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문희 │ 강정마을 주민이다. 고양이 넷과 아이 둘의 식구이며, 여성이고 병역거부자다. 국가 폭력 사안에 있어 똑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가해를 드러내는 일에 관심이 있다.

“coming soon”

가덕도 신공항 소식을 들었다. 민주당 의원 138명과 ‘국민의 힘’ 부산·경남지역 의원들이 각각 특별법을 발의한 지 석 달 만의 일이다. 국회 표결 결과는 압도적 찬성이었다.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이례적으로 국토부가 가덕도 신공항건설이 안정성이나 환경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보고서를 국회에 제출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자 문재인 대통령이 가덕도를 방문해서 조속한 입법 의지를 밝혔고, 당정청이 총동원되어 법안을 통과시켰다. 가덕도 신공항 특별법은 빠른 추진을 위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면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또 기본계획 및 실시계획, 31개 법에 따른 각종 인허가 절차 간소화 등에 관한 내용도 담겼다. 전략환경영향평가 용역도 포기했다. 국토부는 신공항의 조속한 건설을 위해 용역 발주 절차를 2개월 안에 완료하고 5월 안으로 사전타당성조사에 착수한다는 방침을 알렸다. 법률상 입지가 정해진만큼 입지선정 절차도 생략된다. 간략한 내용을 써보는 것뿐인데, 숨이 차다. 공항건설을 위한 속도내기가 거의 비행기 수준이다. 이쯤 되면 토건 추종세력의 욕망 앞에서는 절차도, 그 절차를 통해 확보된다고 믿는 최소한의 정의도, 언제든 무시될 수 있는 세계가 열렸다는 걸 확인시킨 셈이다. 대화할 줄 몰라 단상에서 쌈박질이나 하던 국회가 오랜만에 화합을 이뤘다.

연합뉴스
지난 2월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위한 특별법을 의결했다. 재적 229인 가운데 찬성 181, 반대 33, 기권 15로 통과됐다.

그 몇 명을 빼고 국민 모두는 관객 신세로 관람이나 했다. 무대에 오를 권한이 없는 사람들에게 세계의 변화는 스크린에 예고되는 광고 같은 것이다. 대체 실감은 할 수 없고, 문제를 제기할 통로도 마땅치 않고, 의견이 반영될 보장은커녕 들어줄 리 만무하다는 패배의식이 이 사회의 기본 정서다. 그러는 사이 저 미친 속도를 붙들어 세울 방법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에게 세계를 함께 꿈꿀 권리 같은 건 없다. 오늘날 국민이란 권리를 가졌다고 자신을 오해하며 소비자가 되기 쉬운 위치로 전락했다. 그것은 이미 쏟아지는 평가들 속에도 있다. 국가는 그들이 선택한 국민의 선호에 응답하며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말 것이다.

“타자들(the others)의 탄생”

하필 2월 26일이었다. 가덕도 특별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된 것은. 그날은 강정의 해군기지가 6년 전 준공식을 했던 그날이었다. 해마다 그날은 반드시 기억되고 마는데, 그래서 가덕도 소식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너무도 큰 손실과 아픔이 있었고 여전히 진행 중이다. 그러나 원인을 제공한 국가는 반성 없이 계속 강력해지고 있다.

