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민주인권기념관(주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임민욱 작가 기획 <끝없는 여지(Endless Void)>전이 열렸습니다. 13명의 청년작가들은 옛 남영동 대공분실 공간과 시간으로 들어가 그곳에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 "과거의 것, 타인의 고통, 당사자들만의 문제라 근엄하게 선을 긋는 이들을 향해, 그것은 상상할 수 있는 일, 사람이 저지른 일, 타인이 기억해줘야 할 일"(임민욱)라고 말했습니다.
진실의 힘은 'Clear Resolution' 강은교 작가의 '작가노트'를 함께 읽으려 합니다. "기억한다는 것은 과거를 생생하게 소환하려 애쓰는 것이 아닌, 오늘을 더 정확하게 보고 해석하는 일"이라는 작가의 말을 '기억'하며, 그날의 호흡, 떨림, 파동이 느껴지는 작품 영상까지 꼭 봐주시길 바랍니다.
기억을 기억하는 일
강은교
<끝없는 여지>전에 참여해 전시했던 ‘Clear Resolution(투명한 해상도)’은 기록된 기억과 그것을 마주한 사람의 관계를 다룬다. 누군가는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게 감각하는 사건들을, 그것을 겪지 않고 그 시대를 살지 않은 세대는 어떻게 기억하며 살아갈 것인가. 1년 가까이의 준비 기간 동안 수 차례 남영동을 방문해 옛 흔적을 더듬어 보려 애썼지만 저린 마음 이후에는 닿을 수 없음이라는 막다른 길이 어김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이 과거를 마치 종결된 시간으로 여김에서 온 오류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나는 다시 생각해야 했다. 사실은 끝난 적이 없고 현재를 지나 미래에도 지속될, 그리고 장소 또한 초월할 어떤 것을 오늘 이 자리에서 어떻게 만져 볼 수 있을지 그 방법을 찾고 싶었다.
나는 유년기부터 오랜 시간을 해외에서 지냈다. 그 시간 동안 여러 문화와 언어의 바운더리가 낳는 무기력한 현상들을 목격했고, 그 영향으로 무엇의 본질에 직접 다가가는 방법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나의 작업에 전반적으로 스며들어 있다. 이번 작업에서도 고민의 끝은 결국 그 지점으로 향하게 되었다. 기록을 통해 기억을 소환하는 일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그리고 기록이라는 매개의 투명성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보통 투명성을 언급할 때는 ‘투명하게 공개하겠다’와 같은 표현처럼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부르는 경우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투명이라는 특성이 장치로써 사용되었을 때 그것은 우리의 심리를 어디론가 몰아가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온전한 듯하지만 너무나 연약한, 그래서 부서지기 쉬운, 그리고 부서진 후에는 무엇으로 변해버릴지 모를 불안을, 투명은 늘 끌어안고 있다. 투명한 수조의 물은 마치 관찰자와 그 너머의 내용 사이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최소한의 개입으로 둘의 관계를 유지한다. 그러나 자극이 가해졌을 때 그것은 내용을 왜곡하고 은폐한다.
나는 기억을 기록으로 접하는 일의 불온함에 대해 생각해본다. 재 매개된 기억을 접하는 일이 우리를 정말 기억할 수 있게 할까. 기록이 누구의 언어와 해석으로 남겨진 것인지 집요하게 질문한 적은 있던가. 혹시, 기억을 기억 그 자체로 기억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일까.
‘그 시커먼 벽돌 건물을 보면 그렇게 가슴이 아파.’
남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시커먼 벽돌 건물이 가슴 아픈 장소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고문이 자행되던 시절 어떤 이들은 남영동 대공분실 테니스장에서 몸을 풀었을 것이다. 식당 건물에서 고문실로 돌아가는 길에, 김수근이 설계한 그 시커먼 건물이 빛과 함께 빚어낸 풍경을 보았을 것이다. 바람길 어디쯤 서서 길고 좁은 기형적인 창문들도 올려다본 적 있을 것이다. 수조 너머의 사진들은 그들의 시선에 한 번쯤 스쳐 지나갔을 풍경들을 상상하여 파편적으로 담은 것이다. 한편 눈이 가려진 채 이곳에 끌려온 사람들은 건물이 시커멓다는 사실조차 알 길이 없었다.
작업을 진행하며 접한 기록들은 상심과 분노가 뒤섞인 괴로움으로 남겨졌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겁게 다가온 것은, 현재가 그런 과거의 유산들로 조직되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지함에도 불구하고 왜 일상에서 그런 것들을 상기하며 살고 있지 못하는가 라는 물음이다. 결국 지금의 내 호흡이 방해받지 않는 한 나는 쉽게 타자의 위치에 서게 되는 것이다. 기억을 기록으로 접하게 되는 일은 우리에게 당사자가 아닌 관람자의 자리 정도를 내어 주는지 모른다. 그러나 닿을 수 없는 그곳에서 마냥 멈춰 있을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거가 열어준 현재를 어떻게 먼 미래로 전환할 것일지를 앞당겨 생각해보는 것이다.
기록이 없는 기억은 있지만 기억이 없는 기록은 없다. 다르게 말하면 기억이 기억 그 자체로 기억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기억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과거를 생생하게 소환하려 애쓰는 것이 아닌, 오늘을 더 정확하게 보고 해석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기억은 적극적 태도이자 우리가 호흡하는 공기의 냄새를 알아내려는 갈망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오늘을 해석할 것인가. 어떻게 기억을 기억할 것인가. 나는 기록으로 기억을 기억하려 했던, 본질에 철저하게 닿지 못해 쉽게 무뎌질 수밖에 없었던 나 자신과 우리에게 이 미궁 같은 질문을 반복하여 던지고 싶다. 어떤 물음들은 끝없는 여지만을 불러올 뿐 디디고 설 자리는 남기지 않는다. 그럼에도 어떤 물음들이 던져지는 그때 우리는 더 이상 예전과 똑같은 감상으로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다.
│Clear Resolution(2019) https://youtu.be/KB9RydNPlD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