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2020년은 코로나19가 본격화된 시기이자 청계천-을지로에겐 재개발의 속도가 가속화된 시기이기도 하다. 2019년 1월 서울시의 전면 재검토 발표에도, 2020년 3월 종합대책 발표에도 재개발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았다. 심지어 코로나19 사태가 심화되었던 2020년 하반기에는 오히려 상인들을 내쫓고 철거를 시작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국가의 모든 중요한 일들은 멈췄는데 도심 산업의 역사를 만들어온 상인들의 삶을 파괴하는 재개발은 예외였다.

청계천-을지로는 한국의 근대화 과정에서 자생적이고 유기적으로 형성된 도심산업생태계이다. 1978년 이후 도시개발의 광풍 속에서 재정비 구역으로 지정되어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청계천 공구거리, 을지로 철공소 골목과 노가리 골목, 예지동 시계골목 등 서울시가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곳들은 대부분의 사람은 다 알고 있을 정도로 오랜 역사와 그 사회적 기능을 인정받으면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2014년 이 일대가 도시재생 지역으로 선포되면서 지역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나 싶었지만 기쁨은 잠시, 도시재생은 세운상가군에만 해당되었고 2018년에 재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조선시대 때부터 이어져 온 도시조직들과 근현대 건축물 같은 역사문화유산들이 파괴되기 시작했고, 오랫동안 이 지역을 지켜온 상공인들의 생존권과 인권이 침해되고 있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2020년 가을부터 현재까지 도심산업생태계의 핵심 중 하나인 기계금속제조업체가 밀집해 있는 입정동과 산림동 일대에 재개발이 본격화되었다. 일부는 관리처분인가가 나기도 전에 철거가 진행되었고, 많은 구역들이 사업시행인가를 받았다. 미래유산만이 아니라 생활유산도 마찬가지다. 을지면옥이나 을지다방, 양미옥, 우일집, 조선옥, 석산정 같은 노포들도 모두가 머지않아 철거될 것이다. 그리고 청계천 공구거리와 노가리 골목으로 유명한 수표구역도 재개발 사업을 시작했고, ‘힙지로’ 열풍의 주역인 을지로3가 일대의 각 구역도 재개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그리고 2018년 연말 400여 업체가 쫓겨난 세운3-1, 4, 5구역 자리에 세워지고 있는 힐스테이트 세운은 점점 그 높이를 더해가고 있다. 문화재와 미래유산 그리고 생활유산 등 우리와 도시의 역사를 만들어온 소중한 유산들이 재개발로 인해 폐업하거나 멸실될 위기에 처해있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한국 정밀금속 메카를 지키자"

이 과정에서 지역 상공인의 피해와 불안은 극에 달하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 때문에 생계가 불안정함에도 불구하고 재개발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지역의 상공인들은 지난 12월 절박한 심정으로 코로나 국면이 진정될 때까지만이라도 재개발 절차를 중지해 줄 것을 서울시와 중구에 요구했다. 하지만 여전히 행정은 침묵과 무책임으로 일관하고 있다. 2018년 1월 도심 산업과 노포 보존을 위해 세운상가 일대 재개발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발표한 서울시는 2019년 3월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하고 있는 현재까지도 그 계획의 대상이 되는 당사자들과 목소리에 귀를 닫고 있다. 중구청은 서울시의 종합대책과 계획변경을 바탕으로 세입자 대책을 진행한다는 전제로 철거를 비롯한 각종 재개발 절차를 모두 그대로 추진하고 있다. 결국 상인들의 절박한 외침에도 재개발 행정은 그대로 진행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이러한 틈을 타 재개발 시행사들은 상인들에게 자발적으로 퇴거할 것을 종용하고 있고, 이에 불응하는 세입자 상인들에게는 자신들의 소유권에 기반하여 각종 법적 협박을 일삼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생계가 어려워진 소상공인들이 재개발과 그 절차들 때문에 오히려 이중고 혹은 삼중고를 겪고 있는 셈이다.

또한 행정과 건설사에 의한 이러한 폭력들 외에도 건물주에 의한 인권침해도 있다. 입정동과 산림동 철공소 골목의 몇몇 건물주들은 재개발 절차가 진행되지도 않았는데 강제로 세입자들을 내쫓고 있는 형국이다. 아마도 시행사와의 몸종의 거래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이슈가 됐던 노가리 골목의 OB베어호프도 마찬가지다. OB베어호프는 그 골목에서 가장 오래된 호프집이고, 청계천-을지로 일대의 상공인들이 고된 하루의 노동을 마치고 값싼 노가리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을 마시고 돌아갈 수 있는 쉼터 역할을 했던 곳이다. 하지만 을지로가 ‘힙지로’로 주목을 받고 인근 지역들이 재개발로 들썩거리는 사이, 만선호프는 노가리 골목의 건물들을 사들였고 기존에 있었던 다른 호프집들을 쫓아내고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 국면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수많은 철거용역들이 몰려와 10평 남짓되는 OB베어 가게를 폭력적인 방식으로 강제철거를 하려 했고 지역 상공인과 시민들이 나서서 이를 막아냈다. 여기는 을지로3가 재개발 구역에는 포함되어 있지만, 아직 재개발 사업이 시작되지 않은 곳이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지난 3월 10일, 서울시 미래유산 '을지로 노가리골목'의 원조맥주집 '을지OB베어'에 강제집행이 들어왔다.
청계천을지로보존연대

여기서 묻고 싶다. 코로나19로 일상은 멈췄는데 청계천-을지로 재개발은 왜 계속되는가? 팬데믹이라는 국가적 재앙의 상황에서 그 무엇보다 중요하게 지켜져야 할 인권이 재개발이라는 이름으로 국가와 자본에 의해 처참하게 파괴되고 있는가? 행정이 나서서 상공인들을 위한 긴급지원을 해줘도 부족할 시기에 오히려 이들을 강제로 길거리로 내쫓아내려고 하는 폭력적인 행위는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우리의 삶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성찰해봐야 하는 이 시점에 우리는 어떤 가치들이 지켜져야 하는지 다시 한 번 숙고해봐야 한다.