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_박미옥, 박경준 한등자의 큰딸

2009년 10월 2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재심 무죄 판결을 받은 한등자, 박미옥 선생님 ⓒ진실의힘

제가 21살이던 1981년 어느 날, 신문 1면에 ‘진도 일가족 간첩단 일망타진’이라고 크게 기사가 났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고모, 고모부, 큰어머니, 사촌 오빠 2명까지 일가족 모두 얼굴이 줄줄이 사탕처럼 늘어져 있는 신문기사로 우리 집안 사건을 알게 되었습니다. 올해 제 나이가 쉰 아홉이니 벌써 38년전 사건입니다.

남산 안기부에서 68일 동안 고문을 당한 끝에 아버지와 친척 어른들은 ‘간첩’이 되었습니다. 우리 아버지 박경준은 1989년 감옥살이를 마친 뒤 억울하다며 사방팔방 뛰어다니다가 1998년 감기지 않는 눈을 감으셨습니다. 어머니 한등자는 2016년 11월 25일, 국가의 부당이익반환소송으로 생긴 홧병을 견디지 못하고 세상을 뜨셨습니다. 저는 두 분이 가장 사랑한 큰 딸이었고, 두 분의 삶을 지켜온 맏이입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어머니를 생각하며 이 글을 씁니다.

아버지와 친척들은 검찰, 법원에서부터 안기부에서 고문을 당해 조작된 사건이라고 주장하셨습니다. 감옥에서도 그렇게 주장했고, 풀려나서도 오로지 진실규명에 목을 맸지요. 그런 아버지가 병을 얻어 누워버리셨습니다. 아버지는 “나를 청와대 앞으로 데려다 달라, 거기서 죽겠다”고 하셨지요. 결국 아버지는 마지막 소원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뜨셨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청와대 앞으로 가서 거적이라도 깔고 함께 누워 버릴 걸, 아버지의 그 간절한 소망을 왜 들어주지 못했을까, 미안함과 죄책감에 저는 지금도 가슴이 미어집니다.

온 가족이 식음을 전폐하고, 일손을 놓고, 매달린 끝에 진실규명의 서광이 비쳐오기 시작했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과거 독재정권 하에서 벌어진 국가폭력사건 진실규명이 시작되었고요. 우리 가족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2007년 4월 5일,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법원은 재심을 개시했고, 무죄판결을 내렸지요. 어머니와 우리 친인척들은 2009년 11월 13일 서울고등법원 법정에서 “피고인들은 무죄”라는 판결을 들었습니다. 그날 아버지 이름을 부르며 법정에서 소리쳐 울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프게 떠오릅니다.

우리 가족들은 2011년 5월 6일,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1, 2심 법원은 국가의 배상책임을 인정했습니다. 하지만 국가는 다시 상고했지요. “소멸시효가 지났으니 배상할 이유가 없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1년 5개월을 넘게 판결을 질질 끌어오던 대법원의 우리 사건 담당재판부는 1, 2심과 달리 국가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2013년 12월 12일, 박근혜 정부 때였지요. 형사보상 수령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손해배상을 제기하지 않았으니 소송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났다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엔 무슨 말인가 어리둥절했지만, 법원의 판결은 대략 이런 뜻이었습니다. 그 유죄판결이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미리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손해배상 청구를 하지 않았으니 우리한테는 권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저는 그 판결을 내린 대법관들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만일 당신이었다면, 당신이 간첩이라는 유죄판결을 받고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제기하는 것이 가능했겠냐고요. 일가족이 고문을 당해 간첩으로 조작되었고, 법원은 고문조작을 뻔히 알면서도 기소를 받아들여 유죄판결을 해서 무기징역 등 중형을 선고해 감옥에 갇혀 있는 상황에서, 또, 운좋게 풀려났다 하더라도 간첩으로 낙인 찍혀 경찰의 감시를 받고 동네에서 추방되다시피 한 상황에서, 어떻게 손해배상을 제기할 수 있겠느냐고요. 판사님들이 당사자라도 불가능한 일이겠지요. 그렇다면 판사들보다 훨씬 더 힘이 없는, 간첩으로 내몰려 일가족이 쑥대밭이 된 사람들이 어떻게 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고 보시는지, 너무나 원통할 따름이었습니다.

이전에 법원은 손해배상 제기 기간을 재심 무죄 확정일로부터 3년으로 인정해왔습니다. 일반 형사사건에서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은 통상적으로 3년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그에 맞춰서 소송을 해오던 참이었고요. 그런데 대법원은 2013년 12월 12일 판결부터 갑자기 6개월을 적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형사보상 수령일로부터 7개월이 조금 넘어 소를 제기했으니 한 푼도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가족뿐 아니라 2013년 12월 12일 이후 대법원 판결이 난 많은 피해자들이 배상을 받지 못하게 됐습니다.

