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미화(평화활동가, 아카이브 평화기억 대표)
이 연구는 한 장의 포스트잇에서 시작되었다. 노란색 포스트잇에는 열 명의 이름과 생년월일, 계급, 소속 부대가 빼곡히 적혀 있었는데, 그들 모두는 같은 해 같은 국민학교(이 글에서는 그 시대에 맞춰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로 쓴다)를 다녔다. 이 동창생들에게는 남들과 다른 특별한 삶의 궤적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청년 시절 전쟁을 경험한 것이었다.
전북 익산시 금마면에 위치한 금마국민학교는 1911년 이리·익산에서 가장 먼저 문을 연 학교이다. 양정석과 동창생들은 한국전쟁이 끝난 직후인 1954년 이 학교에 들어갔다. 전후 복구 시기인 가난한 시절 학교에 다니고 1960년 초에 졸업한 금마국민학교 남자 동창생 1백여 명 중 10여 명은 월남에 갔다. 그중 대여섯은 전투병이었다. 돈을 벌러 간 친구도 있었지만 강제로 간 친구도 셋이나 있다. 누구는 영창에 가기 싫어서 누구는 더 나쁜 선택을 안 하기 위해 월남에 갔다. 전투병으로 간 친구 중엔 전쟁터에서 맹활약했으나 돌아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연도 있다. 고인이 되었거나 소식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을 빼면 둘이 남는데 한 사람은 현재 와병 중이고 나머지 한 사람은 이 연구에 함께하는 참전군인 양정석이다. 그는 69년과 71년 두 번 월남을 다녀왔다. 백마부대 전투병으로 참전한 양정석은 두 번째 월남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차례 넘겼다. 그는 고통스런 기억에 지금도 종종 악몽을 꾼다.
프로젝트를 기획한 석미화는 베트남전쟁을 중심으로 평화 활동을 하며, 그 전쟁을 다녀온 참전군인과 만나지 못한 것을 내내 밀어 둔 숙제처럼 여겼다. 가해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자리에서 참전군인과 맞닥뜨릴 때마다 그들과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 고민이 컸다. 평화란 자세히 들여다보고, 소통하고,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믿음으로 그들의 삶을 만나기 시작했다. 진상규명 활동 틈틈이 참전군인 구술활동을 하던 중, 어느 날 참전군인 양정석이 저고리 안쪽에서 꺼낸 포스트잇 한 장을 보곤 그들을 만나야 겠다고 생각했다. 국가에 동원된 월남전 참전군인의 삶에 대한 연구 ‘월남으로 간 동창생들’(익산시 금마면 금마국민학교 1960년도 졸업생 이야기를 중심으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박정희 정부 시기, 1964년부터 73년까지 8년 6개월 동안 연인원 32만여 명의 한국군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자유민주주의 수호와 경제발전이라는 국가의 기억 속에 사실상 이 전쟁은 한국 사회에 '잊힌 전쟁'으로 남아있다. 특히 20대 전후의 청년으로 '전장(戰場)'을 경험한 참전군인의 삶은 전쟁이 끝난 지 5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도록 사회적 관심을 받지 못했다. 국가는 ‘애국’이라는 이름으로 폭력의 현장에 젊은이들을 동원했지만, 전쟁이 끝난 후 ‘고통’은 개별화하였다. 이 연구는 전쟁이 끝나고 '귀국'하였으나 '귀환'하지 못한 참전군인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나선다. 폭력의 현장에서 총을 들어야 했던 그들, 가해의 자리에 섰으나 동시에 피해자로 존재하는 그들, 가해와 피해를 넘어 한 사람 한 사람을 돌아보고 역사의 당사자로서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자 한다.
월남으로 간 금마국민학교 60년도 동창생 이야기는 월남전 참전이 학교, 마을, 지역사회에서 일어난 일대 사건이었음을 인지하고, 공동체를 중심으로 월남전 파병의 기억을 살펴본다.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그들의 삶을 조명하고, 국민학교 동창생의 서사를 통해 월남전의 기억을 찾아간다. 이제껏 말로만 전해 내려왔던 참전군인의 전후 삶을 확인하고, 마을을 중심으로 한 공동체 구성원을 통해 전쟁과 폭력의 역사, 그로부터 연결된 삶을 이야기한다.
연구의 시작은 월남에 간 동창생을 찾는 것에서 출발한다. 기꺼이 그 일을 맡은 이는 고향에 오래 살고 있는 또 다른 동창생이다. 동창생의 소개로 월남 다녀온 동창을 만나는 자리엔 보통 네댓 명의 동창과 선후배가 자리한다. 여러 사람의 도움 속에 연구가 이루어 지지만 동창생을 찾기란 여전히 쉽지 않다. 그들을 만나 벌써 50년도 더 된 이야기를 듣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코로나가 발을 묶어 만남이 차일피일 미뤄지기도 다반사다. 우리는 동창생을 만나기 위해 산속 목장으로, 감자밭으로, 익산 월남 참전기념탑으로, 향교로, 금마면 일대를 동분서주한다. 70대 중반 80줄에 들어선 동창생들을 만나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참전군인에게 전쟁 경험은 단지 ‘사건’이 아니라 이후로 계속된 ‘삶’의 문제였다. 이 연구를 통해 지금까지 우리 사회가 들여다보지 못한 참전군인의 이야기에 다가간다. 그들의 전쟁 경험을 사회적 기억으로 불러오고 평화의 기회로 만들어가고자 한다. 참전군인 이야기를 통해 ‘피해’ 중심의 인권의식을 넘어 ‘폭력’의 현장이 빚어내는 근본적이고 다양한 문제를 돌아봄으로써 평화와 인권 의식이 확장될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오늘도 우리는 월남으로 간 동창생을 찾아 길을 나선다.
※ 국민학교 동창생 서사를 통해 베트남전쟁의 기억을 만나고 전쟁과 평화를 생각합니다. ‘국가에 동원된 월남전 참전군인의 삶에 대한 연구’를 응원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