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이 위험하다

강양구 과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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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전 세계가 주목했던 ‘K-방역’이 흔들리고 있다. 5월 6일 ‘생활 속 거리 두기’라는 이름으로 방역 수준을 낮추고 나서부터 크고 작은 집단 감염이 곳곳에서 나타나면서 두 달째 수도권의 유행이 잡히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대전에서 집단 감염이 고리가 나타나더니, 사실상 바이러스 청정 지역으로 보였던 전라남북도에서도 확진 환자가 나왔다.

전파 경로를 알 수 없는 이른바 ‘깜깜이 환자’의 비율도 10퍼센트를 넘어선 지 오래다. 불과 두 달 전만 하더라도 5퍼센트도 많다 싶었는데, 순식간에 두 배로 뛴 것이다. 아직 가까스로 유행을 통제하고 있지만, 이 비율이 15퍼센트, 20퍼센트로 치달으면 그때부터는 걷잡을 수 없다.

알다시피, 코로나19는 철저하게 세대를 가른다. 65세 이하는 대부분 가볍게 앓고 지나가지만, 그 이상의 고령층에게는 치명적이다. 80대 이상은 확진 환자 네 명 가운데 한 명이 사망한다. 70대 이상은 확진 환자 열 명 가운데 한 명이 사망한다. 그런데 지난 두 달간 65세 이상 고령 환자가 급속도로 늘고 있다. 덩달아서 수도권 병원의 중환자 격리 병실도 만원이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문제였을까? 대구-경북의 대유행을 막고 나서 방역 당국, 특히 일부 정치인의 자만이 과했다. 사실 대구-경북의 유행을 막을 수 있었던 것은 방역 당국의 실력도 한몫했지만, 그만큼 다른 두 가지 요인이 컸다. 하나는 ‘운’이고, 다른 하나는 의료진의 ‘피와 땀’이었다.

먼저 ‘운’. 우선 대구-경북에서는 대구 신천지 교회를 중심으로 바이러스가 퍼졌기 때문에 전파 경로를 비교적 빨리 파악해서 검사, 확진, 격리할 수 있었다. 더구나 20대 여성과 같은 젊은 교인이 많은 이 교단의 특성상 환자 대다수가 경증이었다. 이 때문에 이탈리아 북부처럼 고령의 중증 환자가 쏟아지는 일이 없었다.

천운도 따랐다. 마침 1000병상 가운데 200병상만 운용하고 있었던 대구동산병원이 있었다. 새 병원(계명대학교 동산병원)으로 환자를 옮기고 나서, 대구동산병원을 고스란히 코로나19 환자를 진료하는 전담 병원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 만약 대구동산병원이 없었다면, 대구-경북의 희생자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의료진의 ‘피와 땀’도 빼놓을 수 없다. 대구-경북의 의료 자원만으로는 대유행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기 때문에 전국의 역량이 총동원되었다. 대구-경북의 의료진뿐만 아니라 전국 곳곳에서 의료진이 (때로는 자발적으로) 나서서 헌신적으로 유행을 막고자 최선을 다했다. 이런 의료진의 피와 땀이 없었다면 바이러스를 막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피와 땀에다 운까지 따라서 가까스로 대구-경북의 유행을 막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방역 당국, 특히 일부 정치인 출신 행정가는 이 모든 일을 실력이라고 착각했다. ‘K-방역’이라면서 세계 곳곳에 자랑까지 하고 나섰다. 그 연장 선상에서 방역 현장 전문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성급하게 5월 6일부터 방역 조치를 완화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위기 상황이다.

이 대목에서 이런 반문도 들린다. 방역에만 신경 쓰면 서민의 생계는 어떻게 하냐고. 천만의 말씀이다. 수도권을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방역에 구멍이 뚫리면, 정부가 제발 소비를 하라고 닦달을 해도 집 밖으로 돌아다니며 주머니를 열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방역이 무너지면 서민의 생계가 제일 먼저 위기에 빠진다.

인류가 바이러스와 싸운 지 6개월이 지났다. 이 기간을 보내며 다수의 전문가는 세 가지를 강조한다. 과학, 리더십, 발 빠른 조치. 지금 ‘K-방역’은 과학보다는 정치에 휘둘리고 있고, 리더십은 어느 순간부터 흔들리고 있다. 그 결과 선제적 대응은커녕 계속해서 바이러스 뒤만 쫓고 있다. 이러다가는 정말로 큰일 난다. 어쩌면 힘든 여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