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가던 11월 첫 번째 금요일, 진실의힘 작은 음악회가 열렸습니다. 비가 내리고 나면 가을이 더 성큼 오려고 했을까요? 색색의 우산이 은덕문화원으로 모입니다.

먼저 <진실의힘 작은 음악회>의 연주자들을 소개합니다. 여섯 명의 연주자들은 여섯 개의 시간 안의 공통분모를 찾아 오늘을 틈틈이 준비해왔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악기를 배워온 서하진씨와 이서연씨는 대학생이 된 뒤 서울대학교 오케스트라(SNUPO)에서 첼로주자, 플룻주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서연씨는 진실의힘에서 활동하고 있는 자원활동가이기도 합니다.  <진실의힘 작은 음악회>를 위해 하진씨도 멋진 첼로로 함께 하게 되었답니다. 오보에 주자인 이한솔씨를 이어서 소개해볼까요? 한솔씨는 현재 멀리 대전에서 연구실에 다니는 대학원생입니다. 카이스트 오케스트라 단원이기도 한 한솔씨는 20살때부터 오보에를 시작했습니다. 늦게 시작했지만 오보에에 대한 사랑은 참으로 뜨거웠어라! 매번 연습 때마다 아름다운 오보에 소리는 다른 연주자들을 행복하게 해주었습니다. 다음은 이번 음악회의 음악감독 정현아씨입니다. 현아씨는 벌써 진실의힘 음악여행을 세 번째 함께 하는 든든하고 반가운 음악여행의 연주자입니다. <작은 음악회>에서도 모든 곡의 편곡을 멋지게 했고, 연주자들에게 다양한 음악적 조언을 주었답니다. 은혜공동체의 커피청년 박세범씨는 클라리넷으로 음악회의 첫 곡, 일 포스티노를 더욱 풍부하게 해주었습니다. 하진, 서연, 한솔, 현아, 세범- 이 다섯 명의 청춘. 그리고 강기훈씨가 오늘 우리에게 음악을 건넵니다.

올해 5월 대법원은 강기훈씨의 재심재판에서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당연한 판결을 기다려야만 했던 24년의 시간, 1991년 이후의 시간은 강기훈씨에게, 또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까요? 강기훈씨는 재심 과정에서 “진정한 용기는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라고 얘기했습니다. 사건에 대한 사법적 판결이 마침내 종결된 지금,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이에 대한 역사적 판단과 책임을 지는 것- 그러나 강기훈씨와 1991년 젊은이들이 겪어야만 했던 시간과 고통에 책임 있는 이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습니다.

오늘 음악회는 강기훈씨와 그의 오랜 벗 기타, 그리고 서연, 한솔, 하진, 세범, 현아씨와 그들의 벗이 함께 하는 자리입니다. 여섯 명의 시간과 삶은 다양했습니다. 하진씨가 태어나기도 전인 1991년, 서연씨와 한솔씨가 걷고, 말하는 법을 배우며 세상을 만나가던 1991년, 세범씨와 현아씨가 설레는 마음으로 첫 학교, 첫 선생님, 새로운 만남을 가지며 무럭 무럭 자라던 1991년, 그리고 강기훈씨의 1991년. 오늘 이 여섯 개의 시간이 한데 모여 음악을 만듭니다. 음악회를 찾아온 약 백 여 명의 시간 또한 어깨를 바투 맞대고 한 자리에 모여 귀를 기울입니다.

<진실의힘 작은 음악회> 첫 시작을 알리는 곡은 영화 <Il Postino> OST 중 ‘Il Postino’입니다. 낡은 자전거가 지중해의 작은 섬 언덕길을 달리는 모습이 금방 그려지네요. 조국의 소식을 기다리는 파블로 네루다, 위대한 시인에게 편지를 전달하는 작은 섬의 우체부, 그들의 것인지 우리의 것인지 알 수 없는 작은 설렘이 ‘Il Postino’와 함께 시작됩니다.

이어지는 연주는 정현아씨의 피아노 독주, 드뷔시의 ‘달빛’입니다. 고요한 밤바다의 잔물결 위로 달빛이 흐릅니다. 탱고의 고요한 매력이 느껴지던 피아졸라의 ‘Oblivion’은 <작은 음악회> 막내 하진씨의 첼로와 큰 형 강기훈씨의 클래식 기타로 연주됩니다. 탱고를 잘 모르는 이들도 한 번은 들어보았을 ‘Oblivion’- 하진씨와 강기훈씨가 고개와 발 끝을 까딱거리며 탱고의 박자를 맞춰나갑니다.

