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뉴스레터 30호 <무학자가 소설가를 꿈꾼 댓가, ‘국가보안법 사범’>를 읽은 임근규 선생님께서 중국 길림에서 글을 보내오셨습니다. 대전교도소에서 만난 비전향 장기수 ‘최 선생’에 관한 잊지 못할 기억을 한 줄 한 줄 써 내려 간 글입니다.

글 임근규
ⓒ게티이미지뱅크

아침 6시 어김없이 들려오는 기상나팔 소리에 눈을 뜨면 허연 성에가 덕지덕지 붙어있던 감방 천장 모서리의 섬뜩한 모습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밤새 내 코에서 뿜어져 나온 입김이 모두 천장으로 올라가 차곡차곡 얼어붙었는지, 성에가 붙어있는 정경은 을씨년스럽게 삭막했다. 혹독한 추위가 몰아닥쳤던 그해 겨울, 아침이면 어김없이 전날 밤에 받아 둔 개숫물에 살얼음이 얼었다. 

0.7평 좁은 감방은 토끼장에 비유할 만큼 좁고 답답했다. 방 넓이에 비해 천장은 3m 가까이 될 만큼 어색하게 높아서 마치 하얀색 관을 위로 반듯하게 세워 놓은 것 같은 형상이었다. 배식하러 다니는 일명 소지들(교도관의 일을 도와주는 수형자)의 발소리가 잠깐 부산하게 들릴 뿐, 사동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마저 들릴 만큼 정적에 싸여 있었다. 

온종일 냉기만 흐르는 방에 혼자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하루에 딱 한 번 바깥바람을 쐴 수 있었다. 짧은 운동 시간에 감방 바로 아래 옥 뜰에 나가 사동 사람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잠시 나누는 것이 유일하게 사람들과 접촉하는 통로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이른 아침부터 최 노인이 있는 옆방에서 숨 멎어 가는 듯 토해내는 기침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칠십이 훌쩍 넘은 나이에 옥바라지할 가족 하나 없는 남녘땅에서 30년째 징역을 살고 있는 최 노인은 정해진 형기가 없는 ‘무기수’였다. 황해도 해주가 고향인 그는 1950년대 중반까지 인민군 해군 특무 부서에서 복무했고, 1956년 남파 공작원들의 호송을 맡았다. 공작원들은 서산 앞바다에서 세찬 풍랑을 만나 배가 좌초되면서 전원 생포되었다. 그는 간첩죄로 1심에서 사형, 2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어 32년째 감옥살이를 하고 있었다. 그해 겨울부터 부쩍 악화된 중증 천식 때문에 고생하고 있었다.

감방 동료들 말에 의하면 최 노인과 비슷한 죄목으로 수감된 사람 중엔 ‘전향서’를 쓰고 가석방된 이들도 여럿 있었다. 그러나 최 노인은 교도소의 ‘사상범 전담 공작반’의 집요하고도 악랄했던 전향 공작에도 굴하지 않고, 꼿꼿하게 모진 감옥살이를 감내하고 있었다. 전향서만 쓰면 오늘이라도 당장 시설 좋은 외부 병원 진료를 받게 해주고 빠른 시일 내에 가석방도 해준다는 회유도 뿌리친 채, 의무과에서 가끔 주는 누런 알약 몇 봉지로 근근이 버티면서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숨이 멎을 것 같은 기침만 토해냈다. 

바로 옆 감방 이웃이라 그랬는지 몰라도 운동 시간만 되면 나는 최 노인과 단짝이 되어 제기를 차고, 제자리 걷기 운동을 하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선친의 연세도 최 노인보다는 훨씬 작았기 때문에 나는 그를 만나면 꼭 시골에 계신 큰아버지를 뵙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인상이 편안했고, 심성은 착하고 무던했다.

첫 만남

최 노인을 처음 만난 건 대전교도소 입감 후 첫 운동 시간이었다. 70대 중반이라는데 기나긴 감옥살이에 찌든 탓인지, 내가 보기엔 80세도 훨씬 넘어 보였다. 어떻게 그 나이에 이르기까지 감옥살이를 감내하고 있는지 몹시 궁금했다. 양쪽 가슴에 국가보안법 위반 사범을 뜻하는 빨간색 표식이 붙어있어 짐작은 가능했지만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었다.

“젊은이, 젊은이는 어쩌다 여기까지 왔소?”

자기가 옆방 주인이라는 짧은 소개와 함께 최 노인은 내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예. 전, 전, 마, 막걸리법에 걸려서 왔습니다.”

“막걸리법? 허허 그런 법도 다 있나? 막걸리를 얼마나 좋아했길래 여기까지 와? 허허.”

“예. 막걸리법이 아니고 막걸리 보안법으로 들어왔습니다.”

