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6년 진실의힘에서 자원봉사를 한 이후, 진실의힘 인권상 시상식에는 거의 매년 참석해 왔다. 그때마다 수상자분들을 보면서,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잔인했을 시간들을 버텨 온 것에 대한 존경심과, 삶과 투쟁을 향한 의지에 대한 감동으로 가슴이 따뜻해져 돌아오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정말 대단하신 분들을 마주하고서도, 다른 감정보다는 슬픔과 두려움이 앞섰다.
그 이유는, 올해의 수상자분들이 겪은 고통은 지금 이 땅에서 끊임없이 되풀이되고 있는 현실이고, 학생 신분을 벗어나면 곧 나에게도 닥칠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이번 진실의힘 인권상을 수상한 산업재해피해가족네트워크 <다시는>은 노동자 혹은 현장실습생으로서 산업재해 피해를 입은 분들과 그 가족들로 이루어진 공동체다. 시상식에서는 ‘반올림’ 활동으로 알려진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노동자 황유미 님의 아버지 황상기 님, 생수 제조업체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사망한 이민호 군의 아버지 이상영 님, 건설현장에서 추락사한 김태규 님의 누나 김도현 님 등이 수상소감을 밝혔다.
수상소감을 들으며 현재에도 굉장히 많은 노동자들이 산업재해로 병에 걸리고 목숨을 잃으며, 그에 대한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심지어 고등학생 신분인 현장실습생들이 혹사당하여 목숨을 잃어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수상자분들은 그러한 불의에 대항하여 국가 및 독점자본에 맞서 싸우고 계셨다. 하지만 그런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우면서도, 내가 그 입장이 되면 허무에 잠겨 모든 의욕을 잃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슬프고 무서웠고, 계속 눈물이 났다.
그러나 4·16합창단의 축가를 들으면서, 두려움 뒤에 숨겨져 있던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산업재해피해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도 사실 나와 같은 겁 많고 평범한 사람들과 아주 다른 존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그저 “평범한 주부”였다는 한 수상자 선생님의 고백처럼, 그분들도 남들과 다를 바 없는 개인으로서, 너무나 큰 상처 앞에서 끊임없이 마음의 위기를 겪어 왔을 것이다. 다만 그분들이 상상을 초월하는 강인함으로 세상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연대하여 마음의 아픔을 함께 보듬고 싸워 나갈 의지를 다졌기 때문일 터다. 산업재해피해 가족들이 다시는을 만든 것도, 세월호 유가족이 4·16 합창단을 만든 것도, 조작간첩 피해자들이 진실의힘을 만든 것도, 모두 연대의 힘을 믿고 실천하기 위함이었음을 그 자리에서 배울 수 있었다.
개인은 강하지 않고,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그러나 상처 입은 개인들이 함께 소리내기로 마음먹으면, 그들의 고통은 오히려 더 나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된다. 그러므로 나 역시, 이 시대에 만연한 위험과 그로 인한 고통이 슬프고 두렵다고 외면하기보다는, 그 아픔을 끌어안은 분들에게 존경과 지지를 표하며 함께 나아가자고 말하고 싶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 분명, 세상은 좀 더 살만한 곳이 되어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