기도 합니다. 그 동안 털어놓지 못했던 마음 속 깊은 이야기, 꿈을 매개로 6주 동안 이어갑니다.

진실을 밝히려는 유족들의 삶은 투쟁이 곧 일상이고 일상이 곧 싸움입니다.‘용산’을 말하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어디든 달려갑니다. 진실은 스스로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기에, 사람들이 모인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서 진실을 밝히라고 외칩니다. 그렇게 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김영덕 어머니는“5년 동안 내 정신으로 살아오지 않았다. 시신이 마구 훼손된 남편의 마지막 모습, 그 억울함이라도 풀어줘야 할 것 같아서 악착같이 버텼다”고 합니다. 전재숙 어머니는“단 하루도 검은 옷을 벗은 적이 없다”고 합니다. 유영숙 어머니는 “마지막으로 본 남편 시신, 하루도 머릿속에서 떠날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용산 책임자를 처벌하자고, 진실을 밝히자고 외쳐온 5년. ‘용산’을 떠나서는 존재하기 어려울 만큼 모든 일상이 ‘그때’를 중심으로 흐릅니다. 그 일상에 자긍심이 넘쳐나기도 하지만 그만큼 감당해야 할 것도 많습니다. 망자의 억울함을 푸는 일만큼이나, 내 자신의 상처를 살피는 것도 중요합니다. 오래도록 묵혀뒀던 깊은 곳의 상처가 곪아터지기 전에 도려내는 일도 미뤄둘 수 없습니다. 그 때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테지만, 내 삶이나 일상도 존중 받아야 합니다. 유족 - 누구의 아내이고, 어머니이기도 하지만, ‘나’라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지난 5년의 삶에‘나’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살아도 산 것 같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진실의힘이 마련한 자리가 유족들에게 ‘나’를 위한 자리,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고, 조금이라도 평안해지는 시간이 되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도 경험했지만, 마음이 건강해야 잘 싸울 수 있고, 버틸 수 있습니다. 진실의힘이 용산 가족들에게 작은 선물이 되고, 위로가 되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