“국가 안보를 위한 일이라고 해도 절차적 정당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로 인해 강정마을 주민들 사이에 그리고 제주도민들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졌고 주민공동체가 붕괴되다시피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관함식 기간이었던 2018년 10월 11일, 강정마을회관에 들러 강정해군기지 건설과정의 국가 폭력에 대해 사과했다. 다수의 언론은 ‘사과하는 대통령과 사과받는 강정마을회’만 보여주었다. 그러나 대통령이 그 말을 하던 문밖 수십 미터 거리에서 해군기지 문제로 삶이 완전히 부서진 당사자 주민들이 경찰에 의해 고착되어 있었다는 건 알려지지 잘 않았다. 그들은 ‘절대권력에 밀려난 절대적 타자’였다. 손뼉 치는 선량한 관객이 아니었으므로, 무대 진입은 예비 검속되었다. 대통령이 사과했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진 사이, 강정마을에 사과하겠다는 구실로 강정마을에 결정을 맡겼다가 원하는 답을 얻지 못하자 전략적으로 번복시키는 등, 강정마을 공동체를 해군기지 건설과정 당시와 똑같은 방법으로 훼손한 행위는 묻혔다. 오히려 ‘이미 만들어진’ 기지의 활용방안만을 찾는 신속한 행동력이 발휘되었고, 이런 모습은 절차를 다 생략하고 해군기지를 강행하던 당시 모습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그사이 가덕도 주민의 성명서가 나왔다. 성명서엔 ‘삶의 터전’이라는 단어가 나왔으나, 그 ‘인간 서식지의 아픈 진실’을 이해할 국가 주체가 과연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오히려 국가는 줄곧 국책사업으로 용도가 변화하는 토지와 토지주만을 이해당사자로 지목하고 다른 의견과 질문을 외부화했다. 이런 방식으로 국가는 저항의 크기를 최소화해서 사업 유치에 성공했고, 사업 이후에도 해당 지역을 계속 갈등에 빠뜨려 이차 이득을 얻어내곤 하였다. 뼈아프지만, 가덕도 주민들은 이미 ‘국가의 일원이나 국민이 아닌 자들’이 되었고, 주민들 역시 실감하기 시작했다. 표현대로 ‘국론분열의 장’으로 변한 자기 삶의 터전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들은 들이닥친 불도저에 으깨져 가는 둥지를 구할 수 없던 역사적 존재들의 스펙트럼 안에 놓이고 말았다

엄문희
강정 해군기지를 짓기 위해 서귀포 식수원인 강정천마저 파괴해 깔따구 유충이 나오고 주상절리가 무너진다. 강정 해군기지 주변은 도로 천지인데 왜 또 군사도로를 뚫어야 되는지 알 수가 없다.

보지 않을 권리와 쳐다볼 권리

어떤 대상의 존재 의의나 가치를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을 ’무시한다‘고 말한다. 국가의 국민 무시. 다수의 소수 무시, 인간의 자연 무시. 한자어로 무시는 없을 무(無), 보일 시(視)이다.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안 보기 때문에) 관계 자체가 성립되지 않고 일방적으로 타자화되는 것이다. 이젠 ‘보지 않을 권리’가 그들에게서 발설될 지경이다.

이렇게 무시당하는 존재들의 아우성을 아는 것만으로는 사회적 경고를 끌어내지 못한다. 이제는 힘껏 ‘쳐다볼 의무’를 발휘하는 수밖에 없다. 이때 쳐다본다는 건 구체적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폭력을 드러내는 일’이다. 그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강정마을 해군기지 과정에서 파괴된 구럼비를 보자. 우리는 구럼비가 깨진 것에 슬퍼하지만, 구럼비가 ‘그렇게’ 깨진 것을 훨씬 두려워해야 한다. 그 ‘그렇게’는 이런 것이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국가라고 명시되어 있으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 실제로 국민은 국가라 칭하는 공권력과 갑을 관계 혹은 주종관계 혹은 군신 관계와 다르지 않다는 것, 국가는 외형상 형식과 절차를 갖추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무책임하게 일 저지르고 이것에 저항하는 시민은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으로 공권력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타당성을 조사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단계부터 주민과 동등하게 대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럼비는 ‘그렇게’ 파괴되었다. 가덕도가 그 운명 앞에 놓였다. 예전보다 훨씬 더 강력한 방법으로 돌아왔다. 통치의 절대적 수단인 특별법과 함께.

절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어떻게’ 하(했)는지를 공유하고 역사적 반성으로 끌어내지 못한다면, 질문은 피해구제에만 머물게 될 것이고, 여지껏 국가는 그 방법으로 문제의 책임에서 도망쳐왔다. 이제 그 국가를 붙들어 가해자의 이름을 부여할 때다. 국가 폭력을 해당 지역의 피해로서 하나의 ‘사건’으로 고착하는 일은 다시 없어야 한다. 사회학자 윤여일은 정치적 광장의 부재를 떠올리며 “민주주의는 좋은 목자를 고르는 게 아니라 양 떼로 전락하지 않는 일”이라고 했다. 가덕도 신공항 발표를 듣고 떠올랐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