2009년 10월 23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재심 무죄 판결을 받은 한등자, 박동운 선생님 ⓒ진실의힘

우리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사건이 발생한 1981년부터 우리 가족은 죽을힘을 다해 싸워왔습니다. 국가가 우리 가족의 울부짖음에 화답한 것은 28년도 훨씬 지나서였습니다. 그런 국가가 이제 와서 6개월 안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우리에게 권리가 없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건가요? 우리는 대법원 판결에 대해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습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이 날 때까지 고등법원의 파기환송심을 추정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만, 고등법원 재판부는 이를 외면하고 거절했습니다. 이후 국가는 우리 가족들을 상대로 ‘부당이익금 반환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손해배상 1심에서 승소해서 일부 가집행 받은 손해배상금을 내놓으라는 것입니다. “아배(우리 아버지 박경준) 피 묻은 돈 절대 못 내놓는다”며 피 토하듯 울었던 우리 어머니는 그렇게 돌아가셨습니다.

2018년 4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법원 행정처의 사법농단이 드러났습니다. 2015년 7월 법원행정처가 작성했다는 문건에 따르면 “과거사정리위원회 사건에 대해 부당하거나 지나친 국가배상을 제한하고 과거사를 정립했다’고 합니다. 이에 해당하는 대법원 판례로 든 것 중 하나가 과거사 관련 국가손해배상 소송의 소멸시효를 제한한 것입니다. 우리 가족들이, 그리고 과거 국가기관에 의해 고문 받은 수 많은 피해자들의 진상규명과 이에 따른 국가의 책임은 한낱 거래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국가 예산 절감’이라는 말이 우리가 피눈물을 흘려야 했던 이유라고 합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마지막과 우리 가족이 겪어야 했던 고통을 떠올렸습니다, 저는 천박한 국가의 민낯을 보았습니다.

사법농단이 밝혀지고 난 후에야, 4년 반 동안 계류 중이던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선고했습니다. “민법 등 소멸시효 조항 중에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과 조작의혹 사건’으로 인한 손해배상청구권에 소멸시효가 적용되도록 한 규정이 헌법에 위반”이라고 했습니다. 작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 선고를 듣고 나오는 길, 재심으로 무죄 받던 날 엉엉 울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다시 볼 수 없는 어머니에게 당신의 한을 이제사 풀겠노라고, 아버지 평생의 한을 잊지 않겠노라고 약속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또 재판을 시작했습니다. 이번에는 손해배상에 대한 민사 재심입니다. 법원을 수없이 오가며 마음 졸이는 삶에 지쳤으나,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겠거니 믿었습니다. 고등법원은 재심에서 우리 가족의 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가슴 서늘하게도, 우리처럼 헌법재판소 결정을 갖고 민사 재심 중이던 정영 선생 사건 판결에 대해 국가가 불복하여 상고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국가는 곧 우리 사건에도 상고했습니다. 법무부가 상고를 취하해야 한다고 시민사회단체들과 성명을 보내자 법무부는 이렇게 답변을 보냈습니다. “법무부는 피해자 및 유족들이 겪었을 정신적 고통에 대해서 충분히 공감하고 있”지만 “부득이 이 사건에 대한 상고를 제기”하였다 합니다. 우리 가족은 이제 헌법재판소 결정에 대한 대법원의 법적판단이 어찌될 지 모른다는 이유로 결과를 알 수 없는 재판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100대 국정과제 중 세 번째로 과거사 문제 해결을 꼽았고, 적폐 청산을 위해 법무부와 검찰 개혁을 이루겠다고 했습니다. 그간 정권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던 국가의 태도에 배신과 분노로 몸부림쳐왔으나, 이번에는 진심으로 믿었습니다. 시민들이 광장에 나와 바꿔낸 새로운 세상의 정부이니까요. 그러나 현실은 어떻습니까? 우리 가족의 고통은 끝나지 않았고, 국가는 끝없이 우리를 괴롭힙니다. 과거사 피해자들의 손해배상권을 박탈한 양승태 사법농단의 책임자들은 처벌하면서, 천신만고 끝에 헌법재판소 결정을 거쳐 민사 재심 판결을 얻어내 겨우 권리를 회복하려는 우리의 손해배상을 한사코 거부하고, 대법원에 또다시 상고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법무부가 벌이는 이 모순적인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1981년 3월, 제 평범한 삶은 무너졌습니다. 국가가 자행한 끔찍한 인권 침해의 피해자가 된 건 우리 가족 모두였습니다. 진실을 밝혀내고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어디서든 목소리를 냈고 헌신했던 어머니와 아버지, 우리 가족의 삶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저는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싸워야 합니까. 누가 봐도 자명한 고문, 국가폭력에 대한 책임을 정부는 언제 완전히 인정하려 합니까. 국가는 언제 우리에게 완전한 사과를 하려 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