다음은 오보에 한솔씨가 무대에 섭니다. 정현아씨와 함께 연주하는 바흐의 ‘Arioso’ 선율이 마치 눈에 보이는 것처럼 선명하게 이어집니다. 오보에 곡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영화 <Mission> OST 중 ‘Gabriel’s oboe’- 넬라 판타지아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지요.-를 오보에, 첼로, 피아노가 연주합니다. 영화 속에서 오보에 소리로 같은 언어를 쓰지 않는 이들이 서로에 대한 경계를 천천히 풀어가던 장면을 기억하시나요? 은덕문화원 대각전 안에 모인 관객들, 가을비가 내리던 처마 아래에서 공연을 듣던 관객들, 그리고 연주자들 마음에도 어쩌면 하나의 이야기가 흘렀을 지 모르겠습니다.

“강기훈 선생의 분노와 슬픔, 아무도 몰라주는 그 외로움을 함께 해왔던 기타라고 들었습니다. 강기훈 선생의 맑은 기타 소리에 아주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오늘 특히 감사한 일은 우리 젊은 분들이 오늘 이 자리를 함께 준비하고 만들어준 것입니다.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고맙습니다.”

진실의힘 박동운 이사장님의 인사말 다음으로 서연씨와 강기훈씨의 연주가 뒤를 잇습니다.  피아졸라의 ‘Café 1930’입니다. 바이올린, 첼로, 반도네온, 피아노 등 다양한 악기로 연주되는 곡이지만, 오늘은 플룻과 클래식 기타가 듀엣으로 연주합니다. 맑고 아름다운 플룻 소리와 잔잔하고 깊은 클래식 기타 소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때로는 같이 어우러지며 음악을 만듭니다.

오늘 <진실의힘 작은 음악회>의 마지막 곡, 영화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중 ‘Love Theme’입니다. 동네 영화관에 몰래 들어와 영화를 보는 토토에게 알프레도 아저씨는 “무엇을 해도 네가 사랑하는 일을 하라”고 말했지요. 수 십 년의 시간 동안 수 많은 일을 겪고, 성공한 영화감독이자 평범한 어른이 된 토토는 재개발을 앞두고 철거 예정인 예전 그 영화관으로 돌아옵니다. 검열에 의해 잘려나간 필름 조각을 모으곤 하던 토토를 위해 알프레도 아저씨는 그 조각조각들을 이어 붙였습니다. 30년 전 검열의 조각들은 모아놓으니 사랑이었구나, 어두운 영화관에서 어른이 된 토토가 홀로 화면을 바라보며 영화는 끝이 납니다.

오늘의 음악회는 많은 이들의 도움으로 가능했습니다. 무대에, 은덕문화원 이곳 저곳에 따뜻하고 예쁘게 그려져 있던 그림은 박다영씨의 작품입니다. 하루 꼬박 하얀 도화지 위를 다양한 색으로 채워준 다영씨의 솜씨로 <작은 연주회>가 더 아름다웠습니다. 진실의힘 자원활동가 오효정씨, 이지윤씨는 영상감독, 무대감독을 맡아 <작은 연주회>의 진행이 매끄러울 수 있도록 처음부터 끝까지 든든하게 지켰습니다. 지난 음악여행에 이어 다시 한 번 연주자들의 악보를 담당해준 강해원씨, 아빠의 연주를 맑은 얼굴로 바라보던 모습이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비 오는 금요일 밤, 은덕문화원으로 발걸음 해주신 관객 여러분이 있습니다. 대각전이 가득 차서 조금 늦게 도착한 분들은 처마 아래에서, 우산 아래에서 창문 밖으로 들리는 음악을 듣기도 했지요.

강기훈씨의 선율, 그리고 1991년 강기훈씨만큼이나 청춘의 한가운데에 있는 이들의 음악에서 모인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을까요. 그 간절한 말들이, 이야기들이 오늘 내린 비처럼 우리 모두의 가슴 속 깊이 스며들었기를 바랐습니다.

사진 장성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