“막걸리 보안법이라 별 이상한 법도 다 생겼나 보구려. 허허.”

때마침 운동 시간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에 대화는 끊어졌지만, 이후 운동 시간에 마주칠 때마다 서로의 사정을 대충 알 수 있을 만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할아버지, 몸도 편찮으신데 전향서 쓰고 나가시지 그러세요? 전향서 쓰면 당장 외부 병원 진료도 받게 해주고, 가석방도 시켜 준다는데. 감옥에서 30년 이상 사셨으니 이젠 바깥세상 구경도 하고 맛있는 것도 많이 드시면서 치료도 받고 하면 좋잖아요. 전향서가 뭐라고 그렇게 버티세요? 저 같음 당장 집에만 갈 수 있게 해준다면 그까짓 전향서 100번이라도 쓰겠습니다.”

우리 큰아버지처럼 인자한 표정을 띤 최 노인이 답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다 하지 않았는가? 나도 왜 이렇게 고달픈 감방살이를 30년 넘게 고집하고 있겠는가? 다 내 목숨을 지키자고 하는 일일세. 허허.”

나는 중증 천식 환자인 최 노인의 건강을 염려한 이야기였는데, 지독하게 고통스러운 감방살이가 오히려 ‘목숨을 지키고자 하는 일’이라고 말하니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자네, 서른한 살이라 했지? 참 좋을 때일세. 내가 서른한 살 때는 중국 산서성과 하북성의 경계선에 있던 태항산맥의 팔로군 32사에서 소좌 계급장 달고 일본군과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었는데. 허허.”

“중국에도 계셨어요? 팔로군이면 국민당 군대를 대만으로 몰아내고 중국 역사상 오랜만에 대륙 통일의 꿈을 이뤘던 공산당 군대였던 걸로 아는데. 할아버지는 거기서 소좌로 근무하셨어요?”

내가 감옥에 들어오게 된 이유를 따지고 보면 그놈의 되지도 않는 ‘소설’ 때문이었다. 무식한 자가 소설 공부한답시고 유식한 자들 뒤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니다가 군 정보기관에 ‘만만한 놈’으로 찍혔고, 살얼음판 같던 1986년 11월 그들의 건수 올리기 먹잇감이 되어 ‘막걸리 법’ 위반이라는 죄목을 쓰고 감옥까지 들어왔다. 온몸에 있던 ‘소설 감각’이라는 촉수는 최 노인을 만나면서부터 염치없이 급격하게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뭔지 몰라도 좋은 소설 소재가 될 수 있겠다는 느낌이었다. 

“아니, 할아버지는 공산주의자예요? 제가 보기엔 전혀 공산주의자 같지 않아요.”

나는 웃으며 내뱉은 농담 같은 말이었는데, 최 노인은 정색하며 말했다.

“남조선 젊은이들은 공산주의자 머리에는 뿔도 나 있다 한다는데. 잘 찾아보게. 내 머리에도 뿔이 두어 개쯤 반드시 있을 걸세.”

비전향장기수. ⓒ신동필

그해 겨울의 설탕

긴 겨울이 이어지면서 최 노인의 천식은 점점 더 악화됐지만 하루 한 번 운동만큼은 빼먹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설탕 1kg를 품속에 숨겨 나와 최 노인에게 건넸다. 겨울철 몸 안에서 열을 발산할 수 있는 에너지원이 필요했던 수감자들에게 사탕, 설탕은 생명 같은 힘을 불어넣어 주는 물건이었다. 교도소에서는 동상을 막고자 매일 저녁 배식 전에 5리터짜리 물통에 80도쯤 되는 뜨거운 물을 한 통씩 넣어줬는데, 그 물에 설탕을 타먹곤 했다. 

영치금이 없어 감옥 내 구매품을 살 수 없는 장기수들에게 설탕은 너무나도 귀했다. 그들보다는 비교적 영치금이 풍족했던 나는 같은 층 사동의 장기수들과, 바로 아래층의 비전향 장기수들에게 골고루 설탕을 선물했다. 뜨거운 물에 설탕을 풀어 마시면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맛난 차의 풍미를 느낄 수 있더라는 얘기를 듣고 난 후로는, 다른 건 사주지 못해도 설탕만큼은 꼭 그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 그때부터 내 방 이불 밑에 설탕 봉지를 수북하게 쌓아뒀다가 운동 시간이면 두세 개씩 몰래 품 안에 넣고 나가 최 노인을 비롯한 다른 장기수들에게 전달해줬다. 최 노인과 나는 더욱더 친밀한 관계가 되었고, 누가 먼저였는지는 모르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전 사동에서 ‘설탕 막걸리’라는 별명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폭설이 내려 회색빛 옥사가 온통 순백색으로 뒤덮인 날이었다. 운동 시간에 만난 최 노인은 숨 가쁘게 잔기침을 내뱉으며 넋이 나간 표정으로 눈이 쌓인 먼 산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반갑다는 듯 웃어줬다.

