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용균 특조위 위원장 김지형(법무법인[유] 지평 대표변호사) 님이 진실의 힘에 보내주신 '특별기고'입니다.

‘김용균’은 우리에게 
우리는 ‘김용균’에게

고 김용균 특조위 위원장 김지형
(법무법인[유] 지평 대표변호사)
'김용균 특별노동안전조사위' 김지형 위원장. ⓒ연합뉴스

# 특조위 해단식

지난 9월 18일로 기억한다. 김용균 특조위의 마지막 본회의 날이었다. 특조위는 올 4월 1일에 출범하였다. 이후 4개월 남짓 위원들은 저마다 치열하고 헌신적인 열정을 쏟아부어 700쪽이 넘는 조사결과 종합보고서를 펴냈다. 고 김용균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방지안을 권고하는 내용이었다.

이미 8월 19일에 이 종합보고서를 세상에 발표까지 한 터라 9월 18일의 마지막 본회의는 보고서 발표 이후 남은 일을 최종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회의를 마치고 소주를 곁들인 해단식 저녁 자리가 이어졌다. 드디어 특조위 일을 마치게 되었으니 위원들마다 소회가 없을 수 없었다. 우선은 홀가분한 마음이 컸다. 하지만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난 것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비록 특조위 활동은 끝난다고 하더라도, 이제부터는 보고서에 담은 권고안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새로운 시작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 “김용균은 보통명사”

“김용균은 더 이상 고유명사가 아니다, 김용균은 보통명사가 되었다.”

해단식 자리에서 나는 특조위를 매듭짓는 소감을 이렇게 줄여서 말하였다. 오래전 시인 김춘수가 노래한 “꽃”을 떠올리면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1970년에 22세의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근로기준법’을 가리키는 보통명사가 되었듯이, 2018년에 24세의 청년노동자 김용균은 ‘노동안전’을 상징하는 보통명사가 되었다. 특조위가 앞장서 그렇게 김용균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그 이름은 우리에게로 와서 한 송이 ‘꽃’이 되었다. 앞으로 그 이름은 일터의 깜깜함을 밝혀주는 빛이 되어야 한다. 또 하나의 구원이 되어야 한다.

# 특조위 단상 몇 조각

애당초 특조위 위원장을 제안받고 몇 번이고 고사하였다. 내가 감당해 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끝내 나를 끌어들인 것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구의역 사고였고, 또 하나는 삼성 백혈병 등 문제였다. 이 두 가지와 고 김용균 사고는 모두 일터에서의 안전과 건강 문제가 공통분모이다. 

나는 앞서 두 가지 사안에 진상규명위원회 또는 조정위원회 위원장으로 관여하였다. 특히 구의역 사고 위원회에서는 위험의 외주화에 대해 우리 사회가 근원적인 해결책을 가져야 한다고 권고하였다. 그러나 또 다른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고 김용균 사고를 통해 그동안 우리가 해낸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그 부채감이 컸다. 그 사이 삼성 백혈병 등 발병과 관련해 일터에서의 건강 문제를 다루었다. 김용균 특조위에서는 노동 안전과 건강 문제를 함께 아우를 수 있겠다 생각하였다. 

특조위 내내 아주 많은 뜻밖의 사실에 직면하여야 했다. 석탄을 나르는 위험한 일을 하는 일터가 이렇게까지 깜깜할 수 있나 놀라웠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지나지 않았다. 발전연료로 사용하는 석탄에는 탄광과 비견할 정도의 1급 발암물질 등이 함유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누구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협력업체가 직원에게 지급하는 직접노무비는 그 절반 안팎이 낙찰 당시 정해진 도급항목의 노무비 명목과 다르게 사용되고 있었다. 이 역시 그 동안 별다른 문제의식 없이 관행화되어 왔다. 협력업체 직원들의 고혈압⋅당뇨병 등 만성질환의 유병률은 상대적으로 매우 높다. 원하청 구조 자체가 산재 증가의 직접 원인이 된다. 이러한 사실들이 전문가 위원들의 심층 조사 결과 확인된 것은 덤이었다. 구조적인 이유로 은폐된 산재도 적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압권은 일부 발전사와 협력사들이 특조위 조사를 방해하였다는 점이었다. 엄청난 충격이었다. 특조위 활동 초반에 들이닥친 최대의 위기였다. 다행히 정부의 신속한 조치와 특조위 내부의 차분한 대응으로 극복할 수 있었다.

‘고 김용균 태안화력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 진상규명 및 책임자처벌 시민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 참석한 석탄 화력 운영팀 동료들. ⓒ한겨레

# 특조위 이후의 과제들

1994년 이후 OECD 통계가 제공된 이후 지금까지 딱 두 번을 제외하고는 매년 우리나라가 산재사망률 1위를 고수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제 상식이다. 10만 명당 산재 사망자가 10명이 넘는다. 멕시코가 2위인데 멕시코는 우리의 1/2 수준이다. 영국은 0.5명 안팎이다. 셈해 보면 우리는 영국의 20배 수준이다. 영국은 2007년에 기업의 형사책임을 특별히 강화하는 법률을 제정하여 기업에 대한 벌금액수의 법정형을 매출액과 연동하도록 하였다. 그러면서 산재 발생이 급감했고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모범적인 산재 관리 국가가 되었다.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그동안 일터에서 수많은 죽음이 있었다. 그러다가 김용균의 죽음에서 응어리가 터져 나왔다. 무엇이 그렇게 했을까. 부끄럽다는 생각에 우리 사회가 진심으로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맹자가 이르기를, ‘羞惡之心’(수오지심)이 ‘義之端也’(의지단야)라 했다.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이 의로움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부끄러움에서 시작했으나 더 이상의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이 아니어야 한다. 가장 먼저 기업 스스로 지속가능경영에 목표를 두고 안전의 문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정부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문제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의회는 입법과정을 통한 법제도 개선에 힘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전문가를 망라한 시민사회는 지속적인 관심, 그리고 감시 활동을 게을리 말아야 한다.

잊지 말아야 한다. 일터에서의 안전과 건강은 결코 남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나의 문제,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보통명사 ‘김용균’의 참뜻은 바로 거기서부터 찾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