“아침 식사는 잘했는가? 눈이 많이 내렸네. 해주도 이맘때면 폭설이 자주 내리곤 했는데...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린 날이면 우린 꼭 산토끼나 꿩을 잡으러 다녔지. 꿩이란 놈은 끝까지 따라가면 반드시 잡을 수 있어. 처음엔 멀리 날다가 점점 힘이 빠지면 고개를 눈 속에 푹 파묻고 날 잡아 잡수시우 하곤 했지. 허허.”

최 노인은 힘없이 상체를 숙인 상태로 고개만 산을 향해 돌린 채 말을 붙였다.

“어르신, 잘 주무셨어요? 어젯밤에도 기침을 심하게 하시는 것 같아서 걱정 많이 했는데... 별로 좋지 않은 거지만 양말 몇 개 챙겨 왔어요. 발이라도 따뜻하게 껴 신으시라고.”

“뭘 그런 데까지 마음을 쓰는가? 괜찮아. 사실 나야 살 만큼 살지 않았나? 우리 조부께서도 칠순을 채 못 넘기셨고 선친께서는 환갑도 못 사시고 작고하셨는데. 어쨌든 나야 75세까지 거뜬히 살지 않았나? 허허.”

“그래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사시다가 북에 계신 그리운 가족들 꼭 만나야 하지 않겠어요?”

“만난 것이나 진배없네. 어젯밤 꿈속에서 마누라랑 딸들 다 만났어. 일 년에 서너 번쯤은 그렇게 꼭 만난다네. 허허”

심하게 앓는 천식 때문인지 최 노인의 얼굴은 삐쩍 마른 대나무 줄기처럼 누렇게 변색되었고, 몸은 뼈와 가죽만이 지탱하는 듯 곳곳이 주름으로 깊이 패어 있었다. 웃을 때마다 얼굴 근육이 위, 아래로 질서 없이 씰룩거리는 모습이 못내 슬펐다.

“그나저나 예전에 ‘이렇게 힘겨운 감방살이 다 내 목숨을 지키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게 무슨 뜻입니까?”

최 노인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그러나 금세 활기가 솟구친 듯 힘주어 말했다.

“막걸리 청년, 사람은 말이야. 태어날 때부터 누구나 두 개의 생명을 가지고 태어난다네. 하나는 자연적인 생명, 그러니까 인간이 맞이할 수밖에 없는, 생로병사에 지배받을 수밖에 없는 생명을 뜻하네. 다른 하나는 자연적 생명과는 달리, 아니 그보다 더 빛나는 가치를 지닌 사회정치적 생명이 있다는 걸세.”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면서도 최 노인의 입에서는 연실 닳고 닳은 쇠끼리 마찰하는 듯한 기침이 연신 터져 나왔다.

“내가 견디기 힘든 감방살이를 해 나간 건, 다 내 목숨을 지키고자 하는 것이었다고 말했었지. 그건 내 자연적인 생명은 포기하더라도 내 정신 속에 그리고 역사 속에 영원히 살아 숨 쉴 사회정치적 목숨을 지킨다는 뜻이었어. 콜록, 콜록, 크응, 킁.”

알 것도 같고, 알 수 없을 것도 같은 최 노인의 말은 운동 시간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 소리와 함께 끊겼다. 최 노인과 나란히 감방으로 향했다. 옥 뜰에서 2층 감방 사동까지의 거리는 50m도 채 되지 않았고, 1층에서 2층까지는 서른 계단 남짓이었지만 최 노인은 혼자 힘으로 계단을 오르지 못해 내가 옆에서 부축을 해야만 했다. 우리는 해 질 무렵 양 떼들이 제 우리로 찾아 들어가듯, 제 발로 좁고 답답한 감방 안으로 들어갔다.

두 개의 생명

나는 그날 밤, 잠을 한숨도 이룰 수 없었다. 인간에게 존재하는 두 개의 생명, 최 노인은 그중 자연적 생명은 포기하더라도 사회정치적 생명은 끝끝내 지키겠다던 말이 자꾸 맴돌았다. 나는 혼란의 늪으로 빠져들었다. 옆방 최 노인의 기침 소리도 밤새도록 멎지 않았다. 

다음 날, 최 노인은 유언 한 마디 남기지 못한 채 죽었다. 시간이 지난 후, 함께 전향서 쓰기를 거부하고 감옥에서 버티던 비전향 장기수들은 감옥에서 풀려났다. 그리고 일부는 고향인 북으로 송환됐다. 나의 옆방 주인이던 ‘최상규 선생’은 대전 교도소에서 한 많던 인생을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